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 절반 오리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입맞춘다 쪽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충남 예산 지방의 민요인 ‘나무 노래’에 나오는 피나무의 ‘피’자는 칼로 베어 나오는 피가 아니라 껍질 피(皮)를 뜻하는 말이다. 피나무는 껍질의 쓰임새 덕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나무다. 껍질의 섬유질이 삼베보다도 질기고 물속에서도 잘 썩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옛 사람들은
이것으로 노끈, 삿자리, 그물, 자루, 망태기, 미투리 등을 만들었고 기와나 너와 대신 지붕을 이는 데 쓰기도 했다.
껍질의 쓰임새가 많은 나무
피나무열매나 피나무의 사촌쯤 되는 염주나무의 열매를 실로 꿰어서 염주를 만든다. 전북 정읍에 피나무와 염주나무를 수백 그루 심어 두고 그 열매를 따서 염주를 만드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는 피나무야말로 꽃이 아름답고 꿀이 많이 나며 목재로도 가치가 크고 열매로는 염주를 만들 수 있으므로 이 땅의 큰 보물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초여름철 피나무 꽃이 만발할 때에 그의 농장에 가 보면 수백 그루의 아름드리 피나무숲에 꽃이 만개한 모습이 마치 꽃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우며 꽃향기가 온 천지에 진동하여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나무꽃에는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 이름이 높다. 피나무꿀은 빛깔이 맑고 향기가 좋아 꿀 중에서 상품으로 여긴다. 피나무꽃은 모든 꽃 가운데서 꿀이 가장 많다. 피나무숲 1헥타(3,000평)에서 한 해에 2-5톤의 꿀이 나오며 피나무 숲에 있는 꿀통에는 하루에 3-5킬로그램의 꿀이 모인다고 한다.
피나무를 불교에서는 보리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디 보리수는 피나무가 아니라 인도에서 자라는 반얀나무를 가리킨다. 그러나 반얀나무는 열대지방에서만 자라고 온대지방에는 자라지 않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반얀나무와 잎이 비슷한 피나무를 대신 보리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음악에도 보리수라는 가곡이 있다. 이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 역시 인도에서 자라는 보리수가 아니라 피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피나무는 동양보다는 서양에 훨씬 더 흔하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녀 보면 숲에도 피나무가 흔할 뿐만 아니라 가로수로 심은 곳도 많다. 피나무는 잎이 둥글고 수형이 단정하며 곧게 자라고 키가 훤칠하게 크게 자라며 전정을 하기에도 좋으므로 유럽에서는 가로수로 인기가 있다.
피나무 목재 또한 결이 부드럽고 연하며 가벼워서 인기가 높았다. 최고의 조각재로 쳐 주었고 가구 재료로도 으뜸이었다. 특히 울릉도에서 난 섬피나무 바둑판과 소반은 신분이 높은 귀족들이 지극히 탐내는 귀한 물건이었다. 피나무 목재는 가볍고 연하여 가공하기 쉽고 결이 치밀하면서도 단단하여 옛날부터 여러 종류의 가구를 만드는 데 귀중하게 써 왔다.
옛날에는 나막신이나 그릇을 만드는 데 많이 썼고 요즈음에는 조각품, 피아노와 오르간의 소리판, 연필, 성냥개비 등을 만들거나 고급 종이의 원료로 쓴다.
울릉도 성인봉에는 수백 년 묵은 피나무 거목들이 떼를 지어 자라고 있는데 줄기가 썩어 구멍이 생겨 그 구멍 속에 두세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곳곳에 아름드리 피나무가 많았으나 함지박이나 목기를 깎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베어 거의 없어졌다. 지리산 칠선계곡에도 굵은 피나무들이 많아 거대한 피나무 한 그루를 베어 낸 그루터기에 초등학생 20여 명이 앉아서 점심을 먹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신경쇠약 불면증에 효험
피나무는 약으로의 쓰임새도 매우 크다. 초여름에 피는 피나무 꽃은 향기가 좋고 땀을 나게 하는 작용이 뛰어나 감기와 몸살을 치료하는 약으로 널리 쓴다. 마음을 편안하고 차분하게 하는 작용도 있어서 신경쇠약이나 불면증 치료에도 많이 쓴다.
피나무 꽃에는 향기가 나는 정유 성분과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들이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이며 열을 내리고 염증을 없애며 통증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피나무꽃은 류마티스성 관절염, 위암, 헛배 부른 데, 위염, 위궤양, 만성 장염, 설사, 이질 등에도 좋은 효
과가 있다.
피나무 꽃은 향기가 뛰어나 최고급 향료를 얻는다. 꽃잎만을 모아서 증류하여 얻은 정유성분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감기와 기침을 치료하는 효능이 높고 달콤한 향기 또한 일품이어서 유럽 사람들한테 특히 인기가 있다. 피나무 꽃, 잎, 껍질의 주요성분은 정유성분과 후라보노이드 배당체, 사포닌, 탄닌, 망간 등이다. 특히 껍질에는 쿠마린이 많이 들어 있어서 기침 치료에 특히 좋은 효능이 있다. 피나무껍질에는 이 밖에 기름성분과 밀납, 펙틴 등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들이 염증을 삭이고 악성 종양을
억제하며 통증을 멎게 하는 작용을 한다.
피나무를 허약체질을 개선하는 보약으로 쓸 수도 있다. 중국에서 펴낸 절강천목산 약식지(浙江天目山藥食誌)에는 힘든 노동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기운이 빠진 데에는 피나무껍질이나 잔뿌리 3백 그램을 물로 달여서 설탕을 넣고 좋은 술을 타서 아침저녁으로 밥먹기 전에 먹으면 좋은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또 만성 기침에 뿌리껍질을 30-40그램을 말려서 꿀을 발라서 구은 다음 물로 달여서 밥먹기 전에 마시면 좋다고 적혔다.
