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 맥코비는 유랑 서커스단의 매표원으로 일하던 가난한 20대의 이혼녀였다. 1969년 여름 퇴근길에서 그는 3명의 남자에게 끌려가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임신했다. 일을 그만 두어야 했던 그는 아기를 기를 능력도 없었고 또 낳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당시 그가 사는 텍사스의 주법에 의하면 낙태는 중범죄였다. 낙태수술을 한 의사는 최고 5년 징역형에 처해지며 수술 받은 여성 역시 공범으로 처벌받았다. 아기를 낳든지 아니면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고 뒷골목 불법 시술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가난한 그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맥코비는 이 법을 무효화 시키는 법정투쟁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제인 로우’라는 가명으로 낙태금지법 위반을 담당한 검사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현대법률사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스 중 하나인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낙태를 둘러싼 법정투쟁은 미 전국을 뜨거운 찬반논쟁 속에 몰아넣으며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텍사스를 비롯한 31개주가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을 때여서 71년 대법원이 이 케이스를 심리하겠다고 결정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뉴스였다. 그 사이 낙태시기를 놓친 맥코비는 딸을 출산해 입양시켰으나 심리는 계속되었다. 드디어 73년 연방대법원은 낙태의 선택여부는 임신한 여성의 헌법적 권리에 속한 것으로 이를 금지하는 주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이 판결로 31개주의 낙태금지법은 무효화되었다.
그러나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은 낙태논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여성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기본권을 찾아준 사건이었지만 청교도적 보수우파 진영엔 사명감에 찬 반대운동의 불길을 당긴 계기가 되었다.
그후 33년간 반대운동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연방과 각 주의회에 수없이 많은 낙태제한 법안들이 상정되었다. 위헌으로 폐기된 법안도 허다했지만 합리적으로 포장되어 입법에 성공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미성년 산모의 부모에게 사전 통보, 의사의 처방과 지시에 대한 까다로운 제한, 수술 받기 전 일정 기간 대기 의무화…낙태권은 조금씩 침식당했다.
그래도 이번 사우스다코타주의 낙태금지법처럼 강경안은 거의 없었다. 6일 주지사가 서명한 이 법안에 의하면 낙태는 거의 전면금지다. 산모의 생명이 위독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낙태수술이 처벌대상이다. 흉악범에 강간당하거나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했다 해도 낙태는 안된다. 수술해주는 의사는 최고 5년 징역형에 처해진다. 73년 로우 판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너무 도발적이다. 미국인의 60%가 낙태권을 무조건 지지하고 강간의 경우엔 지지율이 80%로 올라가는 것이 여론의 추세다.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정치인들도 역풍을 우려하며 난색을 표한다. 10여개 주에선 유사한 낙태금지안을 마련해 놓고 다코타 법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동향을 충분히 알고있을 강경우파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다코타 법안은 7월부터 발효되지만 시행이 어렵다는 것은 주지사도 인정한다. 진보진영에서 당장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긴 법정투쟁으로 이어지다가 결국엔 연방대법원으로 갈 것이다. 존 로버츠와 새뮤얼 얼리토 두 대법관의 취임으로 보수화한 대법원 - 바로 여기가 이들이 대담한 도박을 감행한 근거다. 로우 판결 자체의 번복을 겨냥한 것이다.
9명 대법관 중 5명은 이미 로우 판결을 지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다코타 법이 대법원에 상정될 무렵이면 진보파인 85세의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은퇴하고 새 보수 대법관이 취임하리라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물론 보수파 대법관의 상원인준 청문회는 3차대전 못지않게 치열할 것이고 그전에 민주당 정부로 바뀔 수도 있으니 이들의 목표는 희망에 그칠 확률이 지금으로선 더 크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요즘 미국사회 ‘낙태 정치화’의 행태는 너무 지나치다. 미국여성 3분의 1이 일생에 한번은 낙태 수술을 한다고 한다. 낙태가 보통사람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흔히 찬반논쟁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낙태를 좋아하고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가 아이를 가져 수술시켜야하는 경우도 있고 도저히 키울 능력이 없어 포기하는 엄마도 있다. 어떤 상황이든 고통스러운 선택이다. 정부가 아닌 산모 자신이 내려야 하는 개인적 결정이고 극히 사적인 가족의 문제다. 특정 종교나 정치 집단이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이념 실현 대상으로 삼을 이슈가 아니다.
낙태에 대한 사회적 과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마디로 정의했었다. “안전하게, 합법적으로, 그러나 아주 적게(safe, legal and rare)” 피치못할 낙태라면 안전하고 합법적 수술을 가능케 해주면서 원치않는 임신을 줄이도록 예방교육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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