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전에 한의사 한 분이 편지와 함께 소포를 보내왔다. 소포 꾸러미를 풀어보니 잘게 썬 나뭇가지가 한움큼 들어 있고, 편지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된 약초꾼 한 사람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약재를 가져 왔습니다. 여러 가지 간 질환과 관절염, 신경통, 중풍 등에 좋은 효과가 있는 약재라고 들었는데 이름을 모른다고 하더군요. 간염이나 간경화 등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말에 흥미를 느껴 마침 간경화를 앓고 있
는 환자가 한 사람 있어서 다른 처방에 이것을 섞어서 처방을 해 보았습니다. 예상 밖에 간경화 환자가 빨리 회복되더군요. 저는 관심을 갖고 온갖 간질환 환자와 신경통, 관절염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한테 이 약재를 써 본 결과 이것이 약초꾼의 말대로 온갖 간질환과 신경통, 관절염,
중풍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요즈음 한의원을 찾아오는 거의 모든 환자한테 이 약재를 처방하고 있으며 매우 좋은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이 약재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고, 또 나름대로 자료를 이것저것 뒤져 보았으나 도무지 이
약재의 이름을 알 수가 없어서 선생님께 문의 드립니다. 이 약재의 견본을 함께 보내드리니 이것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잘게 썬 나뭇가지를 한움큼 집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코를 톡 쏘는 강렬하고 매운 냄새가 났다. 바로 구룡목의 향기였다. 구룡목의 냄새는 강렬하고 특이하여 다른 나무의 냄새와는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나는 그 한의사한테 구룡목에 대한 자세한 글을 적어서 보냈고
그 뒤에 그 한의사는 간질환에 명의로 이름이 났다.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한 약나무
몇 해 전에 중풍, 고혈압, 당뇨병, 신부전증을 한꺼번에 앓고 있는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찾아왔다. 중풍으로 앉은뱅이가 된지 3년이 되었고, 신부전으로 혈액투석을 시작한 지는 2년이 넘었다고 한다. 환자는 제발 좀 고쳐 달라고 애원을 하였지만 상태가 너무 위중하여 치유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먼저 나는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걸어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구룡목을 많은 양으로 달여서 먹게 하였다. 놀랍게도 환자는 6개월 동안 구룡목을 열심히 달여서 마신 덕분에 휠체어에서 일어나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구룡목(九龍木)은 장미과에 딸린 큰키나무이다. 깊은 산 속이나 물기 있는 개울가에 드물게 자란다. 잎지는 큰키나무로 키는 15미터쯤 자라고 줄기는 검은 빛이 나며 잎은 벚나무잎을 닮았다. 5월에 벚꽃을 닮은 꽃이 가지 끝에 모여서 피는데 꽃이 만발하면 마치 꽃구름이 산기슭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아름답다.
가을에 버찌 모양의 먹처럼 까만 열매가 익어 겨울까지 가지 끝에 주렁주렁 달려 있으면서 뭇 산새들의 먹이가 된다. 잔가지를 꺾어서 코에 대면 약간 매운 듯 하면서 특이한 향기가 난다. 이 향기를 악취로 여겨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말로는 귀룽나무 또는 구름나무라고 부르며 한자로 구룡목(九龍木)으로 쓴다. 귀룽나무, 암귀룽나무, 흰귀룽나무, 흰털귀룽나무, 서울귀룽나무 등의 여러 종류가 있으며 어느 것이나 다 같이 약으로 쓴다.
구룡목이라는 이름은 불교와 관련이 깊다. 불교의 연중행사로 관불회(灌佛會)가 있다.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향수로 아기 부처님의 몸을 씻어주고, 땅속에서 연꽃이 솟아올라 그 발을 떠받쳤다고 하여 지내는 의식이 관불회다.
우리나라에도 평안북도 운산군의 구룡강,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비롯하여 곳곳에 구룡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의주의 압록강변에 구룡연(九龍淵)이 있었으며 여기에
는 세종 때 구룡 봉화대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의주의 구룡 근처에 특히 이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검은 빛깔의 나무 줄기가 마치 아홉 마리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고 하여 처음에는 구룡나무라고
하다가 차츰 발음하기 쉬운 귀룽나무로 바뀐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북한에서는 이 나무를 ‘구름나무’라고 부른다. 연초록의 새잎 위로 하얀 꽃이 무리지어 피는 모양은 여름날 뭉게구름 같다 하여 구름나무로 부른다. 평지보다는 높은 산에 더 흔히 자라며 남쪽 지방보다는 추운 북쪽 지방에서 더 흔히 볼 수 있다.
중부 이북에 많으며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러시아에도 분포한다. 미국에는 동북부 지역에 흔하다. 뉴욕, 뉴저지, 펜실베니아, 메사추세츠, 메인, 미시간, 일리노이, 미네소타 주 등에서 흔히 볼수 있다. 영어로는 Bird Cherry(버드 체리)라고 부르며 본래 미국 땅의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은 가을에 까맣게잘 익은 열매를 따서 날로 먹거나 잼을 만들어 먹었다. 인디언들은 구룡목 껍질을 상처와 종기 버짐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썼고 가지는 못된 귀신을 쫓는 의식에 썼다.
