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한학수 PD 인터뷰] 사실확인 번번이 실패 무모한 짓 회의
테라토마 확인작업 과정서 실마리 풀려‥희망 뺏을까봐 사실 아니길 바랐는데...
“6개월여의 취재 과정에서 숱한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지탱해준 힘은 ‘잘못이 있다면 꼭 우리 손으로 밝혀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MBC ‘PD수첩’의 한학수(37) PD는 황우석 교수팀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 사실을 공식 확인한 서울대의 중간조사결과 발표를 지켜본 뒤 “그런 바람이 이뤄져, 한국 과학계, 그리고 한국 사회의 자정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취재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며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PD수첩’에 첫 제보가 접수된 것은 6월1일. 인터넷 제보를 확인한 최승호 책임PD는 한씨를 불러 취재지시를 내렸다.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된 5월 ‘PD수첩’에 합류한 한 PD는 마침 ‘세기의 논쟁, 황우석과 부시’라는 제목으로 생명윤리에 관한 기획을 준비 중이었다.
“그날 바로 제보자를 만났습니다. 난자취득의 윤리적 문제는 증거가 확실했지만, 2005년 논문의 조작 의혹은 ‘의심이 간다’는 정도여서 선뜻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제보자의 태도는 매우 진지했고 제보 동기에 악의가 없다고 판단돼 취재해보기로 했죠.”
한씨는 그 날부터 줄기세포 공부에 몰두했다. 2005년 논문만도 100번 넘게 읽었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몇 가지 포인트를 사실 확인하는 작업에서 번번이 실패해 “무모한 짓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고 했다.
실마리는 9월 말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접근한 테라토마(기형종) 확인작업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황 교수는 11개 줄기세포의 테라토마를 모두 했다고 말했으나, 실제는 2,3번밖에 하지 않았다는 확증을 잡은 것이다.
그는 당시만해도 2,3번 줄기세포 2개를 11개로 부풀렸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나, 김선종 연구원을 만나기 직전 2번 줄기세포 검증 결과 미즈메디병원의 4번과 같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분노가 일었습니다. 김 연구원과 만나면서 취재윤리를 위반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한씨는 취재가 마무리되어 갈수록 두려움도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125년 전통의 사이언스 표지논문이 거짓이라고 밝히는 것은 비과학자인 내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앞장 섰던 언론으로부터 공격 당하지는 않을까, 그 신화에 열광하는 국민들이 과연 제 말을 믿어줄까,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어요.”
그의 우려는 고스란히 현실화 했다. 네티즌들의 돌팔매질과 광고취소 사태가 이어졌고, 급기야 취재윤리 위반 사실이 드러나 2탄 방송이 좌절됐다. 그러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진실이 드러났다.
그는 “광고가 끊기고 취재를 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내라는 메일을 보내주고 어깨를 두드려준 MBC 직원들, 일부 네티즌의 탓에 한 달 가까이 아이와 피신해 있으면서 끝까지 나를 믿어준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중간조사결과에 대해 “이제 진실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조사위원들과 면담했을 때 진지하고 양심적인 과학자들이란 인상을 받았다”면서 “논문 조작에 관한 개략적 그림을 토대로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조작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취재윤리 위반 문제로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고 ‘PD수첩’도 떠나게 된 그는 향후 거취에 대해 “회사의 결정에 따르겠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백서랄까, 이번 취재의 전말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한씨는 끝으로 난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위안의 말을 전했다. “취재 과정에서 난치병 환자들의 실낱 같은 희망마저 빼앗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떠올렸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8년간의 혹독한 포로수용소 생활을 견디고 살아온 미군 장교의 이름을 딴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믿음을 잃지 않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난관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열심히 정직하게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믿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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