‘미국의 한 해안도시를 파괴한 것은 무서운 자연 재해였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인종차별은 생존자들을 괴롭혔다…’ 한 과학뉴스 사이트에 실린 이 글은 지난해 뉴올리언스를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관한 해설이 아니다. 1백년전 샌프란시스코를 덮친 지진과 화재, 그 참상의 이면이었다.
진도 7.8의 지진이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한 것은 1906년 4월18일 수요일 새벽 5시12분이었다. 28초 만에 시청을 무너뜨린 지진은 40초 동안 계속되었고 사흘간 타오른 불길은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도시의 한 복판 중국계 이민들이 모여살던 차이나타운도 폐허로 변했다. 초 밀집 상태였던 당시 그곳의 인구가 1만4천명이었는지 2만5천명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처음 발표된 사망자 수는 487명이었다. 투자가들이 등 돌릴까 우려해 시당국이 축소발표했기 때문이다. 후에 역사가들이 3천에서 5천으로 수정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특히 중국계의 희생 숫자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제 샌프란시스코는 사라졌다. 추억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동부의 신문들이 애도를 표했을 만큼 피해는 엄청났다. 전체 40만 주민의 절반이상이 홈리스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이재민이었지만 백인과 중국계의 처지는 하늘과 땅이었다. 백인 이재민들의 텐트촌은 중국인 접근 금지지역이었다. 동양인, 특히 중국계에 대한 반감이 극심할 때였다. 혐오하고 멸시했다. 법정증언도 못한다, 본국에서 가족도 못데려 온다, 비 중국인과 결혼도 못한다…온갖 차별을 가하다가 결국은 아예 이민 자체를 금지시킨 ‘중국인 배척법’이 아직 시행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폐허가 된 거리를 장악한 것은 임시 치안대였다. 주방위군과 경찰, 민병대들로 구성된 이들에게 시장은 약탈자에 대한 즉결 처형권을 허용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약탈을 자행한 것은 ‘지켜주기 위해’ 파견된 치안대였고 ‘약탈’ 혐의로 이들에게 피살당한 사람들은 무너진 자기 집에서 물건을 추려 나온던 중국계 청년 3명을 포함한 죄없는 소수민이었다.
혼란의 와중에서 또 하나의 정치적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다. 시의 정치가들과 기업가들이 손잡은 차이나타운 재배치 플랜이었다. 어쩌다보니 금싸라기 땅을 차지하고 있는 차이나타운을 아예 시 밖으로 몰아내자는 계획이었다. 추진위원회도 구성했다. 비위생적이고 아편과 도박, 매음이 들끓는 커뮤니티를 격리시킨다는 공감대도 있었다. 저술가 랄프 헨은 “대지진후 차이나타운이 폐허가 된 것을 당시 사람들은 축복으로 여겼다. 오래전에 불태워버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반 중국계 정서를 배경으로 추진되던 차이나타운 재배치 음모는 예상치 못한 장애에 부딪친다. 이들을 시 밖으로 내쫒고 나면 막대한 세금 수입이 사라지는 것이다. 시 경계안에 둘 곳을 모색했다. 그러나 후보지마다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다. 어떤 곳에선 “중국인들의 냄새가 여름바람에 실려 우리집 문 앞까지 온다”는 항의가 들어왔고 다른 곳에선 목사가 앞장서 “기독교 신념에 따라 중국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믿지만 백인 어린이들을 키우는 근처에 이들을 살게하는 것은 위험하고 죄악이다”라며 결사반대 시위를 벌였다. 백인지역에서 멀리 떨어지고 세금도 징수할 수 있는 ‘이상적 이주지’는 어디에고 없었다. 거기에 더욱 난감한 것은 중국 공관에 강력한 항의였다. 자칫 대중국 무역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주저끝에 재배치 계획이 백지화된 후, 지진발생 1년이 지나서야 차이나타운은 본래의 자리에서 재건되기 시작했다. 재기의 기회가 백인주민들의 인종차별 덕에 우습게 얻어진 것이다. 참기 힘든 모욕과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지만 당시 중국 커뮤니티의 리더들은 현명하게 대처했다. ‘불결한 범죄의 온상’이라는 타운 이미지의 업그레이드부터 시작했다. 미국인 건축가를 고용해 동화같은 중국식 건축양식을 도입해 타운을 관광명소다운 빌리지로 다듬어갔고 미국인 중산층으로 발돋움하는 생활의 미국화를 계몽했다.
엊그제 샌프란시스코에선 첫 새벽부터 대지진 발생 1백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벌써 두달전부터 80여차례의 전시회를 비롯하여 컨서트와 카니발, 컨퍼런스와 강연회등 다양한 행사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 잿더미를 딛고 일어난 강인한 의지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축제같은 기념행사의 그늘에서 우리는 인종차별의 어두운 역사에 짓눌렸던 이민커뮤니티의 생존투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1백년이 지난 지금 다시 ‘빅 원’이 기습할 확률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 땐 또 어느 집단이 희생양으로 바쳐질 것인가. 반 이민 정서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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