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사위의 1차발표가 나온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아, 이제 낯 뜨거운 ‘황우석 뉴스’는 그만 봐도 되겠구나, 안도(?)했었다. ‘과학적 진실’을 밝히게 한 젊은 학자들의 용기로 한국 과학계의 자정 능력이 증명된 것이 해외에 사는 우리에겐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다. 어처구니없는 ‘신화’조작에 동참했던 사회전체의 뼈아픈 자성으로 이 파동을 마무리하는 일만이 남았다고 명쾌하게 단언할 수 있었다.
‘과학적 진실, 그 너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것은 A씨의 이야기를 들은 어제부터였다.
어젠 최종발표를 내년으로 연기한 서울대 조사위가 ‘줄기세포는 없었다’라고 확인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원천기술 보유’에 대한 판정뿐인 셈이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원천기술’인가. 쉽게, 간단하게 설명해보자. 기증받은 난자에서 핵을 빼내고 대신 환자의 체세포 핵을 넣어 복제배아를 만든다. 전기자극등을 주며 한 닷새정도 지나면 이 복제배아는 분화를 계속해 세포덩어리인 배반포가 된다. 이 덩어리에서 분리한 몇개의 세포를 5~7일에 한번씩 다른 배양접시에 옮겨 다시 키우며 줄기세포로 배양하는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는 늙지 않고 무한 증식하는 능력과 인체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데 이 두가지 능력을 가진 상태를 6개월이상 유지할 수 있어야 배아줄기세포라고 부를 수 있다. 황박사가 과연 어느 단계까지의 기술을 보유했는지, 또 추정대로 배반포 만드는 단계까지만 성공했다면 그것을 줄기세포 원천기술로 인정할 것인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설사 원천기술이 있다한들 이제와 그게 무슨 대수냐’는 냉소를 A씨는 걱정한다. 지난 1년여 자신이 결사적으로 매달려온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꺼트릴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40년전 유학와 전문직으로 일하다 은퇴한 그가 ‘황우석’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년반 전이었다.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딸이 쓰러졌을 때였다. 인도선교여행을 가려고 풍토병 예방주사를 맞았는데 척수마비가 왔다고 했다. 다시는 못 걸을 것이라고 선고한 미국의사는 몇날을 매달리는 부정이 너무 애절했던지 “당신네 모국의 황우석박사에게 연락해보라”며 이메일 주소를 주었다.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는 생명공학연구에 가장 앞서있는 학자라고 했다.
황박사에게 하루 5백통의 이메일이 날아들 때였지만 대전고 선후배를 연결고리로 그의 딸은 몇 달후 LA를 방문한 황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내 실험이 성공하면 누구보다 먼저 너를 걷게 해겠다”는 황박사의 확신에 찬 약속은 절망에 빠졌던 그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LA의 황박사 친구들은 함께 감동하면서도 “10년, 15년이 될지 모르는데 너무 감당 못 할 약속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그는 “그래도 희망을 주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황우석사태가 악화되면서 LA에 사는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 맨 먼저 걱정한 것은 그의 ‘자살’이었다. 그의 과오는 그를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만큼 엄청났다. 국내의 쇼크는 물론이고 미국의 언론들도 그의 논문조작을 보도하며 한국사회의 헛점을 파헤치고 지적했다. 과학계까지 오염시킨 성과위주의 흥행주의, 조급하고 거친 빨리빨리 문화, 교수가 황제로 군림하는 연구실의 권위주의, 기본적 의문조차 거부하는 여론의 광기, 진실추구의 사명은 버려둔채 휘청거린 언론의 행태…한국을 떠나올 때 버리고 싶었던 약점이었고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결코 보여주고 싶지않은 모국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교 때부터 수십년 지켜보아온 황우석과는 정말이지 다른 면모였읍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지난주 동창 모임에서도 그들은 서로 묻고 또 물었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쳤을 것이다” 배양하는 세포가 일정단계에 이르면 계속 죽고 오염되어 너무 힘들다는 그의 고충을 들었던 친구는 그렇게 추측했다.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특히 그가 희망을 약속해준 환자들에 대한…” 공명심도 작용했을 것이고 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조바심도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실험이 성공만하면 한국은 전 국민을 한세대동안 먹여살릴 수 있다고 자신했었으니까요”
“과학자로서 그의 생명은 끝났지요, 압니다” 재기는 고사하고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질타를 반박할 변명조차 궁색하며, 응분의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친구인 그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A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제발 원천기술만 사실이라면, 내 딸이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다음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과학적 진실, 그 너머’에 대한 헛된 염원은 그만 버리라고 잘라 말할 용기가 내게는 없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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