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세금보단 국채 발행…국가 빚 급증
유럽식, 수입 절반이 세금으로…국민부담 가중
정부, 빚보단 세금 늘리는 쪽으로 가닥
‘낮은 국민부담+많은 국가채무’의 미국ㆍ일본식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높은 국민부담+적은 국가채무’의 유럽식 길을 걸을 것이냐.
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양극화 해소를 위한 근본적 미래재원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함에 따라,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 돈을 조달해야 할 지에 대한 논란도 확산될 전망이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구축 및 미래대책을 추진하려면 현실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재원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재원 조달의 일차적 방법은 현행 틀 안에서 아끼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예산낭비요인을 제거하고, 민간자본유치사업(BTL)처럼 민간에 넘길 수 있는 것은 넘기는 방안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20조원에 달하는 각종 조세감면을 축소하고 음성 탈루소득을 찾아냄으로써, 세수기반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미래재원은 이런 미조정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재정확보 및 운용방안 모색이 불가피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세금이냐, 빚(국채발행)이냐의 선택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ㆍ일본식 재정운용
미국과 일본의 국민부담률은 각각 25.4%(2004년), 25.3%(2003년)으로 생각보다 별로 높지 않다. 우리나라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대신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미국 63.4%, 일본은 무려 157.6%로 아주 높은 실정이다. 즉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비교적 덜 걷는 대신, 국채발행을 통해 각종 재정지출수요를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을 택할 경우 국민반발은 적겠지만, 재정적자누적으로 거시정책운용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재정정책이 무력화됨으로써 자칫 만성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혜택을 현 세대가 누리고, 대가는 후손이 지불하는 문제도 있다.
●유럽식 재정운용
유럽의 세금은 가히 살인적이다. 영국의 국민부담률은 36.1%, 복지국가 전형인 노르웨이 덴마크는 무려 44.9%, 49.6%에 달한다. 벌어들인 돈의 절반을 세금과 사회보장비로 낸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정지출을 대부분 국민세금으로 충당하는 만큼 빚은 적다. 영국의 국가채무비율은 44.2%, 노르웨이와 덴마크도 50% 안팎으로 선진국치고는 건전한 축에 속한다.
유럽의 복지수준은 미국 일본을 압도한다. 하지만 과잉복지 논란 속에 세부담이 크다 보니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고소득층이 세금이 낮은 나라로 거주지를 옮기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한국의 선택은
우리 정부는 일단 빚을 늘리기 보다는 세금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유럽식이다. 정부는 내달 중순쯤 미래재원조달 계획을 담은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을 마련, 공청회 등 여론수렴절차를 거친다는 계획이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세수확대방안은 비중이 큰 소비세와 소득세쪽이다. 하지만 간접세인 소비세는 계층에 관계없이 무차별 적용되는 ‘역진성’의 문제가 있고, 조세저항도 커 세율인상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소득세의 경우 세율조정 보다는 과세자 비율을 확대(현 51%→70%)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특히 소득누락이 많은 자영업자 과세강화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인하 등이 거론되고 있다. ‘목적세’신설 주장도 있지만, 여론 및 입법과정에서 성사여부는 극히 불투명하다.
따라서 국민적 저항이 큰 세금만으로 재원을 조달하기 보다는, 세수확대와 국채발행을 조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부담률(2004년 기준)과 국가채무비율은 각각 24.6%, 26.1%로 양쪽 모두 선진국에 비해 여유가 있는 만큼 일정부분은 세금인상으로, 일정부분은 국채발행으로 충당하자는 것이다. 미국식과 유럽식의 절충인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선진국 수준의 혜택을 누리려면 부담도 선진국 수준으로 해야 한다”며 “먼저 혜택수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그에 맞게 재원도 조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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