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살리려 미국 와 신장기증한 한만업씨
직장도 사직…뜨거운 가족애 귀감
사경을 헤매는 누나를 살리기 위해 신장 한쪽을 떼어 주고자 직장에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천리 길을 날아온 남동생의 사연이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그 주인공은 미시간주 켄트우드에 거주하는 한채선(57)씨와 그 동생 한만업(50)씨. 한채선씨는 이미 1995년 동생 채희(53)씨로부터 신장 하나를 기증받았었지만 조직이 서로 완전히 맞지 않아 상태가 악화되다가 중풍까지 걸린 상태에서 8천마일을 건너온 남동생의 신장으로 지난 13일 성공적인 수술을 마친 뒤,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중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고가며 한씨 남매들이 보여줬던 뜨거운 가족 사랑은 미시간주 지역신문 ‘The Grand Rapids Press’ 27일자에 대서특필되어 미국인들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한채선씨가 남편 김찬영(63)씨와 함께 미국에 온 것은 지난 1980년. 한국에서 가정주부로 있던 한씨는 미국에 와서 첫 직장과도 같은 닭 가공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얼 정도로 추운 공장에서 하루 8시간 냉동 고기를 다듬는 일을 서서 하던 그녀는 일을 마치면 다리와 얼굴이 많이 부었다. 병원을 찾았더니 양쪽 신장이 모두 90%정도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때부터 투석을 했어야 했지만 약만 지어먹으며 12년 동안 일을 멈추지 않고 버티던 한씨는 1994년부터 숨도 못 쉴 정도로 몸이 붓고, 소변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너무 악화돼 투석을 할 수 밖에 없게 됐다. 6개월간 한번에 4시간씩 일주일에 3번을 고생하며 피를 걸러낸 뒤 녹초가 되곤 했다.
하지만 상태가 계속 악화되자 한국에 있던 한씨 6남매중 차녀 한채희씨(53)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언니가 젊은 나이에 미국에서 고생만 하다가 이대로 가게 할 순 없으니 내 콩팥을 줘야겠다며 이듬해 미국으로 와서 수술대에 언니와 나란히 눕는다. 그러나 두 자매의 신장 조직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수술 뒤, 한씨의 부작용은 심했고 그녀는 이를 악물고 10년을 또 버텼지만 2005년에 이르러서는 붓기가 다시 심해졌고 심장 혈관 마저 85%가 막혔으니 수술을 해야 된다는 통보까지 접했다.
한채선씨는 심장 수술을 하자마자 뇌졸중, 즉 중풍에 걸려 몸 왼편이 마비되고 사람도 몰라보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녀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때 교회 분들이 장례 준비까지 할 정도로 증상이 안 좋았다고 들었다며 그 때 심정은 한국에 있는 동생들이 걱정할까봐 정확히 말 안 했었고 딸도 직장을 포기하고 내 병 수발만 들었어야할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안양시 관양동 지점장을 마지막으로 조흥은행을 퇴직한 뒤, 그 자회사인 은행 관리업체 CHBIZ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한만업씨는 이미 자신의 신장 조직 검사를 미국으로 보내 놓고 누나를 살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씨는 회사에 휴가 신청을 했지만 회사측에서는 규정상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장기 휴가를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요즘 한국에서 취업난이 심하다지만 직장은 또 잡을 수 있어도 누나의 생명 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고 말한다.
한만업씨는 지난 2월 15일 과감히 사직서를 던지고 2월 21일 미국에 도착해서 산 송장 같이 변해버린 누나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3월 13일 남동생으로부터 떼어낸 신장을 누나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시행됐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남매의 신장 조직이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워낙 건강했던 데다가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신장을 기증하기 위해 몇달간 운동을 꾸준히 했던 동생 한만업씨는 수술 이틀 뒤에 바로 퇴원하고 한채선씨는 며칠후 병원 문을 나섰다. 이제는 두 남매가 나란히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할 정도로 한씨의 건강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한만업씨는 3년전에 조직 적합성 검사를 할 때는 아내에게 숨겼지만 작년에 수술을 결심하며 동의를 구했는데 흔쾌히 수락했던 아내와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의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말했던 대학생 아들, 딸들의 묵묵한 뒷받침도 컸다고 말한다. 새 삶을 얻은 한채선씨는 이제는 정신이 맑아지고 찬송가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가 완전히 제대로 나와서 너무 좋다며 어릴 적 아버지께서 형제자매간에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으라는 말씀을 늘 하시고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셨는데 이렇게 동생들이 생업도 팽개치고 먼 길을 날아와 콩팥을 떼어주니 눈물겹도록 고맙다고 전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장기 기증 문화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한만업씨는 저는 신장 한쪽을 준 것일 뿐이지만 누나에게는 그것이 생명 그 자체였다며 이렇게 집안에 웃음꽃이 핀 것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장기 기증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 있지만 신장 기증자는 2시간에 걸쳐 7센티미터 정도의 절개 수술을 하고 회복도 빨라 안전하다는 점을 들며 특히 가족들간에 조직이 잘 맞는 신장을 기증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되기를 희망했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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