구룡목은 식물분류학적으로 보면 벚나무 무리에 가깝지만 모양새는 벚나무와 좀 다르다. 나무껍질이 흑갈색이고, 얇은 겉껍질이 벚나무는 가로로 벗겨지지만 구룡목은 세로로 갈라진다.어린가지를 꺾거나 껍질을 벗기면 특이하면서도 강렬한 냄새가 난다. 파리가 이 냄새를 싫어한다 하여 옛 사람들은 파리를 쫓는 데 썼다고 한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모양으로 끝은 뾰족하며 밑은 둥글고 잔 톱니가 있다. 꽃은 벚나무와는 달리 늦은 봄철 잎이 나온 다음 햇가지 끝에 흰빛으로 모여서 핀다. 일본의 불교의학에서는 구룡목과 가까운 친척인 벚나무를 매우 귀중한 약
으로 쓴다.
온갖 간병과 중풍, 관절염에 효과
구룡목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간염, 지방간, 간경화증 같은 간질환과 근육통, 근육마비, 허리 아픈데, 중풍, 신경통, 관절염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약재다.
잔가지나 껍질, 잔뿌리를 하루에 40그램씩 달여 먹거나 술에 담가 6개월 넘게 두었다가 조금씩 마시면 갖가지 간질환을 치료하고 기혈의 순환을 좋게 하여 신경통, 관절염, 요통, 기관지염, 인후염 등 온갖 질병을 낫는다.
구룡목의 어린잎은 음식재료로 좋다. 봄철에 새잎을 따서 뜨거운 물로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 먹고 양념을 발라 쪄서 먹고, 튀김을 해 먹기도 하는데 약간 쓰고 매콤하면서도 특이한 향이 있다. 쓴 맛과 매운 맛이 너무 강하면 뜨거운 물로 살짝 데친 뒤에 찬물에 오래 담가서 쓴맛을 우려 낸 뒤에 먹는 것이 좋다.
가을철에 까맣게 주렁주렁 열매를 따서 그냥 먹거나 술을 담근다. 잘 익은 열매는 그냥 먹어도 단맛이 있어 맛이 좋다. 덜 익은 것은 떫고 특유의 냄새 때문에 먹지 못한다. 술을 담글 때는 35도 이상의 증류주에 3개월 넘게 담가 둔다. 술빛깔이 까맣게 우러나면 이것을 소줏잔으로 한
잔씩 밥 먹을 때 반주로 마신다.
꾸준히 오래 마시면 콩팥의 기능이 매우 튼튼해지고 허리 아픈 증상, 손발의 마비, 중풍, 고혈압 관절염 같은 증상이 낫거나 호전되고 정력이 변강쇠처럼 세어진다.
9월이나 10월 잎이 지기 전에 잔가지나 껍질을 채취하여 잘게 썬 다음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었다가 조금씩 달여 차처럼 마신다. 은은한 향이 일품이다.
구룡목을 가장 지혜롭게 활용하려면 발효시켜 음료로 마시는 것이다. 늦은 봄철 꽃이 지고 난 뒤에 구룡목의 잎과 잔가지를 채취하여 잘게 썰어서 같은 양의 흑설탕이나 꿀을 섞어서 오지 항아리에 넣고 바람이 잘 통하고 선선한 곳에 1년 동안 두어 발효 숙성시킨다.
제대로 발효 숙성된 용액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데 이것을 따뜻한 물 한 잔에 5-10밀리리터씩 타서 음료로 마신다. 위장병, 설사, 소화불량, 관절염, 신경통, 중풍, 그리고 온갖 간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약인 동시에 천하일품 음료가 된다.
구룡목은 여러 모로 마가목과 약성이 비슷하다. 가지를 꺾으면 나는 냄새도 비슷하고 마가목 대신 약으로 쓸 수도 있다. 마가목과 마찬가지로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이며 마비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구룡목의 약성에 대해서 <동의학사전>에는 이렇게 적었다.
“각지의 산기슭이나 산골짜기, 개울가에서 자란다. 잎에 배당체인 푸르나신이 있으며 기침을 멎게 하는 작용이 있다. 신선한 잎을 수증기 증류하여 기침을 멎게 하는 약을 만들 수 있다. 민간에서는 피부병 때 어린 가지를 달인 물로 씻는다.”
구룡목은 맛은 쓰고 매우며 특이한 향기가 나고 성질은 약간 차다. 간의 열을 내리고 장에 있는 나쁜 균과 벌레를 죽이며 설사를 멎게 하며 기침을 멈추고 가래를 삭인다. 팔이나 다리가 마비된 것을 풀어주고 척추염, 관절염, 신경통, 요통을 치료한다.경상남도 지리산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오갈피나무, 엄나무, 마가목, 구룡목, 산 뽕나무를 지리산 오약목(五藥木)이라고 하여 이 다섯 가지 나무를 달인 물로 식혜를 만들어 관절염, 신경통, 요통, 중풍 등을 치료하는 데 쓰는데 효과가 매우 좋다고 한다.
약으로 쓸 때는 아무 때나 잔가지를 채취하여 그늘에서 말려서 잘게 썰어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해 두고 쓴다. 물로 달여서 복용할 수도 있고 술에 담가서 우려내어 복용할 수도 있다. 술에 담그려면 반드시 찹쌀이나 율무 같은 곡식을 증류하여 얻은 소주를 써야 한다. 일반 소주
를 쓰면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구룡목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한의학이나 민간에서 거의 쓰지 않는 약초이지만 잘 활용하면 온갖 질병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도시 근교의 야산에도 흔하므로 관심만 있다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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