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에, 경첩, 우수에, 춘분도 지났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이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다. 누가 그랬나. 3월은 시심(詩心)이 꽃처럼 피어나는 달이라고. 이 3월이 그러나 올해 따라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꽃샘 추위가 유난히 꼬리를 길게 끈 탓인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심정이다. 날씨 탓만은 아니다. ‘인권문제에 관한 한’이란 단서를 붙여야겠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여전히 겨울을 이야기하는 듯해서다. 그 1신은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중국이 미국에 인권에 대해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권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내용은 그렇다. 미국이야말로 인권이 무시되는 인권 사각지대라는 거다.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지도 못한다.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이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이다. 비판은 계속된다. ‘조작된 언론이 판치는 나라가 미국이다’-.
가만. 가만. 다른 비판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런 면이 분명 있으니까. 그런데 미국의 언론을 비판한다. 툭하면 언론인을 가둔다. 심지어 공권력에 의해 기자가 살해되는 사태가 방치된다. 그런 중국이 말이다. 이쯤 되면 이건 완전 조크다.
중국의 인권보고서는 반격용이다. 올해에도, 그러니까 지난 8일 미 국무부가 인권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북한, 미얀마, 쿠바 등과 함께 ‘가장 조직적인 인권유린 국가’로 지목했다. 그러자 다음 날 북경 당국은 미국을 비난하는 인권보고서란 걸 발표한 것이다.
분명 코미디다. 그러나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남의 나라 인권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 말하자면 인권이라든지, 민주제도 같은 건 내정문제로 치부하고 간섭하지 않는 국제시스템을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북한에는 인권문제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는 미국의 배후조종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북한 인권을 거론하는 건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고 전쟁책동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멀리 유럽발 제 2신의 전단 내용이다.
미국의 북한 인권음모를 유럽에 가르치겠다는 일념 하에 한국의 한총련과 통일연대가 가두시위를 벌였다. 지난 22일과 23일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인권 규탄대회가 그 타겟이었다.
풍물놀이를 벌이며 북한인권대회 저지를 위한 반미집회를 가졌다. 그러나 관심을 보인 사람은 극소수. 풍물소리에 행인들이 잠시 발을 멈춘 정도라는 보도다. 이 역시 조크다. 냉담한 현지인들의 반응에 미대사관 주변을 산책하는 정도로 그 민족적 원정을 끝냈다니.
브뤼셀에서의 해프닝은 이미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는 코미디의 한 단막일지도 모른다. 그 시리즈의 출발점은 2005년 11월17일이다. 유엔 총회가 북한 인권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날, 한국 정부는 그 결의안 표결에서 ‘전략적 고려’ 운운하며 빠진 그 날 말이다.
원래는 비극이 되어야 할 성격의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하도 어이가 없으면 오히려 실소가 터지는 법. 그 날을 기해 북한 인권문제는 마치 코미디물로 전락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 코미디의 두 번째 시리즈는 다름 아닌 한국 외교부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 발언인가 싶다.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분쟁 조정을 맡은 세계의 CEO다. 그 사무총장 직에 북한 인권문제에는 입 한번 뻥긋 못한 한국외교의 사령탑이 도전한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 2탄 코미디의 압권은 아무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다. 뭐라고 했던가. 재외공관장들을 불러놓고 당선을 못시키면 국물도 없다고 일침을 가했던가.
그건 그렇고 브뤼셀에서의 해프닝이 왜 코미디인가. 그건 유럽연합(EU)이 탄생한 배경조차 모르는 무지의 소치로 보여서다. “EU는 인권을 영토와 분리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영역에 들어섰다. 보편적 인권은 유러피안 드림을 법제화 한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이 한 말이다.
영토를 초월한 인권개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게 EU다. 그러기에 북한 인권문제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게 EU이고, 유엔 인권위에 이어 총회에 결의안을 제출한 나라도 미국이 아닌 EU 국가들이다. 브뤼셀 북한 인권대회도 그 같은 관심의 일환이다.
그 EU의 한 가운데에서 농악대를 앞세우고 북한 인권상황을 두호하는 해프닝을 벌였으니.
날씨가 활짝 풀렸다. 3월을 예찬하는 브라우닝의 시 구절이라도 응얼거리고 싶을 날씨다. 끝내 봄이 오긴 온 모양이다. 그런데 불현듯 영랑이 떠올려진다. ‘나의 봄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꿈에나 볼까. 그 그리던 혈육을 겨우 상봉한 고령의 이산가족들이다. 그들을 인질로 잡고 한국기자들의 보도내용에 생떼를 부리는 북한 당국자들. 저 금강산발 3신이 전해진 탓인가.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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