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환경·설비 제공없는 조사는 중대 실수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재검증하고 있는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오는 10일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한 가운데 한 서울대 졸업생이 조사위를 비판하는 글을 동창회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자신이 서울대 졸업생이라고 주장한 이 네티즌은 지난달 28일 서울대 동창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정운찬 총장에게 보내는 글을 올려 ‘황우석 사태’와 관련해 조사위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서울대 조사위가 연구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려면 논문을 작성한 황 교수에게 스스로 연구를 입증할 수 있도록 연구 환경과 설비를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구실 폐쇄 결정을 내림으로써 조사 과정에서 중대한 결함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서울대가 조사위원들에게 보안 각서까지 받으며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그는 허위정보의 무분별한 누출로 인해 조사위 자체의 신뢰도가 훼손되는 점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인 조사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내부의 비과학적 절차를 은폐하려고 하는 의도로 비춰질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대 조사위의 중간발표와 DNA 검사과정, 발표 일정 지연 등에 대해 일반 시민과 네티즌들의 비판이 일고 있다면서 조사위에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서울대 조사위의 행태는 도저히 서울대와 서울대인이라는 이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엘리트 폭압’이라면서 서울대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생활해 온 자신에게 부끄러움 이상의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동창회 게시판에 처음 올려진 이 글은 서울대 학보사 게시판과 한 포털 사이트의 토론 게시판에 옮겨져 거센 찬반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네티즌 ‘바람돌이’는 동문들이 전부 모여 한 번 (서울대와 조사위를) 규탄했으면 좋겠다며 찬성의 뜻을 표시한 데 반해 네티즌 ‘고마해’는 논문의 진실성 검사가 서울대 조사위의 기본 의미인데, 피검자한테 다시 연구의 기회를 주자니…라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다음은 서울대 동창회 게시판에 오른 전문.
먼저 동문 제위께 송구한 마음 전합니다.
정운찬 총장님
저는 1980년 봄 계엄군의 학내 진입과 기숙사에서의 굴욕적인 ‘참변’을 기억합니다. 김상진 형의 배를 가르며 무심히 흥얼거리는 칼끝의 콧노래를 아크로폴리스에서 부끄러움으로 들이켰었지요. 도서관 바닥 저 아래 김태훈 형이 흩어진 조그만 인형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었지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군요. 훌라송과 정의가를 목이 터지라 질러대며 연무 자욱한 문무대 연병장을 달리고 달렸었지요. 정말 그땐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군요.
최근 민족과 국가의 장래와 융성을 위하여 창의적이고 영민한 인재들을 자율적으로 선발하여 대한민국 제1의 아니 세계 최고의 학문과 영예를 구현하겠노라고 서울대가 외쳤을 때, 우매한 역사의식과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힌 일부 집단들이 서울대를 없애자고 목청을 높였었지요.
’태풍에 덜거덕거리는 창문 소리가 귀찮아 결국 창문을 없애버린 그들, 얼마 후 그 자리에 새로 집을 짓고 있더라’는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군요.
서울대는 ‘나의 모교이자’ ‘대한민국의 모교’라는 자부심을 갖고 항상 학창시절의 정의와 신의로서 생활하고자 노력해왔지요. 어리석음이 어쩔 수 없이 좋은 글쓴이로서는 누가 뭐래도 그렇게 사는 삶이 편하고 풍족한가 봅니다. 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많은 동문들에게는 최근의 서울대 폐지 논란은 옛날 신림동 녹두거리와 교정에서 즐겨 마시던 최루탄보다도 더 맵고 따가왔습니다.
말은 짧을 수록 신뢰가 간다고 했습니다만, 본의 아니게 길어지는군요. 최근 황우석 교수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에 대해서 한마디 드립니다.
대학의 가장 큰 긍지는 ‘자유로움’과 ‘다양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역사와 전통과 그리고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토양 아래 학문을 학문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과학’ 즉 ‘과학적 접근방법’이라고 교수님들께 배웠었습니다.
