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2위의 신문기업 나이트리더의 창업주 존 나이트는 오하이오의 작은 지방신문을 전국적 뉴스기업으로 키워낸 유능한 사업가이면서도 평소 “편집인보다 더 높거나 더 훌륭한 직책은 없다”고 강조해온 베테란 언론인이었다. 1969년 나이트리더의 기업공개를 했을 때도 그는 월스트릿을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여러분, 나는 결코 여러분의 포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투자자들의 이윤을 위해 저널리즘의 질을 양보하지 못한다는 선전포고였다. 그의 이런 정신을 이어받으며 나이트리더 산하 32개 일간신문이 지난 30여년간 수상한 퓰리처상은 무려 84개에 달한다. 91개 일간신문을 소유한 미국 1위의 뉴스기업 가네트가 받은 퓰리처상은 45개였다.
나이트리더가 지난달 팔렸다. 기업순위 9위의 맥클라치 컴퍼니가 인수했다. 자체 재정악화 때문이 아니라 주가 부진에 불만을 품은 주주들의 압박 때문이었다. ‘포로’도 되지 않았지만 ‘효자노릇’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맥클라치의 CEO 게리 프뤼트 역시 존 나이트 못지않게 ‘저널리즘 우선’을 강조하는 경영자라는 사실이다.
20여년전 맥클라치에 변호사로 입사한 후 신문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추진력으로 정상에 오른 그는 항상 ‘신문을 만드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을 펼쳐왔다. 호경기 때 낭비를 하지 않았고 불경기 때 감원을 하지 않았다. 12개의 신문을 소유한 맥클라치의 재정은 상당히 탄탄하다. 지난해까지 20%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다. 48세의 젊은 회장은 ‘어떤 압력도 뉴스의 보도를 막지 못한다’고 강조하며 언론자유 수호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신보다 두배이상 덩치 큰 기업을 사들인 것도 화제이지만 프뤼트회장의 신문업계에 대한 장밋빛 비전도 흥미롭다. 모든 사람들이 사양산업이라고 우려하는데 그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신문은 아직도 최상의 미디어 산업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산업’이라고 장담한다. 나이트리더를 인수한 다음날 그는 월스트릿 저널에 보낸 기고의 첫머리를 “지난해 세계는 신문의 400주년을 축하했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우리는 ‘신문사망‘ 예언 399주년도 동시에 기념했다…”라고 시작했다. 종이신문의 사망은 그후로도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예고해왔다. 라디오가 생겼을 때, TV가 생겼을 때, 그리고 인터넷 보급이 확산된 몇 년전 부터는 아예 정설로 자리잡았다.
4월은 신문의 달이라고 해도 좋을듯하다. 한국에선 4월7일이 신문의 날이다. 금년으로 50주년을 맞는다. 미국에선 신문인들의 연례회의가 4월마다 열린다. 이번 주초엔 시카고에서 발행인들의 미신문협회 컨벤션이 열렸고 25일~28일엔 시애틀에서 미신문편집인협회가 모임을 갖는다. 주제는 태평양 양쪽이 다 같다. 표현이 약간씩 다르지만 ‘위기를 맞은 신문의 미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토론이 지난 몇년간 계속되어 왔다.
이제 해답은 대충 나와있다. 크게 두가지,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변해야 할 것은 하드웨어다. 뉴스의 전달 방법이다. 종이신문과 함께 닷컴, 케이블TV 등 모든 매체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대로 뉴스를 공급하는 것이다. 통합 뉴스룸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복합미디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종이신문 편집국과 온라인 뉴욕타임스디지털 편집국이 함께 입주할 새사옥을 마련중이고 시카고 트리뷴은 이미 편집국내에 산하 방송국 스튜디오가 들어와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그리고 방송까지 뉴스룸을 통합한 후 취재한 하나의 기사를 산하 각 매체로 공급하는 ‘원 소스 - 멀티 유즈’의 도입이다. 프뤼트회장의 낙관론도 여기에 근거한다. 이제 ‘독자’ 라는 말을 ‘청중(audience)’으로 바꾸자고 그는 제안한다. 신문사가 아닌 뉴스그룹으로 탈바꿈해야 생존이 가능한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변하지 말아야할 것은 소프트웨어다. 모든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기본을 뜻한다. 불확실하고 선정적인 온라인 뉴스가 난무할수록 신문의 생명인 정확한 보도가 돋보인다. 넘쳐나는 정보들의 경중을 판단하고 심층분석과 논평으로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직은 신문만의 강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복잡해지는 세태와는 아랑곳없이 가벼운 뉴스만을 선호하는 독자들의 취향에도 너무 끌려가선 안되고 정치·경제 권력이나 신문사의 이해관계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공정성이 흔들리면 신뢰가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독자가 떠나간다. 신문의 부음은 인터넷 때문이 아니라 이럴 때 쓰게 될 것이다.
신문은 그동안 세상 모두에게 ‘위기에 처했을 땐 근본가치를 지키면서 과감히 변화에 적응하여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한다’고 충고해 왔다. 지금은 신문 스스로가 그 충고에 대한 산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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