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와인바와 레스토랑에서 수거한 와인병으로 만든 설치작품 ‘유리풍경’(Glasscape·2005).
영 아티스트 진 신.
버려진 것들이 묻는다… 예술이란?
생활 폐기물 모아 작품으로
도시속의 ‘말없는 소통’다뤄
미주 순회 그룹전에 9월부터 참가
영 아트의 키워드는 ‘미술은 생활’이라는 것이다. 일상의 소재들을 이용해 기발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고, ‘어려운 미술’은 거부한다. 뉴욕과 파리 미술계에서 뜨는 한인 설치작가 진 신(35)을 주목하면 영 아트가 보인다.
2004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 설치된 6×8×8피트의 작품 ‘기회의 도시’(Chance City)는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았다. 2만1,496달러 상당의 버려진 로토 티켓들로 만든 마천루가 인상적인 종이 도시였다. 이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선정한 81번째 프로젝트 시리즈로 바로 진 신의 작품이었다.
당시 MOMA는 “당첨의 꿈이 날아가 내팽개쳐진 로토 티켓을 수천 장씩 쌓아올려 도시를 지었다. 풀로 붙이지도 않았는데 건물은 단단해 보인다. ‘기회의 도시’는 꿈과 실제 사이를 오가는 현대를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프로젝트 시리즈는 MOMA가 1971년부터 정기적으로 실시해온 영 아티스트 발굴과 지원 프로그램. 미술에 관한 고정관념에 일격을 가하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작가를 선정, MOMA가 개인전을 열어준다. 컨템포러리 미술과 관객을 소통시키려는 취지의 전시로, 한인 작가로는 1999년 설치작가 이 불이 선정됐고, 진 신은 두 번째이다.
MOMA 프로젝트 81로 선정되자 그녀는 낡은 옷가지, 고장난 우산, 닳아빠진 구두, 시대에 뒤떨어진 안경테 등을 소재로 한 조각과 설치작의 디지털 렌더링을 제출했다. 팝아트의 성향을 띠면서 공공미술의 해석을 지닌 작품이다.
진 신은 ‘버려진 물건’에 주목한다. 쓸모 없거나 잊혀진 존재, 어디서나 넘쳐나는 물건들을 주워 모아 예술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이 좋다.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폐기물들을 찾아다니는 게 그녀의 일상이자 예술작업이다.
지난해 그녀는 파리와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 에릭 두퐁에 와인병을 소재로 한 ‘유리풍경’(Glasscape)을 설치했다. 뉴욕 알바니의 대학미술관에서는 버려진 처방약병을 잔뜩 쌓아올린 설치작 ‘화학적 균형’(Chemical Balance)을 선보였다.
설치작품 ‘기회의 도시’(Chance City·2001/2004)는 2만1,496달러어치의 버려진 로토 티켓으로 만들었다.
처방약병 빈 통을 쌓아올린 설치작품 ‘화학적 균형’(Chemical Balance 2·2005)의 일부.
와인을 사랑하는 파리를 발칵 뒤집은 설치작 ‘유리풍경’은 2003년 건축가 브라이언 리펠과 공동으로 작업했던 ‘유리 블록’(Glass Block)의 변형이다. 2003년 당시 뉴욕은 재활용 프로그램을 중지한 상태였다. 남편 브라이언 리펠과 저녁을 먹던 중 와인병에 눈이 멈춘 그녀가 이 병을 재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유리 블록’. 작품을 본 파리의 갤러리가 즉각 연락을 취했다. 파리에서 와인병은 문화유산으로 대접받고 프랑스의 자연풍경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고 설명하며 개인전을 제의했다.
프랑스의 와인 바와 레스토랑을 뒤져 수집한 와인병들을 갖고 평면과 입체적 표현으로 유리 세상을 창조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녀를 더욱 놀라게 한 건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의 반응이었다. 작품에 사용된 와인병의 레벨을 하나하나 읽고 나름대로의 코멘트를 보내왔을 정도로 와인병에 애착을 보인 것이다.
뉴욕 알바니의 대학미술관에 전시한 설치작 ‘화학적 균형’은 그녀에게 또 다른 물음을 던졌다. 작품의 소재가 된 오렌지색 처방약병 빈 통을 수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했지만 처방전이 붙어 있는 약병을 쉽사리 보내주는 이가 없었다. 겨우 뉴욕 프레데릭 테일러 갤러리의 도움을 얻어 약국과 너싱홈으로부터 수백 통의 약병을 수거했고, 매일 작업실로 날라드는 처방약병들로 작업을 시작했다. 일일이 처방전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그녀는 이들의 건강과 약물 의존도, 장·단기 처방전 등에 대한 말없는 소통을 하게 됐다.
진 신은 뉴욕 프렛 인스티튜트에서 페인팅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비평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아츠 파운데이션이 퀸즈 소크라테스 조각공원에 장소지정형 작품 ‘반영’(Penumbra·비바람에 찢긴 우산으로 만든 차양)을 설치했고, 필라델피아 패브릭 웍샵 앤 뮤지엄 소속 작가로 선정됐다.
그녀는 오는 9월 개막하는 미주 순회 그룹전 ‘아시안 아메리칸 아트 나우’(Asian American Art NOW)에 참가한다. 시각 이미지에 의존하지만 철학적 담론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그녀의 작품은 2007년 UC미술관과 2008년 LA 일미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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