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타바바라 와이너리’피크닉
지난 8일 샌타바바라로 와이너리 소풍을 다녀왔다. ‘소풍’이라고 한 이유는 어른아이 하여 4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체로 김밥을 싸가 지고 대형버스를 대절해 다녀왔기 때문이다. 이 일일여행은 ‘남가주 서울고등학교 동문회 산악회’ 회원들의 특별 이벤트였다. 나는 동문회의 16회 선배이며 와이너리 방문을 주선한 김성호·혜경씨 부부의 초청으로 한 자리 끼여들었다. 와인애호가인 두 분은 샌타바바라를 너무 좋아해서 한달에도 여러 차례 다녀오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 역시 재작년에 함께 방문한 적이 있을 만큼 주위에 가까운 사람 치고 함께 따라갔다 오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사태가 이러하니 산악회가 단체로 떠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수려한 자연속 와이너리 70여곳 산재
여유 즐기며 순회 시음관광‘마치 낙원’
피노 누아·샤도네 등 품질도 괜찮아
이 서울고 동문회 산악회는 3회로부터 40회까지 망라하는 선후배들의 모임으로 격주 토요일마다 만나 남가주의 산이란 산은 모두 찾아다니며 등반하기 때문에 웬만한 가족들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나로서는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지만 어찌나 환대를 해주시던지 몸둘 바를 몰랐고, 졸지에 와인 강의까지 시키는 바람에 한시간 가량 마이크를 잡는 영광을 누렸다.
다녀온 후 산악회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총무 옥기철씨가 올려놓은 와이너리 후기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나도 누구보다 칭찬에 약한 인간인지라 너무 감격스러워 그 일부만 옮겨본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아하면서 수준 높은 정숙희님의 ‘와인의 정석’, Wine Story for Dummies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산악회를 3년간 하면서, 우리 회원들이 이 순간만큼 진지하고 감동 깊게 남의 얘기를 듣는 순간이 있었나? 재빨리 Replay 버튼 눌러 기억을 되돌려 보아도, 단 한번도 없음을 깨닫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계영무 선배님께서는 강의를 겸허하기 듣기 위해 색다른 헤어컷과 고난도 면도까지 하고 오셨다는데… 정무진 선배님께서는 기수에 걸맞게 부지런히 버스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오고 가시면 질문을 퍼 나르고 계셨습니다. 정숙희님의 와인 강의는 ‘와인의 삼위일체’ ‘와인 완전정복’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이에 맞추어 빨레트, 아로마, 바디, 스월, 빈티지, 커런트 등등 아리까리한 단어들이 입가를 맴돕니다…”
나의 강의를 그렇게들 인조이했다니 내가 다 놀랍고 감격스럽다. 이제 자랑은 그만 하고…
이 날 우리가 들른 와이너리는 라펀드(Lafond), 선스톤(Sunstone), 페스 파커(Fess Parker), 팍슨(Foxen) 등 네 곳이었다.
이중 가장 좋았던 곳은 맨 처음 들른 라펀드로 놀라울 정도로 질 좋은 샤도네와 시라, 테이블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첫 방문지라 다음 곳을 기대하며 와인을 사지 않은 것이 후회됐던 곳.
선스톤은 돌로 지은 와이너리 건물이 아주 특별하고 멋있는 곳이다. 또한 우리 일행을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해 와이너리 창업자의 딸이 직접 설명을 하며 와인 시음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데 와인의 맛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페스 파커는 건물 밖의 피크닉 공원이 너무 좋아 거기서 판을 벌여놓고 점심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와인 맛이 영 아니라는 경험자의 조언에 따라 테이스팅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갔던 팍슨은 샌타바바라에서 가장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곳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테이스팅 룸은 길가의 허름한 창고처럼 아주 보잘것없지만 가장 바쁘고 붐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대를 잔뜩 하고 시음했는데 사실은 개인적으로 라펀드의 와인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문에서의 즐거운 수확은 전에 마셔본 적이 없는 새로운 종류의 와인들을 시음해본 것이다. 전통적으로 함께 블렌딩하는 포도품종들이 아닌,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품종들을 섞어서 만든 와인들이 아주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라펀드에서 맛본 ‘노스사이드’(North Side)라는 테이블 와인은 시라 52%에 피노 누아 48%를 섞어 만들었는데 아주 특별한 맛이었다. 특히 팔레트에 남는 새콤한 여운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릴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테이블 와인이었다.
선스톤에서는 시라로 만든 로제 와인이 특이했다.
팍슨에서는 쿠베 진 마리(Cuvee Jean Marie)라는 와인을 맛보았는데 시라 71%, 무르베드르 27%에 놀랍게도 백포도주인 비오니에를 2% 섞은 론(Rhone) 스타일 와인이었다. 부드러우면서 약간 스파이스가 느껴지는 이국적인 맛이 흥미로웠다.
샌타바바라 지역은 샌타 마리아, 롬폭, 샌타이네즈 등지에 70여개의 와이너리들이 산재해 있는데 지난해 영화 ‘사이드웨이즈’(Sideways)가 히트한 이후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주말이면 테이스팅 룸들이 붐비고 시음 비용도 모두 올랐으며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아서 전처럼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와인을 시음할 수가 없었다.
샌타바바라는 LA에서 두 시간 거리로 가깝고 와이너리들이 아름다우며 경치가 너무 좋은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와인의 맛으로만 본다면 그다지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없는 지역이다. 피노 누아와 샤도네가 괜찮고 곳에 따라 좋은 시라도 나오지만 대체로 그저 그런 정도, 우수한 와인을 기대할 수는 없는 곳이다.
그러나 와인 맛을 잘 모른다면 하루 이틀 경치도 즐기고 와이너리들도 돌아보며 여유 있게 즐기기에는 최적의 관광지라고 해도 좋겠다. 김성호씨 부부에 의하면 한국에서 온 손님을 데려가기 가장 좋은 곳이 샌타바바라 와이너리들로 다녀간 사람은 예외 없이 미국 방문에서 가장 좋았던 곳으로 손꼽더라고 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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