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별로 즐겁지 않아서일까, 여기저기에서 ‘행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다소 진부하기도 하고, 감상적이기도 한 행복 이슈가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 곳, 경쟁이 치열한 하버드대학 강의실이라든가 빈틈없는 회계보고가 오가는 대기업 중역실에서 진지하게 분석되고 있다.
35세의 젊은 교수가 강의하는 행복론은 무려 855명이 수강을 신청한 이번 학기 하버드의 최고 인기 강좌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의미있게, 그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토의한다. 실패하는 것을 배워라, 그리고 배우기 위해서 실패하라고 그는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매일을 사는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에게 긴장을 푸는 훈련을 시킨다. 학생들의 반응은 상당히 만족한 편으로 이같은 ‘긍정 심리학’ 강의는 현재 미전역 100개 이상의 대학에 마련되었다. 새로운 과학인 ‘행복론’이 실용적 학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행복과학은 업계에서 이미 실용성을 인정받았다. 최근 월스트릿저널의 특집 ‘행복주식회사’도 이 현상을 보도했다. 몇년전부터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한 연구결과 발표가 활발해지면서 그 내용이 비즈니스에 활용되었는데 꽤 성공적인 효과가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에 긍정 심리학을 접목한 이른바 ‘행복 마케팅’이다. 매년 소비자 심리조사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붓는 미 대기업들에겐 새로운 분야의 발견이다. 스탠포드, 유펜등 명문대학의 심리학, 경제학 교수들이 발표한 다양한 연구결과가 이미 세탁기의 색깔에서부터 종업원 훈련, 운동화 광고에 이르기까지 제품 디자인과 광고기획에 도입되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행복’이 철학자의 담론이나 성직자의 가르침을 벗어나 과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행복의 새로운 과학’이란 제목의 지난해 타임지 보도에 의하면 인간심리의 어두운 면만을 주로 연구해오던 심리학이 그 방향을 바꾼 것은 90년대였다. ‘정신건강이란 정신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이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된 의미있고 풍요롭고 기쁜 마음이라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행복에 관한 것이라도 복잡한 과학이론을 자세히 읽는 것은 별로 행복한 작업이 못된다.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순하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그리고 지금 불행한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행복에 이르는 길은 제각기 다르다. 물질적 행복은 헛된 것이라고 무조건 단정할 수도 없고 보람을 느끼는 삶의 형태도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분석한 행복에 이르는 비결은 몇가지 정리해 낼 수 있다. 가장 큰 요소는 유전자다. 행복을 느끼는 원인의 50%는 명랑하고 긍정적인 천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건 없다. 나머지 대부분의 비결은 우리도 노력해 볼만한 것들이다.
어느 정도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기본 의식주가 안락한 정도에 달하면 그 이상의 부는 행복과 불행의 별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절대적인 부 보다는 친구, 이웃, 동료등에 대한 상대적 부가 행복감을 높여준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의 행복감도 크다. 그런데 이룬 후보다는 이루어지기 전 기대감이 훨씬 더 큰 행복을 준다. ‘어린 왕자’ 속의 여우가 오래전 알려주었던 비밀이기도 하다.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학력과 외모가 행복감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에 반해 종교와 친구의 역할은 크다. 특히 종교와 친구를 통해 타인을 도울 수 있을 때의 행복감은 상당히 지속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에 대해선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독신자가 행복한 기혼부부만큼의 행복을 느끼려면 그들보다 1년에 10만달러를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이 다트머스대학 경제학 교수의 연구결과다.
젊음은 아름답지만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노인들이 더 행복해 한다. 스탠포드대학 교수가 그 이유중 하나를 설명했다. “자신이 가진 게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것마저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재산, 곁에 남은 사람, 그리고 자신의 삶 자체를 감사해 하며 매일 비우는 마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결국 과학적으로 복잡하게 분석해 놓아도 행복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듯 하다. 현명한 링컨이 그래서 이렇게 말했나 보다. “사람은 자신이 결정한 분량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떠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겨울비가 물러가고 주말에 접어들면서 산과 들, 도시의 곳곳에도 환한 봄빛이 가득하다. 누구라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계절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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