피나무 꽃은 초 여름철에 따서 그늘에 말렸다가 달여서 복용한다. 피나무 꽃은 열을 내리고 땀을 잘 나게 하며 염증을 없애는 작용이 탁월하므로 모든 소화기관과 호흡기계통의 모든 염증성 질병과 열병, 감기, 몸살 등에 두루 쓸 수 있다.
골수염과 골수암에 특효 피나무 기름
골수암이나 골수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피나무 기름을 내어 쓰기를 권한다. 실제로 피나무 기름으로 악성 골수염과 골수암을 고친 사람이 꽤 여럿 있다. 피나무 기름을 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깊은 산 속에서 자란 굵은 피나무 줄기를 잘라 20-30센티미터쯤의 길이로 토막 낸 다음 잘게 쪼개어 3말(60리터) 이상 들어가는 오지항아리에 넣는다.
② 그런 다음 피나무가 들어 있는 항아리보다 약간 더 큰 항아리 하나를 목만 나오도록 땅을 파서 묻는다.
③ 피나무가 들어 있는 항아리 주둥이를 삼베로 두 겹을 덮어씌우고 명주실로 단단히 묶은 다음 땅에 묻힌 항아리 위에 거꾸로 엎어놓고 굵은 새끼줄로 항아리 전체를 칭칭 감는다.
④ 그 위에 물로 진흙을 이겨 5센티미터쯤의 두께로 항아리 전체에 바르고 항아리 주둥이가 서로 맞물리는 부분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잘 밀봉한 다음 그 위에 왕겨를 아홉 가마니쯤 쏟아 붓고 불을 붙여 태운다.
⑤ 왕겨가 다 타기까지 대개 일주일에서 열흘쯤 걸린다. 왕겨가 다 타고 항아리가 식으면 아래 항아리에 고여 있는 피나무기름을 꺼내어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여 두고 약으로 쓴다.
⑥ 복용하는 방법은 하루 3-5번 한 번에 30-50밀리리터씩 먹는다. 맛이 거북하므로 처음에는 조금씩 먹다가 차츰 양을 늘려 나가는 것이 좋다.
피나무기름은 갖가지 염증과 종기, 피부병, 갖가지 암, 위장병 등에도 효력이 좋다. 이밖에 뼈를 튼튼하게 하고 무릎과 관절을 튼튼하게 하며 부은 것을 내리고 근육과 힘줄을 튼튼하게 하는 등 그 효력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뛰어나다.
불교와 가장 가까운 나무
피나무 새싹은 신장염과 부종에 좋은 효력이 있다. 봄철에 피나무 새순을 따서 그늘에서 말렸다가 몸이 붓거나 소변이 잘 안 나올 때 달여서 먹는다. 하루 10-15그램을 물 한 되(1.8리터)에 넣고 약한 불로 한 시간쯤 달여 물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한 다음 3-5번 나누어 마시면 된다.
신경성 위장병, 신경쇠약, 불면증 등에는 초여름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따서 말린 것 3-5그램을 뜨거운 물 한 잔(300밀리리터)에 3-5분 우려내어 하루 3-4번 차 마시듯 마신다.
신장결석이나 통풍에도 피나무를 쓴다. 피나무의 흰 속껍질을 까맣게 태워서 곱게 가루 내어 한 번에 한 숟갈씩을 물 600밀리리터에 넣고 20분쯤 끓여서 그 물을 마신다. 피나무 속껍질은 이뇨작용이 탁월하고, 몸속에 있는 온갖 노폐물과 중성 지방질을 빼내는 작용이 있어서 비만증 치료에도 좋은 효험이 있다.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에는 피나무 속껍질 15-20그램에 물 1되(1.8리터)를 붓고 물이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달여서 차처럼 마신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의 심장병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이밖에 피나무 껍질을 진하게 달인 물로 얼굴을 씻거나 목욕을 하면 살결이 고와지고 기미, 주근깨, 여드름, 피부병 등이 없어진다.
피나무에는 종류가 많다. 우리나라의 절간에는 피나무나 피나무의 한 종류인 염주나무를 보리수나무라고 하여 마당에 심어 두고 신성하게 여기기도 하는데 염주나무도 피나무와 마찬가지로 약으로 쓸 수 있다. 염주나무는 본디 우리나라에 있던 것이 아니고 중국에서 들여 온 것이며 석가모니가 큰 깨우침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이다.
본래 보리수나무는 인도나 네팔에서는 반얀나무라고 하며 공기 중에 뿌리를 내리는 기근이 매우 발달하고 우리나라의 느티나무처럼 매우 굵고 크게 자라며 수명이 매우 긴 나무이다. 석가모니는 이 나무에서 명상수행을 하던 중 대오각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피나무와 염주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들므로 어쨌거나 피나무는 불교와 인연이 깊은 나무이다.
피나무를 영어로는 린덴(linden) 또는 티언(Tilia)으로 쓴다. 유럽, 러시아, 중국, 일본 등에 수십 종류가 널리 퍼져 자라며 미국에는 미국피나무(Tilia americana)가 동북부 지방 일대에 저절로 나서 자란다. 뉴욕, 뉴저지, 미네소타, 미시간, 일리노이, 메인 주 등의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정원수나 가로수로 더러 심기도 한다. 뉴욕이나 뉴저지에서는 오래 된 정원이나 잘 가꾸어진 공원 같은 데 가 보면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아름답게 자란 아름드리 피나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한국토종약초연구학회 회장/연락처 213-605-2472>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