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네팔의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여행하면서 티베트 의학을 공부한 젊은 의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산속에 약초농장을 만들어 두고 수십 가지 약초를 키우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로 돌보아 주고 있었다.
참된 의료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그와 여러 날을 같이 지내면서 히말라야의 약초들을 관찰하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약초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히말라를 여행하는 사람들한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인 고산병, 곧 높은 고도로 인해
나타나는 산소부족증을 치료하는 좋은 약초가 없냐고 물었더니 그는 책에서 생열귀나무 열매 그림을 보여 주면서 이 열매로 만든 차가 고산병으로 인한 여러 증상을 치료하는데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곧 생열귀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천연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뇌에 산소를 빨리 공급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고산병 치료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히말라야의 고산지방에는 생열귀나무가 흔하다.
생열귀라는 이름은 매우 낯설다. 그러나 비슷한 식물인 해당화나 찔레나무, 장미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생열귀나무는 해당화나 장미, 찔레나무와 사촌쯤 되는 나무다. 생열귀나무는 까마귀밥나무, 가시열매, 뱀찔레 등의 여러 이름이 있으며 한자로는 자민과(刺玟
果), 산자민(山刺玟), 자민장미(刺玟薔薇) 등으로 쓴다. 우리나라, 일본, 만주, 시베리아 등에 널리 퍼져 자라는 장미과에 딸린 잎지는 떨기나무다.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산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들장미(wild rose)라고도 하고 로즈 힙(Rose Hip)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이북 해발 200-1,200미터쯤 되는 추운 곳에 자생하며 추위에 강하고 물기가 많으며 기름진 땅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
에는 높은 산에서만 자라지만 시베리아나 북유럽 등 추운 지방에서는 아무데서나 흔하게 볼 수 있고 북미에는 동북부 지방 곧 메인, 미네소타, 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주 등에 많다.
해당화를 닮은 진한 빨강색 꽃이 6-7월에 피는데 향기가 좋다. 한 개 또는 두세 개가 모여서 피며 꽃이 지고 나서 8-9월에 타원꼴의 빨간 열매가 익는다. 열매는 1-1.5센티미터이며 열매 속에는 24-30개의 자잘하고 흰빛 나는 씨앗이 들어 있다.
더러 흰 꽃이 피는 것이 있어서 흰생열귀라고 하고, 열매가 긴 타원꼴인 것을 긴생열귀, 잎 뒷면에 점이 없는 것을 민생열귀라고 부른다.
비타민 보고(寶庫)
생열귀나무는 비타민의 보고(寶庫)다. 잎과 열매에 비타민이 골고루, 그리고 가장 많이 들어 있어서 비타민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비슷한 식물인 들장미 열매와 잎을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이스, 바빌론, 로마시대에서부터 즐겨 약으로 썼으며 지금도 유럽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향수 원료
나 약으로 널리 쓰고 있다. 들장미에는 비타민 C가 매우 많고 비타민 A, B, E, K, P 등과 니코틴산아미드, 유기산, 탄닌 등도 매우 풍부하게 들어 있다. 생열귀나무 열매로 만든 차 곧, 로즈힙 차는 새콤달콤하면서도 산뜻한 맛이 일품이고 비타민 C가 매우 많아 천연비타민제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즐겨 마시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로즈힙이라고 하여 생열귀나무로 만든 천연 비타민제를 약국이나 건강식품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수많은 종류의 로즈힙 제품들이 생열귀나무 열매나 잎에서 추출하여 만든 것인데 모든 비타민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생열귀 열매는 날로 먹을 수 있고 열을 가하여 졸여서 잼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으며 말려서 차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날로 먹으면 약물중독, 물고기 중독 등 온갖 독을 풀어 줄 뿐만 아니라 완하작용이 있어서 변비를 없애는 효능이 있고, 차로 우려내어 마시면 몸을 따뜻하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위장을 튼튼하게 한다.
뿌리와 꽃도 약으로 쓴다. 꽃은 위를 튼튼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며 어혈을 풀고 생리불순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뿌리는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주며, 염증을 삭이고 당뇨병으로 인한 혈당치를 낮추어 준다. 손발이 저리거나 시린 데, 말초혈관장애로
인한 손가락이나 발가락 괴사 등에 효과가 있다.
몇 해 전에 버거씨병으로 엄지발가락이 차츰 썩어 들어가서 발가락을 잘라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이 찾아왔다. 보조요법으로 생열귀나무와 찔레나무 뿌리를 수십 킬로그램 채취해서 진하게 물로 달여서 먹도록 권했더니 몇 달 뒤에 상당히 호전되어 발가락을 자르지 않게 되었다는 연
락이 왔다.생열귀나무열매에는 레몬보다 비타민 C가 20-60배가 많고 베타카로틴은 당근보다 8-10배나 많으며 비타민 B2, 비타민 K, 펙틴, 타닌 등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최근에는 생열귀나무 열매와 잎, 줄기, 뿌리 등에 세포의 노화를 막는 항산화물질이 많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항암효과가 있다고 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꽃과 잎은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염증을 억제하는 효력이 있어서 소화기나 기관지 계통의 염증, 그리고 몸이 붓거나 소변을 잘 못 보는 증상에 쓴다. 특히 생열귀나무 꽃으로 만든 차는 인후염과 기관지염, 입안에 생긴 염증에 좋은 효과가 있다. 잎은 완하작용과 항염증 작용이 우수하여 만성 장염이나 대변과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데, 그리고 상처를 소독하고 염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널리 썼다.
