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이민법 개혁안 추진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요즘 문득 갖게 된 의문이 있다 - ‘불법 입국은 과연 막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에겐 엊그제 상원 법사위에서 가결된 개혁안이 현재로선 가장 이상적이지만 상원 본회의를 통과하고, 강경하기 짝이 없는 하원안과의 절충을 거친 후 원안대로 살아남을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다. 그런데 ‘멀고 험하더라도 길이 있기는 한가’라는 회의가 생기는 것 이다.
상원에서건 하원에서건 개혁안 논쟁의 핵심은 불법이민이다. 현재 불법체류자만도 무려 660만 가구, 1,200만명이다. 매일 매일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대책이 가장 뜨거운 이슈다. 미 주류사회에 통합시킬 것인가, 외면하고 무시해버릴 것인가 아니면 모조리 색출해 추방시킬 것인가.
몇 년전 오슬로에서 열린 월드뱅크 컨퍼런스에서 ‘이민’에 관한 주제연설을 담당했던 콜럼비아대학 자그디쉬 바그와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서방세계는 불법이민을 막으려고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흐름을 막을 수 있다는 건 환상이다. 절대 막지 못한다. 사람들은 걸어서, 헤엄쳐서, 그리고 날아서라도 들어올 것이다. 인간의 기본 인권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불법이민을 막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우리가 다루는 대상은 밀수품이 아니다, 사람이다…” 저명한 경제 및 법학교수로 이민에 관한 여러 편의 저서를 출판한 그는 그때 이렇게 결론지었다. “차라리 그 시간과 자원을 이민들이 주류사회에 동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데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지금 미 전국의 핫 이슈로 떠오른 불법이민도 ‘문제’라기보다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싸울 대상이 아니라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시키고 이들이 가져올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시키는 메카니즘을 활성화하는 방안 마련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경제학자다운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의 주장은 불법이민의 근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불법이민 근절은 왜 안될까. 그는 1986년 레이건 때 입법화되었던 이민개혁조절안의 결과를 상기시킨다. 격렬한 찬반논쟁 끝에 통과된 그 개혁안으로 270만명의 불체자가 사면을 받으면서 미국은 불법이민 문제의 고삐를 잡았다고 자신했었다. 아니었다. 오히려 86년 당시 6백만명이었던 불체자는 현재 1,200만명, 두배로 늘어났다. 이번 상원 법사위 안에도 불체자에게 합법 신분의 길을 열어주는 조항이 포함되어있는데 지지자들은 ‘사면이 아니다’라고 애써 강조한다. 사면이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또다른 사면을 기대하게 만들어 불법이민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고 법을 어긴 사람에게 상을 주느냐는 반발도 있다. 그래서 사면에는 갖가지 제한이 가해진다. 이번 법사위 안도 그렇고 86년 사면안도 그랬다. 당시 불체자중 절반만 사면을 받았었다. 나머지는 불법으로 그대로 남았고 그 이후 유입을 막지 못했으니 계속 증가한 것이다.
사면안의 내용이 특별히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미국은 모든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싶어하는 ‘천국의 문’이며 미국의 국경은 결코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꼭 20년만에 미국이 다시 고삐잡기를 시도한다. 다양한 개혁안이 올라가 있다. 불체자를 중범으로 몰고가는 비도덕적인 하원안이나 게스트워커 프로를 아예 제외시킨 빌 프리스트안 등보다는 불체자에게 합법신분 취득 기회를 열어주는 상원 법사위 안이 물론 훨씬 바람직하다. 그러나 86년 사면안처럼 불법이민 감소에는 별 도움이 못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면 가야할 방향이 좀 더 확실해진다고 바그와티 교수는 말한다.
“정부가 어떻게 하건 불법입국은 계속된다.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고도로 훈련받은 테러리스트는 이들처럼 허술하게 밀입국하지 않는다. 국가안보와 이민은 별 관계가 없다. 현실을 직시하라. 이민법은 차라리 현재대로 그냥 놔두는 편이 낫다. 단속강화에 힘을 쏟는 대신 이들을 인간답게 대우하며 새로운 미국의 원동력으로 키워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어젠다가 될 것이다”
상원의 이민개혁안 심의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들이 심의하는 대상이 범법자나 침입자가 아닌, 기회의 땅을 찾아와 땀흘려 일하고 있는 한사람 한사람 꿈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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