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살아 있는 신이다. 그들이 뛰고 달리는 장소는 그러므로 만신전이다. 그 판테온 건설을 위해 온 노력을 기울인다. 스포츠가 우상이 된 현대사회를 빗댄 말이다.
한 사회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되나. 예배를 위해 어떤 구조물을 짓는가. 그것으로 결정된다. 고대 아즈텍인들이 인신공양의 끔찍한 제의(祭儀)를 위해 거대한 사원을 축조했듯이.
한인교회가 성전을 짓는다. 그러면 당장 말이 난다. 그 말이란 게 그렇다. 거의 다 비아냥거림이다. 우선 순위를 생각하라, 외적 성장에만 치우쳐선 안 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등등.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회의론을 배경으로 한 경우도 적지 않다. 막대한 재정을 들여 거대한 성전을 건축해 결국 남 주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한, 두 세대 후면 한인교회로서는 문을 닫을지 모르는데 아깝다는 거다.
새삼 성전건축 시비에 껴들려는 건 아니다.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혹시 볼 수는 없을까 해서다. ‘코리안-아메리칸 데이’라고 했나. 새해와 함께 한인 커뮤니티의 키워드가 된 듯한 이 단어가 주는 상징성과 관련해서 말이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이 유행이다. 정보의 흐름, 자본의 흐름, 그리고 사람의 대이동과 함께 많은 미래학자들이 ‘디아스포라 시대의 도래’에 주목하면서다.
난민만 1,000여만이다. 자신의 모국이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은 오늘날 지구촌에서 1억이 넘는다. 살던 곳을 떠난 사람들, 그들은 요즘 과거와 다른 개념으로 파악된다.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다. 거기에 하나가 덧붙여진다. 초국적인(Transnationals)이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팔레스타인 밖으로 흩어져 살면서 유대 전통을 고수하고 살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 유대민족처럼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조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은 디아스포라다.
이에 반해 스스로 선택해 민족국가의 경계선을 넘은 사람, 다시 말해 삶의 ‘출구선택’으로 해외의 경제, 문화적 자원을 찾아 이동한 사람은 초국적인이다.
이들의 의식과 삶의 양식은 극히 상반된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고수하는 경향이다. 게토를 이루고 산다. 디아스포라, 더 정확히 말하면 ‘희생자 마인드’의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유연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민족 전통을 고수하는 것보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자신이 선호하는 환경에서 살고자 한다. 문화적 디아스포라다. 달리 말하면 초국적인이다.
코리안-아메리칸은 어느 쪽으로 분류될까. ‘디아스포라다. 그러나 동시에 초국적인이다’-. 이런 정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구 한말, 일제 강점기, 해방, 분단, 동족상잔, 남북대치…. 격동의 고비마다 한인들은 이 땅을 찾았다. 생존을 위해서다. 압제를 피해서다. 이 점에서 한 세기 미주 한인 이민역사는 분명히 디아스포라의 역사다.
80년대부터로 보아야 하나. 상황은 달라졌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해외로 나섰다. 스스로 이 땅을 선택한 것이다. 반드시 물질적 풍요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메리카’란 단어에 함축된 가치관을 찾아서다.
“물건과 시장을 만들어내는 돈의 글로벌 파워가 달러였다면 정보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언어의 파워는 영어다. …한국은 영어라는 공용어를 사용하면서 개방주의와 법에 의한 지배, 그리고 자유시장주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앵글로스피어’의 주변국이 된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 사회에 대해 한 사회비평가가 내린 진단이다. 달러와 영어란 단어가 눈을 끈다. 동시에 코리안-아메리칸의 모습은 한층 뚜렷해진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구사하면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 21세기 네트웍 시대를 살아가는 초국적인의 모습이다.
연방의회가 1월13일을 ‘코리안-아메리칸 데이’로 선정했다. 무슨 의미가 담겼나. 한인은 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됐다는 의미다. 더 이상 게토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함께 주인역할을 하자는 초청이다. 이 점에서 한인 이민 100년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다시 교회 얘기로 돌아가 보자. 막대한 재정을 들여 성전을 지었다. 그런데 그 건물이 결국은 타민족의 소유가 됐다. 교회 재정의 낭비인가.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
맨손으로 왔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부를 일궜다. 감사함으로 열과 성을 다해 거대한 성전을 지었다. 한인들이 지은 교회다. 훗날 그 교회에 새로운 이민그룹이 모여 이 땅에 대한 비전을 키운다. 그 자체가 축복이고, 이 사회에 대한 기여가 아닐까.
한국의 전통양식이 가미된 거대한 성전이 이 땅에 세워진다. ‘코리안-아메리칸 데이’ 선포 원년에 꾸어 보는 드림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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