서양에서는 생열귀나무와 들장미 등 여러 종류의 장미꽃을 증류하여 만든 장미수(薔薇水)나 장미유(薔薇油)를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쓴다. 장미꽃이나 열매를 증류하는 방법은 수천 년 전 페
르시아에서 처음 개발되었으며 두통, 복통, 현기증, 구토, 소화불량을 치료하는데 주로 썼으며 강심제나 미약, 각성제로 쓰기도 했다.
술이나 음식에 향을 내는 데에도 썼고 왕족이나 귀족들이 목욕할 때 방향제나 목욕제로도 썼다.
생열귀나무 꽃 정유(精油) 곧 장미유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맑은 날 이른 아침 해뜨기 직전에 반쯤 핀 꽃을 따서 모아 가마에 넣고 열을 가하여 위로 올라오는 수증기를 냉각기를 통해 응축하여 받은 액체가 장미수인데 이 물을 증류하면 장미유 또는 장미정유가 된다. 장미유의 주요
성분은 게르니올, 시트로네올, 리나롤 등이다. 장미유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생열귀나무 꽃이나 장미꽃 4톤이 필요하다.
그런 까닭에 장미유는 액체로 된 황금이라고 할 만큼 비싼 값에 거래된다. 이 밖에도 생열귀나무 꽃은 포플리나 배갯속 재료, 꽃다발 재료 등으로도 널리 쓴다.
생열귀꽃차는 생열귀나무 꽃잎에 설탕을 넣고 물을 부어 2-3시간 약한 불로 졸인 것이다. 여기에 레몬즙을 약간 넣으면 맛이 더 좋으며 이 차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살결을 부드럽게 하는데 좋은 효과가 있다.
말린 생열귀나무 꽃잎 30-40그램에 끓는 물 600밀리리터를 붓고 하루쯤 두었다가 걸러내고 그 물에 설탕 50그램을 넣고 끓여 걸쭉한 죽처럼 만든다. 이것을 밥숟갈로 한 숟갈씩 먹으면 마음을 편안해
지고 몸이 따뜻해지고 위장이 튼튼해진다.
16세기에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생열귀나무 꽃잎을 짓찧어 알약을 만들어 입 안에 물고 있으면 페스트를 물리칠 수 있다는 속설이 생겨났는데, 그 뒤부터 생열귀나무가 온갖 병마로부터 몸을 지켜 주는 부적으로 널리 썼다. 지금도 유럽 여러 나라에는 생열귀나무 꽃을 태워
서 그 향기로 병마를 쫓는다든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갈 때는 생열귀나무 꽃을 넣은 주머니를 허리에 차는 풍습이 남아 있다.
노화 억제하고 살결을 매끄럽게 한다
최근의 과학적 연구에서는 생열귀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로즈힙 오일이 살결을 곱게 하고 피부의 노화를 막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을 입증하였다. 로즈힙 오일은 주름살을 없애고, 기미나 주근깨를 없애며 살결을 곱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불티나게 팔리
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열귀나무가 흔하지 않으므로 우리 옛 아낙네들은 찔레나무 꽃을 술에 담가 정유성분을 추출하여 미용수로 썼다. 찔레나무로 꽃으로 만든 미용수로 살결을 문질러주고 날마다 얼굴을 씻으면 살결이 옥처럼 고와지고 주름살, 주근깨, 기미 등이 없어진다고 한
다.
생열귀나무 열매의 약성에 대해 옛 의학책에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적혔다.
“생열귀나무열매는 맛은 달고 시며 성질은 평하다. 소화를 잘 되게 하고 어린이가 음식을 잘못 먹고 체한 것을 낫게 한다. 비장을 튼튼하게 하고 기의 순환을 조절하며 혈을 자양하고 월경을 조절한다. 기체로 인한 설사, 소화불량, 위의 통증, 생리불순을 낫게 한다. 여러 가지 비뇨
기계통의 질병에는 생열귀나무 열매 50-100그램을 물로 진하게 달여서 마신다.”“생열귀나무뿌리는 생리 때 피가 멈추지 않는 증상을 치료한다. 30-40그램에 달걀을 같이 넣고 달여서 마신다.” “월경이 나무 많이 나올 때에는 생열귀나무 꽃 5-10개를 물로 달여서 마신다.”
설사와 이질 치료
생열귀나무는 설사와 이질을 치료하는 데에도 좋은 효과가 있으나 그냥 잎이나 뿌리를 달여 먹는 방법으로는 효과가 적고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농축해서 써야 한다. 그 방법을 여기에 적는다.생열귀나무잎 10킬로그램에 물을 10배를 붓고 4-5시간 센 불로 달여서 1차 추출액을 얻고 그
찌꺼기에 다시 물을 5배를 붓고 10-15시간 약한 불로 달여 2차 추출액을 얻는다. 이 두 가지 추출액을 합쳐서 은은한 불로 오래 달여 물엿처럼 되게 농축한다. 한편 생열귀나무잎 1킬로그램을 말려 가루 낸다. 생열귀나무잎을 농축한 진액과 잎가루를 1 : 1의 비례로 섞어 알약을 만
든다. 이것을 한 번에 1-2그램씩 하루 3-4번 따뜻한 물과 함께 먹는다. 대략 1개월쯤 먹으면 장이 매우 튼튼해진다. 생열귀나무 잎과 뿌리는 적리균, 포도상구균, 녹농균, 갖가지 진균 온갖 균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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