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3월은 온통 야구로 시작해서 야구로 끝난 것(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같다.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참여한 월드챔피언십으로 펼쳐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은 예상밖의 선전을 거듭하며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 한국은 물론 미주한인사회를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지난 2일 대회 1라운드 A조 첫 경기에서 한국이 대만을 2-0으로 셧아웃 시키며 시작된 WBC 열기는 2라운드부터 애나하임과 샌디에고 등 남가주로 무대가 옮겨지면서 본격적으로 남가주 한인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한국이 숙적 일본을 두번이나 연파하는가 하면 메이저리그 올스타로 꾸며진 호화군단 미국을 완파하는 등 경이적인 연승행진을 이어가자 우리는 ‘또 한 번에 세계에 떨친 한민족의 저력’에 가슴 뿌듯해하며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한국을 자신들과는 직접 관계없는 낯선 ‘엄마아빠의 나라’ 정도로 느끼던 미주한인 2세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직접 경기장에서 태극기의 물결속에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의 우렁찬 함성을 들으며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새롭게 눈을 쓰는 일대 전기를 맞기도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한 것은 우리 민족의 무서운 저력이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물론 우리 자신도 놀라게 한 힘이었다. 그저 8강에만 올랐으면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다 잡았던 우승을 놓쳤다는 아쉬움을 안고 대회를 마친 것은 그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해냈고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 민족이 한번 똘똘 뭉치면 세계를 놀라게 하고도 남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이미 역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지만 이번에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 자라나는 2세들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심어준 것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이상한 대진방식 때문에 딱 한번만 졌음에도 불구, 3번이나 진 일본에 우승컵을 내준 것이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거둔 수확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아쉬움이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이번 대회에서 세계 최고몸값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선수들을 내보내고도 1, 2라운드 합계 3승3패에 그치며 4강진출에 실패한 미국의 반응이다. 당연히 우승을 하고도 남을 라인업을 갖고, 그것도 안방에서 반타작에 그치며 허덕대다 4강에도 오르지 못했으니 ‘대 망신’이라고 난도질을 당할 것 같은데 최소한 겉으로는 별로 흥분하는 기색이 없다. 다른 나라들 팀들의 열정에 놀랐고 특히 한국, 일본 등의 기본기에 충실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는 지적과 차기대회에선 선수들의 소집시간을 앞당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정도다.
이 같은 자세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안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오만’이다. 여기서 오만이란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일부 미국관계자들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오만’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축적된 ‘저력’이 진짜 원인인 것 같다. 급조된 국제대회에서 한번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것이 곧바로 실력이 떨어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자신감이다. 실제로 미국이 한국에 졌다고 한국야구가 미국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없을 것이다.
이번 WBC에서 한국이 거둔 성과는 우리 민족의 엄청난 저력을 실감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안방에서 큰 ‘망신’을 당했어도 흥분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미국에서 우리는 또 다른 저력을 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을 통해 깊이 뿌리내린 고목나무같은 유장함에서 나오는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김동우 스포츠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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