자연과학으로 말하자면 통찰 또는 직관에 의한 가설의 정립과 이를 분석 비교하고 검증하기 위한 데이터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모집과, 사물의 존재와 현상에 대한 일련의 원칙을 규명하고 정립하기 위한 적정한 절차를 통해, 모두가 납득하고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을 세우는 것이며, 근현대의 인문사회과학의 비약적 발전 역시 이러한 과학적 방법의 힘을 빌어서 이루어 졌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고 있는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연구행태는(황우석 교수라는 한 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두고 그 진위와 그 진위와 관련한 여러가지 사안들을 규명하는 것은 조사위원회의 구성원들 모두 학자이며 더불어 ‘과학적 프로세서’의 학문연구의 도구로서의 필수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교수님들이기에, 본 조사는 마땅히 연구에 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적정한 연구절차에 있어 중대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위의 파악이라 함은 마땅히 그 조사의 대상이 된 결과물의 작성자로부터 그것에 대한 성립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피조사자가 그것을 입증해보일 수 있는 최선의 환경과 설비를 제공하고 보장하는 것이 기본일 진저, ‘연구실 폐쇄’라는 가장 ‘양심적이고 중립적이야 할’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비학문적 폭거는 그 자체로서 이미 조사위원회의 결과에 대한 중대한 흠결이며, 이 흠결은 그들이 조사하고 있는 대상의 흠결과 곁코 그 질에서 다르지 않고 부당함에 있어서도 그 경중을 따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사과정에서의 보안선서와 그에 따른 조사내용의 누출 시의 형사상의 책임에 관한 각서 운운하는 것은, 물론 조사활동의 중대성에 비추어보아 허위정보의 무분별한 누출로 인해 조사위 자체의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는 점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한다고 하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조사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내부의 비과학적 절차를 은폐하려고 하는 의도로 비춰질 위험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보안각서에도 불구하고 피조사에게 불리한 진술들만 일방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그 기본적인 의도마저도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미 다수의 일반 시민들과 네티즌들은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중간발표와 DNA 검사과정 및 여기에 대한 발표 일정의 지연 등에 대해서는 자의적 절차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성토를 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에 의해 던져진 ‘칼’을 누가 쥐고 싶었겠습니까! 그저 이렇게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여주고 있는 조사위의 행태는 그간의 논란을 뚫고 서울대학교가 진정 민족과 학문의 보루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학당에서 제자리 매김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번의 서울대의 위치, 즉 서울대학교를 대표하는 조사위원회의 활동과 그 결과는 지금까지의 그 어느 시련보다도 더 큰 시련을 서울대에 던져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직 평생을 학문과 진리 탐구에만 자신을 바쳐온 조사위원회의 위원들을 위시한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이번 사건의 정치경제적 의미까지 굳이 헤아려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만은, 혼탁한 세파에 휘둘리다보니 글쓴이로서는 괜히 기우같은 또 다른 망상에 마음이 불편해지는군요.
이번 사건에 대한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행태는 총장님을 필두로 몽매하고도 부조리한 사회적 억압에 맞서 ‘진리와 빛’을 지키고 밝히고자 노력해 왔던 서울대의 노력을 일순간에 뒤엎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정도로, 도저히 서울대와 서울대인이라는 이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엘리트 폭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역사 이래 지금의 조사위와 같은 ‘비서울대적’이고 ‘반서울대적’인 행태를 전 기억하지 못합니다.
지금의 조사위로 대변되는 서울대인의 행태가 그간 학교와 교수님들 그리고 서울대의 정신으로부터 배워온 정의와 진리의 골수라고 한다면, 그동안 자긍과 신의로 소중히 간직하고 왔던 저의 서울대인으로서의 존재와 가치는 오히려 크게 부끄러움을 넘어 지나가는 강아지의 얼굴조차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군요.
그리하여 동 조사위의 지금과 같은 비이성적 비학문적 비양심적 폭거가 지속된다면, 저는 저의 서울대학교 졸업장을 반납합니다. 물론 저의 이 호소가 그 어느 것 하나 조금도 달라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러나 조사위에 의해 목이 꺾이고 있는 서울대학교의 빛이요 궁극의 본체라고 하는 진리와 함께 서울대인으로서의 목을 꺾으려 합니다.
아무리 섬뜩한 칼날이라도 그 목을 칠 수 없는 게 있지요. 보이지 않는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달려 자신을 낮추고 낮추지만, 이윽고 비상하여 온 누리에 생명을 뿌리는 ‘물’과 같이, 그 성체를 그대로 쏙 빼닮은 우리의 빛 ‘진실’이지요.
’진실은 목이 사라져도 숨을 쉰다. 아주 더 크게...’
총장님, 부디 가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아이닷컴 류승희 인턴기자 blastsh@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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