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에도 틈나는 대로 자연을 마시고, 조금만 더 돈을 벌고, 조금 만 더 건강하고, 그저 내 안에 욕망들이 굶주리지 않고, 내 위치에서 당당히 일한 충실함에 대해 손해 없는 대가를 받기를 소망하는 예산서를 또 한 번 작성해 본다. ”
창조 때 자동 장치된 일월(日月)은 타협 없이 흐르고 충분한 여유를 준 것도 없으면서 뻔뻔한 시간은 매정하게 달력 장을 뜯어간다. 연말이면 더 차압당할 것도 없이 거덜난 달력 앞에서 사람들은 삼백 육십 오일을 세월에 빼앗긴 무참한 패배를 승리라 우기며 축배를 들고 또다시 두둑한 달력을 거덜 내기 위해 새로운 각오를 한다.
내 존재가 지상에 살아있는 한 가득 찰 것도 몽땅 잃을 것도 없는 것이 인생 역정이지만 늘 한해의 끝에서 설렘으로 꼼꼼히 일년을 정산해 보는 순박한 마음. 신년과 연말 사이를 몇 년, 혹은 몇 십 년, 혹은 평생을 왕복하면서도 해마다 낯설고 서툴러 더듬거림은 아직도 의기 찬 욕망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욕망을 꼭 이루려는 욕구가 내딛는 걸음을 두렵게 하고 신중함의 제약이 순간의 이랑들을 고르게 하여 삶 속에 각가지 결실들 이 맺어지게 하는 것 같다.
어떤 일에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삶에 서툴음 속에는 그만큼의 늙지 않은 싱싱한 젊은 욕망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 에너지는 얼마든지 또 다른 능력으로 작용하여 더 좋은 결실을 얻어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에 실상 삶 속에는 실패보다는 또 다른 성공의 욕망 출발점이 있을 뿐인 것 같다.
가끔 비행기에서 지상을 내려다 볼 때마다 나는 문득 시계 속이 연상되곤 했다. 각자 살아가는 듯 해도 모두가 하나의 톱니로 연결되어 정밀히 작동하고 세상이라는 판 위에서 각자가 필요한 결정을 얻어내며 일월을 밀고 간다고 생각했다. 내 삶이 하나의 시계 부품이라고 생각한 날부터 나는 내가 사는 이유, 내가 하는 일의 소중함의 의미를 확인하고 나름대로 소박하고 마음 포만한 하루들을 엮어내고 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누군가가 벽돌을 쌓았기에 건물이 서있고 누군가가 농사를 지었기에 내가 밥을 먹고 있고, 누군가가 옷을 만들었기에 내가 입었고, 누군가가 회사를 설립했기에 일할 장소가 있고, 누군가가 일을 해 주기에 회사가 운영되고, 누군가가 물품을 만들어 공급했기에 필요한 그것을 내가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태양이, 산소가, 빛과 어두움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해 주고 있기에 내가 삶을 담을 수가 있었다.
그 수도 없는, 누군가가 한 것을 헤아려보니 오늘 내가 수고한 것 정도로는 비례될 수 없는 누구들이 나를 위해 일하는 엄청난 혜택 속에 내가 살고 있었다. 나 또한 오늘 나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이 결국 누군가에게 혜택으로 돌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삶은 사람간에 사랑의 고리로 연결된 틈새에 자신도 하나의 고리로 끼워져 원하던 원하지 않던 수많은 따스함을 받고 감성이 동사하지 않으므로 인과 관계들을 이루며 유순히 일상들을 엮어 낼 수 있는 것 같다. 거부할 것도 없고 더 챙길 것도 없는 생의 본질들, 출생에는 예약이 없어도 죽음은 확실히 예약되어 있는 이 이상스러운 지상에서 과연 누가 나는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한 국가에서 대통령이 당연히 최고지만 대통령이 휴가를 가든 출장을 가든 서민들은 불편할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청소부가 삼일만 출장을 가면 오매불망 그가 목 메이게 그립다. 험한 직업일수록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직접적으로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은 높은 것을 좋아는 하지만 막상 높은 것이 사람들 속에서 그리 애정 받는 존재는 못 되는 것 같다. 회장, 사장이 높고 회사의 주역이지만 그들이 출장을 가면 직원들은 춤을 추고 그들이 눈에 안 보일수록 즐겁다. 그 높은 이들은 마치 선택받은 양 우아하게 걸어다니지만 어느 날 춤추던 그들과 자칫 업무 교대하는 상황 안 된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이상한 지상의 일이 아닌가.
