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 발생했던 존비속 살해 및 자살 사건의 충격파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한달 사이에 미성년 자녀 5명이 포함된 10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서 너나 나나 침통할 뿐이다.
경제적 문제와 그릇된 가족사랑이 참극을 불렀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오고 사후약방문 같지만 필요하기도 한 조언이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가족과의 소통 단절, 사회와의 고립, 경제적 무력감 극복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어린 자녀들을 자살에 동반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40대, 50대인가 생각해보다가 문득 ‘남성에게도 폐경이 있다’’는 인터넷의 글이 생각났다. 중년의 ‘사추기(思秋期)’ 정도가 아니라 남성에게 실제 폐경기가 온다는 이론이 흥미로웠다.
대강 간추리자면 여성 폐경기는 한편으로는 끝이 아니라 자식 뒷바라지, 부모님 수발, 남편 시중의 굴레에서 벗어난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45세~55세 사이에 찾아오는 남성 폐경기는 퇴임식이며 ‘내리막길’이란 슬픈 표지판이다.
남성 홀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줄고 성욕은 입맛과 함께 뚝 떨어지고 신경질과 분노, 짜증, 눈물은 흔해진다. 자신의 폐경을 인정하거나 공개하려 하지 않아 더 서럽고 고통스럽다. 여성의 증상과 다른 점은 ‘분노’. 늙는 것, 승진탈락, 사업실패, 사오정, 가족사이 왕따 까지도 모두 타인에 대한 분노와 짜증으로 표출된다. 억울하다, 분하다, 죽고 싶다로 전개된다.
반대급부도 있긴 하다. 어린이, 강아지등 생물들이 다 사랑스럽고 옛날 봤던 영화나 책을 다시 보면 몇 배의 감흥을 느낀다. 또 가족이나 지인, 건강함 등이 고맙고 소중해진다. 오만방자했던 시절이 부끄럽고 지혜롭고 겸손해진다.
여성 홀몬 증가로 부드러워지는 폐경기 남편을 위로하고 다독여 주는 최고의 치료제는 바로 아내와 가족. 그러나 폐경기 아내는 남성 홀몬이 증가하여 터프해지고 자꾸 밖으로 나돌려 하기 때문에 엇박자 갈등이 커진다. 그러나 남성 폐경기도 통과의례임을 서로 알고 인정하면 가벼워지고 갈 길도 쉬워진다고 맺고 있다.
글에 나온 한국의 사례가 주변에서 겪고 듣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더니 한결같이 공감을 표했다. 남자대학 동창 홈페지에 올렸더니 “스스로도 몰랐다”며 정말 도움이 된다는 댓글이 기록적으로 붙었다고 했다. 이상하게 변한 남편의 태도만 책망해왔다는 아내들도 ‘자녀까지 합세시켰던 무의식적인 남편 왕따’가 반성이 된다고 했다.
이번의 연쇄 참극 이면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크게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가장의식은 대체로 돈을 잘 벌면 최고라는 것이었다. 부유하면 자질구레한 어려움은 폭발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가긴 한다. 그러나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는가.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있고 소질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지식이나 성실,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도 많고 나이가 들면 무엇이든 하향세다.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책임감이란 미명이나 분별없는 복수심에 가족을 다 끌고 세상 끝으로 나가진 않을 것이다.
세상은 어느 누구에게나 간신히 견디고 넘어가는 고해란 표현도 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보면 고마운 세상이 아닌가? 수년 전 연속극 주제가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는 ‘타타타’의 노래말-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은 건졌잖소-처럼 긍정적 행복 찾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래가 힛트를 쳤다는 것은 사람들의 내면이 그를 절절히 원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은퇴후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받은 것이 감사해서 조금이라도 되돌리고 싶다’며 경찰서나 소방서, 병원이나 자선단체에서 자원 봉사에 올인하는 이들이 많다. 스스로도 행복하겠지만 보기에도 더 없이 아름답고 여유롭다.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안다는 소욕지족(小慾知足)을 덕목으로 새기고 나아가야겠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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