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던 한인 이모씨 부부가 인컴택스 허위보고에 대한 유죄를 인정한 것은 97년 5월이었다. 89년부터 91년까지 수입중 11만2,453달러를 적게 보고한 혐의를 시인한 이들은 탈세 세금 납부와 벌금에 더해 각각 3년의 집행유예와 1백시간 커뮤니티 봉사형을 받으면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민국은 같은 해 11월, 80년대 도미한 영주권자인 이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이때부터 시작된 법정투쟁은 2004년 5월 연방항소법원이 ‘추방당할 만큼의 중죄’는 아니라고 판결함으로서 막을 내렸다.
당시 심의를 맡았던 3명의 판사중 한명은 추방이 정당하다며 마지막까지 반대했었다. 그가 연방 제3순회항소법원의 새뮤얼 앨리토 판사, 지난 10월말 부시대통령이 선택한 연방대법관 지명자다. 그의 인준을 위한 상원법사위 청문회가 오는 월요일인 9일부터 시작된다. 이라크전과 비밀도청에 더해 새해 벽두부터 불거진 로비스캔들 등 산적한 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시대통령이 고대하고 있는 2006년 첫 낭보가 바로 앨리토의 빠른 인준이다.
지난 두달간 앨리토의 면모는 다양하게 드러났다. 그의 3백여회 판결기록은 다각적으로 분석되었고 가족과 이웃, 법대 동창들에 이르기 까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인터뷰를 당했다. 분석 결과의 첫 결론은 법관으로서의 자질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것이다. 프린스턴대학과 예일법대를 졸업한 엘리트이고 정부 변호사, 연방검사, 15년 항소법원 판사 경력에 대한 법조계에서의 평판도 나무랄 데 없으며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정중한 ‘나이스 가이’다.
그러나 그의 인준은 지난해 로버츠 대법원장 경우와는 달리 험난해 보인다. 험난할 수 밖에 없다. 보수파 로버츠 대법원장의 입성이후 진보파 4명과 보수파 4명으로 양분된 대법원에서 균형추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된 앨리토가 너무나 선명한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취임은 연방대법원 보수화의 확실한 첫 걸음을 의미한다. 진보성향으로 되돌아가기는 앞으로 오랫동안 힘들 것이다. 양당은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보수-진보 사회운동 단체들도 수십만달러를 쏟아붓는 치열한 홍보전에 돌입했다.
앨리토는 이민자, 차별당하는 소수계, 범법자들에게 냉담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직장내 연령이나 성 차별 소송에서 고용주의 손을 훨씬 많이 들어주었고 무장 안한 15세 절도범에 대한 경찰의 사살을 정당행위로 지지했으며 마약단속 중 영장없이 엄마와 10살짜리 딸에 대한 나체수색도 합법으로 인정했다. 이 케이스들은 모두 대법원과 항소법원에서 앨리토의 견해와는 반대되는 최종 판결을 받았다. 약자보다는 강자와 더 큰 공감대를 가진듯한 그의 이런 성향은 소수민인 우리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보다 더 뜨거운, 이번 청문회의 중심이슈는 ‘낙태’다. 미국의 가장 민감한 사회 문제인 낙태는 대법관 인준 때마다 최대 쟁점 중 하나였다. 클레어런스 토마스 대법관은 “난 낙태에 관해 아무런 의견이 없다.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라며 피해갔고 로버츠 대법원장은 자신이 쓴 낙태권 반대 메모는 “나 개인이 아닌 내가 대리한 당시 행정부의 의견이었다”고 해명하며 넘어갔다.
그러나 앨리토에겐 이들처럼 비껴갈 여지가 없다. 낙태반대를 비롯해 그의 견해를 명시한 자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내 아들은 “물론 낙태를 반대한다”고 인터뷰에서 공언했는가 하면 그 자신도 1985년 연방법무부 부차관보직에 지원하면서 제출한 에세이에 ‘헌법은 낙태권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취업 후엔 낙태합법화 판결을 궁극적으로 번복하려면 각 주의 낙태제한법을 지지해야한다는 방법론까지 제시했으며 항소법원 판사 재임중엔 ‘기혼여성은 낙태 전에 남편에게 사전통보해야 한다‘는 펜실베니아주의 낙태제한법을 지지했다.
앨리토가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과격한 이념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 많은 법조계 인사들도 그는 확실한 보수주의자이지만 감정보다는 법 이론과 해석을 중시할 뿐 개인적 가치관에 따라 판결을 내리지 않을 정도의 양식은 충분히 갖춘 책임있는 법관이라고 평가한다.
앨리토도 요즘엔 민주당 상원의원들을 만나며 해명을 시도하고 있다. 낙태권 반대자는 절대 인준 못한다는 다이앤 파인스타인의원에겐 “취직하려고 쓴 것”이라고 변명했으며 에드워드 케네디의원에겐 자신이 그때보다 지금은 “나이도 들었고 현명해졌다(older and wiser)”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인준 통과는 ‘그때’와 지금의 변화를 진지하게 입증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할수 있을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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