누구라도, 아무리 대단한 삶을 살았대도, 종래 길가에 돌멩이 하나도 관록 입은 훈장으로 보여 고개 숙여지는 나이가 오고 백발이 사박사박 걸어와 인생이 무엇이더냐 야죽야죽 질문을 던진다. 분노하여 마음은 벌떡 일어서지만 훈기 사라진 무릎에 어느새 소리 없이 성에가 끼어 삐거덕거리고 으스스해진 걸음으로 어기적대며 태어나 아장대던 시점에 다시 돌아가서면 비로소 세상이 정복할 수 없는 만년설로 덮여 있음을 보는 시안이 열린다. 성숙을 들키자마자 폭삭 늙어버린 영상을 들이대고 삶이 속임을 사과하며 원치도 않는 하늘 율법 책의 봉함을 뜯어주고 나면 인생은 곧 거역하지 못할 문턱으로 끌려 들어가고 만다.
이 서럽고 좌절하기 쉬운 운명으로 결정지어진 것이 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고 짧은 생 동안 누가 슬프고 싶어 슬프고 고통이 좋아 고통스러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원치 않는 고난이 먼저 진을 치고 버티고 서 있는 세상에 뒤늦게 태어나 걸음마로 도전하는 하루의 평안들, 인류 중 삶이 아슬아슬함을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정신 이상된 사람도 고픈 배를 채워야 하는 본능적 고민이 있다.
기왕에 고뇌가 출생의 예물인 인생이기에 나는 유일하게 조정 가능하도록 주어진 내 마음만큼은 얄미운 근심에게 공물로 바치고 싶지 않아 연말이면 이렇게 생이라는 것을 다시 계산해 보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는 것, 과연 행복의 감각에게 공급하는 에너지의 실체가 무엇일까 건강함, 사랑할 수 있는 가족 관계, 성취감이 주는 황홀함. 노력의 결과로 얻는 소득의 포만감, 명예, 등등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분명 내가 살아갈 이유만큼의 행복이 주어지고 삶에 충실하면 그만큼 얻는 소득이 있는 반면 불충실하면 삶의 비루함이 형벌로 주어지는 정밀함이 있다.
그러나 그토록 경쾌한 무대 뒤에서 생이 시작하여 끝나는 날까지 주도하는 연출담당, 욕망을 동반한 욕심은 늘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욕심은 팽배한 불만감을 촉구시켜 욕구를 채우라 하고 육신 노동의 작업지시를 위해 휴가 없이 혹사당하는 뇌는 불만을 감정에 토로한다. 감정은 불쾌지수가 높아져 오장육부를 연병장에 불러 세우고 기압 실시에 들어간다. 영문도 모르고 가해오는 폭력에 졸병들은 하나 둘씩 의무실로 실려 가고 결국 졸병 죽인 장교는 사형을 받고 썰렁한 연병장만 남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만 텅 빈 연병장을 돌아보다가 빈 마당을 폐쇄하고 곧 잊어버린다.
그런 생각들 속에 금년에도 마음을 넓혀 건강을 우선하고 틈나는 대로 자연을 찾았다. 담도 없는 자연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강, 바람, 시냇물, 들판, 바다, 새들의 소리, 곤충들의 생동하는 울음소리, 계절마다 연출되는 나무의 빛깔 등등. 자연은 삶 곁에 무수히 방치되어 있고 겸손하여 그리 많은 비용과 시간을 빼앗아 가지도 않았다. 종래 채워지지 않는 갈망에 끌려 다님보다 던져버림 속에서 정신도 마음도 도리어 부유함을 느끼고 평안함을 얻을 수 있었다.
매년 연말이면 새로운 길을 떠나는 유년의 소풍날처럼 새해의 소망을 꾸려 보는 마음. 새해에도 틈나는 대로 자연을 마시고, 조금만 더 돈을 벌고, 조금 만 더 건강하고, 그저 내 안에 욕망들이 굶주리지 않고, 내 위치에서 당당히 일한 충실함에 대해 손해 없는 대가를 받기를 소망하는 예산서를 또 한 번 작성해 본다.
정정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