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가에서 기자들의 공적 넘버원은 딕 체니 부통령이 틀림없는 듯하다. 지난 며칠 미 전국을, 특히 각종 미디어의 안팎을 와글거리게 한 체니의 오발사고 파장이 이를 증명한다.
사냥하다 일어난 단순 사고였다. 두 친구가 함께 사냥하던 중 한 사람이 새를 향해 쏜 산탄총에 다른 친구가 맞은 것이다. 경상이었고 마침 의사가 현지에 있어 치료도 지체없이 이루어졌다. 경찰에도 곧바로 알렸고 목격자들도 ‘단순 사고’라고 증언했다. 아, 한가지! 총을 쏜 사람이 미국의 부통령이었다.
‘부’자가 얹혀진 직책이 대부분 그렇듯이 미국의 부통령도 원래 한직이었다.
아버지 부시가 부통령이던 1982년 그가 타고가던 리무진에 무엇인가가 꽝 떨어졌다. 경호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일대 소동이 벌어졌으나 곧 인근 공사장에서 돌이 잘못 날아든 것으로 밝혀졌다. 해프닝이 가라앉자 부시는 “부통령이 이처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일은 흔하지 않지요”라고 농담을 던졌었다.
세계 최대강국의 제2인자이면서도 미국의 부통령직은 정치가들이 탐내온 자리가 아니다. 미 헌법이 부통령에게 부여한 공식의무는 연방상원 의장직 뿐이다. 그것도 상원 표결에서 찬반 동수일 경우 결정표를 던지는 것이 유일한 구체적 권리다. 초대부통령 존 아담스는 “인간이 생각해낸 가장 하잘 것 없는 직책‘이라고 한탄했고 루즈벨트 시절의 부통령 존 가너는 “정부라는 자동차의 스페어 타이어”라고 자조했으며 “불필요한 각하”라고 비아냥대 불리웠던 것이 부통령 자리다.
이번 오발사고의 주인공 체니는 다르다. 미 역사상 가장 막강한 부통령이다. “미국의 실질적 대통령은 딕 체니”라고 말하는 익명의 관리가 한둘이 아니다. 현 백악관의 주요 정책을 기획에서부터 실행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하긴 체니만큼 능력과 경험과 인맥을 갖춘 정치가는 워싱턴에서도 흔하지 않다. 20대 후반 닉슨시절 백악관 보좌관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4명의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다. 포드 때 34세로 최연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6선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한 후 아버지 부시때 국방장관으로 입각하여 걸프전 당시 강력한 리더십으로 ‘사막의 폭풍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
체니는 정치적 개성이 뚜렷하다. 정치가들이 목을 메는 대중의 인기나 명성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앞에 나서지않고 2인자의 자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결도 꿰뚫고 있다. 그의 업무처리 방식은 비공개 비밀주의다. 될수록 입을 다물고 자기식대로 처리한다. 독선적이고 고압적이다. 백악관 스탭들도 체니의 노염을 살까 두려워 직언을 꺼려한다. 부시조차 의견이 다를 땐 체니에게 설득당하는 경우가 많다. 실무에 약한 부시와는 반대로 체니는 연방정부 업무, 특히 국가안보에 관한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
그동안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아온 ‘허위정보에 근거한 이라크침공’이나 ‘CIA요원 신분누설사건’ ‘영장없는 도청 허용’등 부시행정부의 밀어붙이기는 모두 ‘강한 미국, 강한 대통령, 강경보수’를 표방하는 체니의 어젠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체니를 리버럴한 속성을 가진 미 언론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못지않게 체니도 언론을 싫어한다. 이미 걸프전 때부터 ‘멍청한 질문이나 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집단’으로 기자들을 거부해 왔다. 천적이며 앙숙인데 이번 오발사고 같은 ‘호기’를 놓칠 언론들이 아니다. 핏불처럼 물고 늘어졌다. “아니, 부통령이 사람을 쏘아 다치게 했는데 20시간이 넘도록 공개를 안해? 은폐아냐? 그많은 스탭들은 다 어디두고 민간인인 목장주인이 다음날에야 지방신문에게 알려주다니…”
처음부터 털어놓고 솔직하게 사과했으면 토크쇼에서나 조크로 삼고 넘어갈 일이었다. 그러나 비공개 체질이 몸에 밴 체니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은폐 의혹’등의 단어가 등장하며 파장이 고조되자 공화당 내에서 들고 일어났다. 정치적 악재로 비화되기 전에 빨리 수습하라고 압력이 가해졌고 결국 체니는 어제 고개를 숙였다. 나흘만에 입을 열어 책임을 공개 시인한 것이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린 한 기자가 물었다. 만약 총을 맞은 그 친구가 죽는다면? 현지 검찰이 전면 수사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질문이 이어졌다. 체니는 사임할까요?
총으로 사람을 쏜 부통령이 체니가 처음은 아니다. 1802년 아론 버 부통령은 자신의 스캔들을 퍼뜨린 알렉산더 해밀튼 재무장관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허드슨 강 절벽위에서 결투가 벌어졌고 총에 맞은 해밀튼은 30시간후 사망했다. 버 부통령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상원회의를 주재했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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