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3월19일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을 때 미국의 승리를 의심한 사람은 드물었다. 미국인의 94%가 이길 것을 예상했다. 지금은 패배를 확신하는 미국인이 40%에 달하고 있다. 57%는 개전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지적한다. 전쟁의 총사령탑 대통령의 인기 역시 함께 폭락 중이지만 부시는 미련을 못 버린다.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대통령 임기중 최대 과제가 바로 이라크 전쟁이기 때문이다. 승리하면 자신의 역사적 평가는 높아질 것이지만 패배하면 역사 속에 초라하게 남겨지게 된다.
부시는 이라크전쟁 3주년을 전후로 이번 주부터 다시 전쟁의 지지를 호소하는 순회연설을 시작했다. 이라크 사태를 ‘반 컵의 물’로 바라보며 낙관론을 펼치지만 ‘외로운 투쟁’이다. 여론은 여전히 냉담하고 공화당 보수우파들 조차 ‘이라크 국민을 독재로부터 해방 시킨다’는 원래의 임무를 끝냈으니 빨리 철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쟁과 이를 둘러 싼 국제외교는 원래 대통령 부시의 주요 어젠다가 아니었다. 조세제도 간소화, 소셜시큐리티 개편등 국내문제 해결이 우선 공약이었다. 그러나 취임 1년이 채 못되어 터진 9.11사태는 모든 상황을 뒤집어 놓았다. 테러와의 전쟁이 지상과제가 되었다.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한 아프간을 침공한 첫 전쟁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뒤 이어 결정된 이라크 침공은 달랐다. 처음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해외 우방들이 등을 돌렸고 9.11을 계기로 단합되었던 국내 여론도 분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침공의 명분으로 삼은 정보도 허위였다. 사담 후세인은 잔인한 독재자였지만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지는 않았다. 개전 두달만에 후세인을 축출했고 ‘종전’도 선언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부시가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였다. 지난주 이라크의 미국대사 잘마이 칼릴자드가 한 말이다. 그리스 신화 속 최초의 여성 판도라가 호기심에 못 이겨 열어본 상자에서 인류의 모든 재앙이 튀어나왔듯 부시가 시작한 전쟁으로 인해 이라크에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휘몰아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군 사망자는 2,300명, 부상자는 1만7천명을 넘어섰고 이라크인 사망은 10만까지로 추정되며 전비도 이미 2천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는데 전쟁은 아직도 끝이 안 보인다.
물론 이라크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진전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헌법 마련을 위한 이라크 국민투표엔 1천만명이 참여했고 12월 중순 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도 무난히 실시되었다. 예정대로 전국적인 통합정부가 구성되고 이라크군에 대한 훈련과 무장이 완료되면 금년 여름부터는 단계적 미군철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부시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그런데 새해부터 이라크 정세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수백년 반목해온 종파간 분쟁이 격화된 것이다. 부시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순간 뛰쳐나온 대재앙의 실체다. 정치적으로만 본다면 그동안 시아파와 잘 연합해온 쿠르드족이 시아파와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면서 수니파와 손잡는데서 비롯되었다. 특히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뿌리깊은 분쟁은 지난 2월22일 시아파 사원이 폭파되면서 걷잡을 수없는 유혈 보복전으로 치닫고 있다. 반군폭도의 테러가 아니다. 이웃이 이웃을 서로 죽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훈련시킨 정부군대가 국민을 보호하는게 아니라 반대 종파 살해에 가담하고 있다. 새 의회는 오늘 개원이지만 이미 ‘내전’의 양상을 보이는 종파분쟁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아니다.
이런 와중에서 미군이 철수할 수 있을까. 분쟁이 악화될수록 중재자로서의 미군 주둔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는데 정세가 불안해지니까 미국내의 철군압력도 거세어진다. 진퇴양난의 부시는 그래도 철군시기의 원칙을 굽히지 않는다. “이라크정부가 자체방어능력을 갖춘 후”다. 전쟁의 궁극적 목적, “평화롭고 안정된 아랍 최초의 민주국가”에 대한 환상도 버리지 못한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부시가 환상을 버리지 못하면 승리는 고사하고 철군도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냉정한 진단이다. 승리의 기준부터 낮추라고 한다. 종파간의 표면적 합의라도 이끌어내 형식상의 전국적 통합정부라도 구성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이를 계기로 빠른 철군을 단행한다면 절반의 승리정도는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 미군의 주둔 목적을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독재에서 ‘해방’이 아니라 처음부터 ‘점령’이었다는 것이다.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점령 - 테드 카펠과 톰 브로커등 미국 저명 언론인들의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라크 전쟁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될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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