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순-데이빗 문, 미술학과장 2인‘영 아트’대담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영 아티스트들은 UC계열과 CSU계열 출신이 많다. 차세대 예술가들의 산실,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미술학과장을 맡고 있는 한인 교수 2인을 ‘문화마당 대담’에 초대했다. UC어바인(UCI) 민영순 스튜디오아트 학과장과 칼스테이트 노스리지(CSUN) 데이빗 문 아트 학과장이다. 이들은 현대미술의 흐름과 이슈들을 빠르게 받아들인 세계화와 장르파괴의 1세대로, 영 아티스트의 특징은 ‘새로운 예술장르의 추구’라고 말한다. 21세기 미술은 대중매체와 신기술의 확산으로 예술장르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 영 아티스트들의 멘토역을 감당하며 미술교육의 지평을 넓히는 이들과 ‘한인 2세 작가들이 추구하는 아트’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젊은 아티스트들 디지털·영상문화에 열광
예술간 경계 파괴로 미술장르 복합화 주도
민영순 요즘 미술은 장르의 복합화가 추세입니다. 하이브리드와 믹스드(mixed)는 이미 하나의 범주로 자리잡았죠. 영 아티스트들은 일상의 소재를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창작함으로써 ‘미술이 생활’임을 강조합니다. 이들에겐 영감의 표현인 ‘Ahha’라는 단어가 ‘예술과 인간, 인간과 예술’(Arts & Human, Human & Arts)의 이니셜을 합친 신조어로 통용되죠.
데이빗 문 디지털과 영상문화에 익숙한 세대의 특징이랄 수 있죠. 예술장르의 확대에서 주목받는 분야가 ‘사진’이라면, 이들은 자신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비디오를 이용해 감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영상작업’에 열광합니다. 이미 영상작업은 회화를 위협할 정도로 현대미술의 주요장르로 부각됐지 않습니까?
민 맞아요. 최근 UCI 미대에는 스튜디오 아트(페인팅, 드로잉, 퍼포먼스아트, 사진, 비디오, 조각, 도예, 디지털 미디어)외에 아트와 테크놀러지를 결합시킨 ‘디지털 이미징’, 가상현실을 연구하는 ‘게임 분야’가 새로 생겨났어요.
문 CSUN 미대도 15개 분야 중에서 ‘디지털 아트’를 특성화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관심사가 ‘디지털’인데 대학교육이 아날로그를 고집할 순 없죠. ‘미학’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아트가 추구하는 ‘기능성·혁신성’도 중요합니다. 물론 캔버스에 그려내는 드로잉이 미술의 기본임은 변함없기에 컴퓨터작업과 드로잉의 병행을 끊임없이 역설하고 있죠.
민 드로잉과 컴퓨터작업의 관계는 이제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를 따지는 논쟁과 같아요. 각 예술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포괄적 인식을 토대로 예술의 잠재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문 아쉬운 건 전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진 디지털 세상에도 한인들의 ‘예술’에 대한 사고는 현재가 아니라 수십 년 전 과거의 어디쯤을 헤매고 있다는 겁니다. 저만해도 ‘아트해서 뭐하겠냐’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건축학을 전공했다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바꾸었죠.
“2세 미술학도들 아낌없는 지원을”
민 동감입니다. 90년대부터 주 정부의 예술지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FM(부모) 장학금이 얼마나 절실한데요. 한인 영 아티스트들의 작품주제가 ‘충돌과 아이러니’ ‘다문화 속 정체성 탐구’로 귀착되는 건 당연하죠. 자기인식과 행동양식, 사회적 역할전반에 대한 성찰이란 예술적 물음에 ‘이민자’라는 또 다른 질문이 던져지는 겁니다.
문 그래서 우리 세대는 이들을 전폭적으로 후원해야 합니다. 뿌리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에 산다는 것. 균형 잡힌 삶과 훌륭한 가치관을 토대로 마음껏 창의성과 개방성을 발휘할 수 있게 말입니다. 이런 점에선 한국 미술계가 앞서갑니다. 산업과 예술의 만남 덕분이죠. 지난해 한양대 디자인학과와 CSUN 미술학과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한국은 LG와 삼성 등 대기업들이 유망한 미술학도들을 지원하고 있더군요.
민 한국이 변한 것처럼 한인 2세대들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민생활이 정착되고 부유해지면서 ‘아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죠. 처음 UCI 강단에 섰던 93년만 해도 미술을 전공하는 한인들이 없었는데, 지금은 학부에만 한인학생의 비율이 15∼17%를 차지합니다.
문 UCI는 아시안 학생이 절반 이상이죠? CSUN은 생각보다 아시안이 적습니다. 전체의 15∼16%이 아시안이고 한인은 그 중 소그룹이죠. 밸리는 여전히 ‘아트’를 홀대하나 봅니다. 사실 밸리는 6번째로 큰 도시인데도 이렇다할 미술관 하나 없죠. 물론 퍼포밍 아츠 센터가 완공될 2009년이면 달라질 것입니다.
민 그렇겠죠. 지금 LA는 제2의 예술도시로 비상의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특히 영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2004년부터 아트센터, 칼아츠, UCI, UCLA 등 8개의 남가주 미술대학원이 연합 주최하는 콘소시엄 ‘수퍼소닉 쇼’(Supersonic Show)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문 저도 들었습니다. 영 아티스트 발굴과 지원 분위기를 형성해주는 쇼 케이스죠. 이를 계기 삼아 미술관도 소장가치가 높은 중견작가의 작품들만 사들이지 말고 유망 아티스트 발굴에 힘쓰면 좋겠습니다. 게티 센터처럼 최고와 최악이 공존하는 미술관으로 명성을 높이진 말아야겠죠. 최고의 현대 건축물에 최고가 컬렉션 소장이면 뭐합니까. 접근 자체가 어려운데요.
민 70·80년대로 돌아가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주정부 기금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대기업의 연구 보조는 상업적 성향이 짙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뮤지엄 전시도 고대, 중세에 머물지 말고 지금 우리가 사는 동시대의 미술을 좀더 많이 소개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영순
1953년생, 60년 도미. UC버클리 미술학사·석사.
휘트니 뮤지엄 프로그램 수료. UC어바인 스튜디오아트학과 부교수
▲데이빗 문
1963년생, 73년 도미. CSUN 미술학사, CSULA 미술학석사.
크리스탈 커뮤니케이션스 대표. CSUN 아트학과 부교수
<글 하은선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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