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사놓고 보자는 식으로 이전투구…
드라마 숫자 줄이는 게 유일한 대안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이 만화ㆍ소설 등 원작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갈수록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매주 지상파에서만 20편이 넘는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해외 수요도 늘지만, 소재와 작가는 이를 따라갈 정도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만화,소설, 드라마에 대해서는 일부에서 싹쓸이를 한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과열 경쟁 양상이다.
사실 지상파에서는 최근 원작이 있는 드라마가 잇달아 전파를 타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최고 인기 드라마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은 지수현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KBS 2TV ‘열여덟 스물아홉’도 지수현의 소설 ‘당신과 나의 44321’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SBS ‘봄날’은 일본 드라마 ‘별의 금화’, ‘불량주부’는 국내 만화 ‘불량주부의 일기’가 오리지널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방송될 드라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년 3월 방송될 MBC ‘궁’은 박소희의 동명 만화가 원작. 9일 첫방송하는 KBS 2TV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대니앨 키스의 ‘알게논의 무덤 위에 한 송이 꽃을’(Flowers for Algernon)이라는 책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또 외주제작사 케이팍스는 이현세의 만화 ‘지옥의 링’을 K-1으로 각색해 드라마화하겠다고 밝혔고, J.S픽쳐스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을 드라마로 만들 예정이다.
’궁’의 제작사 에이트픽스는 4일 김수용의 만화 ‘힙합’을 극화해 그룹 동방신기를 출연시키겠다고 밝혔다.
◇ 경쟁의 원인은
이런 분위기에 대해 최완규, 김영현 작가가 소속된 에이스토리의 이상백 대표는완성도 있는 작품을 써낼 작가와 시놉시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탄탄한 원작을 기초로 가공을 하면 수월하게 시놉시스를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종학 프로덕션의 박창식 이사도 최근 신인 작가들이 들고 오는 시놉시스를 살펴보면 대부분 삼각관계이거나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극한 환경의 이야기라며 국내 드라마 시장에 소재와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만화나 소설이 소재 발굴에 자극을 많이 준다며 만화가들은 과거 패턴이나 기존 유행에 얽매이지 않은 아이디어를 양산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종학 프로덕션은 현재 강풀의 만화 ‘타이밍’과 김랑의 소설 ‘포도밭그 사나이’ 등 5~6개의 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3~4개를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알게논의 무덤 위에 한 송이 꽃을’의 판권을 가진 제작사 포도나무와 함께 ‘안녕하세요, 하느님’을 공동제작하게 된다.
◇ 부작용도 크다
하지만 판권 확보가 드라마 제작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박 이사는 원작을 드라마화할 능력이 없는 곳에서 무조건 구매만 한 후 사장시키면 다른 곳에서 이를 제작할 방법이 없다며 이는 드라마 시장을 깨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원작 구매가 이를 소화할 역량 있는 작가군 및 연출가와 긴밀하게 연계돼야 한다는 것.
부작용은 일본 작품 판권 확보 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판권을 확보하려고 일본을 다녀온 한 드라마제작사의 대표는 일본 만화나 소설의 판권을 사기 위해 국내 제작사와 방송사 PD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의 우수성을 일부 인정했던 일본 측이 이제 ‘한국이 다시 일본을 베끼려고 한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는 결국 판권 계약 이야기는 꺼내 놓지도 못한 채 그냥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일본 판권 10개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제작사가 있는데 이처럼 우리가 일본 작품에 매달린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약점을 스스로 노출시키는 셈이라며 한국 드라마의 신비감 등을 이렇게 날려버린다면 결국 한류 열풍에도 찬물을 끼얹게 된다고 우려했다.
◇ 대안은 없나
그렇다면 소재 고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마땅한 대안은 없을까.
씨케이미디어웍스의 이찬규 대표는 한국 드라마는 삼각구도의 멜로물,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의 소재에 편중돼 있다며 원작 확보를 통해 쉽게 드라마를 만들려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르가 다양하지 않다 보니까 국내에서는 추리 드라마 같은 장르를 쓸 작가군이 아예 없다며 만약 일본 작품을 원작으로 삼는다면 국내 시청자나 작가들에게 새로운 장르로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예전부터 있어 온 지적이기는 하지만 지상파 드라마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다.
KBS의 한 고위관계자는 매주 수십편이 쏟아지지만 대개 뻔한 이야기이며 방송사마다 이렇게 많은 드라마를 양산하는 것은 낭비라면서 드라마의 숫자를 줄이든지 드라마 방송시간을 축소하는 등의 시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