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상원에선 사흘전 법사위 청문회가 열렸고 오늘은 정보위 청문회가 열린다. 안건은 ‘영장없는 도청’ - 요즘 미 언론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슈다. 간단히 설명하면 부시대통령이 테러정보 수집을 위해 국가안보국(NSA)에게 법원의 영장없이 미국민의 국제통화 내용을 도청해도 좋다고 허용한, 부시의 표현대로라면 ‘테러리스트 감시’ 작전이다.
지난 4년간 비밀리에 시행해 왔는데 두달전 ‘운 나쁘게’ 뉴욕타임스의 폭로보도로 만천하에 공개되어버린 것이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이 불법적 민권침해라고 아우성친 것은 물론이고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신랄하게 지적하고 나섰다. 만만하게 물러설 부시사단이 아니다. 알카에다와의 통화를 사전에 포착하여 테러를 예방하려는 것이라고 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전쟁 시’에 허용된 대통령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사용했다는 법적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전시의 대통령 권한에 대한 논쟁은 결국 ‘국가의 안보’와 ‘시민의 자유’ 중 어느쪽이 우선하는가의 대결로 흐르기 쉽다. 부시가 처음은 아니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2년 트루먼은 연방 상무부가 미주요 철강회사들을 압류하여 직접 운영하라는 대통령 명령을 내렸다. 당시 철강노조가 대규모 파업을 계획하고 있어 만약 파업으로 철강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전쟁수행에 지장을 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철강회사는 소송을 제기했다. 트루만은 이 명령이 ‘국가안보’를 지키는 전쟁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며 헌법상 최고의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아무리 전시라해도 노동쟁의에 의한 생산중단을 막기위한 조치는 의회에 속한 입법권이며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위헌으로 판결받은 대통령령은 무효화되고 철강회사 압류는 해제되었다.
공권력의 견제와 균형은 전시에도, 아니,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전시이기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판례였다. 그러나 미 법원이나 의회가 언제나 이처럼 합리적이고 공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꼭 64년전인 1942년 2월에 내려진 루즈벨트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미 서부지역에 살던 10여만 일본계 미국인은 집단수용소에 강제수용 당했다. 2차대전중 감행된 일본의 진주만 공격 두달후였다. 시민권자까지 포함한 일본계는 하루아침에 ‘간첩위험성이 다분한 적’으로 분류되었고 연방의회는 강제명령 시행을 뒷받침하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명령을 어기고 체포당해 법정에 선 일본계 시민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자유를 주장했으나 분노한 애국심에 휩쓸린 사회에선 법도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이 명령을 ‘국가안보를 지키는’ 군사적 필요에 의한 합법적 조치라고 판결했다 당시 9명중 2명의 대법관이 인종차별이라고 반대했던 이 판결은 미 연방대법원 사상 가장 수치스런 결정의 하나로 남아있으며 40년후 번복되었다.
이들 이전에도 남북전쟁 중 링컨이나 1차대전 때의 윌슨, 냉전시대의 닉슨 등도 전시의 대통령 권한을 주장하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권력을 행사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았고 의회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이후 공권력의 도청남용방지를 위해 해외정보감시법(FISA)을 제정했다. 어쨌든 이중 누구의 조치도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역사가들은 지적한다. 안보와 자유는 반대말이 아니다. 개인의 기본권을 존중하면서도 안보는 지켜질 수 있다는 뜻이다. 또 권력의 집중은 아무리 그 동기가 순수하다해도 결국은 남용을 부르기 마련이다.
도청 자체는 무조건 반대할 사항이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상당히 효과적인 무기일 수 있다. 이번 청문회도 알카에다 도청을 찬성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도청을 해도 법의 테두리안에서 하라는 것이다. FISA에 의해 영장을 비공개리에 쉽게 내주는 특별법원이 있는데도 그것마저 번거로운 절차라며 부시사단은 ‘영장없는 도청’ 강행을 주장한다. ‘테러예방이라면 민권침해를 감수하겠다’는 여론의 지지율도 50%를 넘는다. 그러나 안보를 빌미로 자행되는 개인권의 침해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아마 미국인들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군사독재를 체험한 우리들은 알고 있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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