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극장가에 쏟아져 나온 대작 중 라이브 액션 영화 ‘이온 플럭스’(Aeon Flux)는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MTV의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원작이다. 최근 열렸던 이 영화의 시사회에서 만화 주인공 같은 외모의 한인이 007영화의 차기 본드 걸이기도 한 샬리즈 테론과 함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었다. ‘이온 플럭스’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던 한인 애니메이터 피터 정(44·한국명 정근식)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피터 정 감독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행을 많이 다녔다. 영국, 케냐, 미국, 튀니지를 거쳐 74년 미국에 정착했다. 79년 칼아츠(CalArts)에 입학했고, 신입생 때 디즈니 스타일만 가르치는 칼아츠의 제도를 무시, ‘제멋대로 작품’을 내놓아 교수들에게 찍혔다. 2학년 때 실험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옮겼고, 디즈니 스튜디오에 스카웃 됐다 그러나 이내 독창성과 새로운 실험을 허용하지 않는 디즈니에 염증을 느껴 마블 프로덕션으로 옮겼다.
1991년 이온 플럭스의 시발점이 된 단편 애니메이션 ‘리퀴드 텔리비전’(Liquid Television)의 대성공으로 95년 MTV 시리즈 ‘이온 플럭스’(Aeon Flux)의 감독·각본을 맡았다. 97년 ‘알렉산더’(Alexander) 애니메이션 디렉터 2003년 ‘애니매트릭스’(The Animatrix) 감독·각본, 04년 ‘애니 리딕’(The Chronicles of Riddick: Dark Fury) 감독·각본을 거쳐 올해 파라마운트 영화 ‘이온 플럭스’(Aeon Flux) 캐릭터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이온 플럭스’탄생 주역 - 애니메이터 피터 정
섹시 비밀요원 ‘이온 플럭스’를 창조한 그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애니메이터라 할 수 있다.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확보한 그는 흔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단아’로 불릴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기묘한 상상력과 예측 불허의 스토리가 압권인 ‘이온 플럭스’의 크리에이터 피터 정 감독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영화 개봉에 앞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DVD 박스세트를 출시하느라 할리웃 스튜디오에서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영어가 편하지만 한국어도 무리 없이 구사하는 그의 말투는 느릿했고, 단어 선택에 신중한 완벽주의자로 느껴졌다.
“이번에 나온 실사영화 ‘이온 플럭스’는 캐릭터와 제목만 원작에서 따왔고, 인물 설정이나 내용은 무관합니다. 영화는 다른 작가, 다른 감독이 새롭게 만든 또 하나의 ‘이온 플럭스’인 거죠”
1995년 MTV를 뒤흔든 성인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는 비디오게임이 원작인 영화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앤젤리나 졸리)에 버금가는 캐릭터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온이라는 만화영화 캐릭터 자체를 은밀히 숭배하는 골수 팬들이 전 세계에 양산돼 있다. 선과 악,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한 미래도시를 살아가는 비밀요원 이온의 깡마르고 각진 얼굴, 기이한 비율의 섹시한 골격과 육감적인 매력이 곤충처럼 움직이는 역동적 이미지와 어울려 기묘한 충격을 안겨주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에 따르면 이온(Aeon)은 ‘영원’을, 플럭스(Flux)는 ‘흐름’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 죽기와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파라마운트 영화 ‘이온 플럭스’의 시사회장에서 나타난 피터 정 감독. 오른쪽이 주연배우 샬리즈 테론이다.
“요즘 애니메이터들은 작품 내용보다는 테크닉에 치중합니다. 관객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하는 이유가 ‘감정적으로 느끼고 싶어서’라는 진리를 간과한 결과이죠. 동료 애니메이터들이 관객은 마음으로 작품을 본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명문 예술대학 칼아츠 출신인 그는 작품 기획은 할리웃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은 한국에서 한다고 했다. 최근 3년간 ‘애니매트릭스’(The Animatrix·원작영화 ‘매트릭스’)와 ‘애니 리딕’(The Chronicles of Riddick: Dark Fury·원작영화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처럼 실사영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고, 현재는 가족용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지난달 22일 MTV와 파라마운트 홈 엔터테인먼트가 새로 출시한 DVD 박스세트는 피터 정 감독의 ‘디렉터스 컷’으로, 방송국의 요청에 따라 수정했던 부분을 원래 의도대로 돌려놓았고, 에피소드 10편 중 ‘데미얼지’를 포함한 4편은 대사를 다시 썼고 음악을 가능한 삭제했다.
애니메이션계 한인군단
갈수록 두각 각종 상 휩쓸어
애니메이션(Animation·만화영화)에서 한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피터 정 감독처럼 캐릭터 자체를 탄생시키는 애니메이터도 있지만, 작품의 기획·창작·연출·디자인·채색·촬영 등 전 분야에 걸쳐 한인들의 활약은 갈수록 돋보인다.
해마다 ‘애니상’(Annie Award·애니메이션 분야의 오스카)과 ‘에미상’(Emmy Award) 크리에이티브 아츠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 명단에는 한인들이 빠지지 않는다.
내년 2월 개최될 제33회 애니상 후보명단부터 살펴보자. 피터 신씨가 ‘패밀리 가이’(Family Guy·폭스 제작)로 TV 애니메이션 최우수 감독상 후보에 올라있다. 아트디렉터 마이크 문씨가 속한 미술팀은 ‘포스터 홈 포 이매지너리 프렌즈’(Foster’s Home for Imaginary Friends·카툰 네트웍 제작)로 TV 애니메이션 최우수 제작디자인 후보에 올라있다.
또한, 최우수 TV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오른 ‘배트맨’(The Batman·워너브라더스 제작)은 앤소니 전씨와 김승씨가 감독으로 참여했다. 올해 열렸던 제32회 애니상에는 비록 수상하진 못했지만, 픽사 스튜디오의 피터 손씨가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로 캐릭터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었다.
프라임타임 에미상 크리에이티브 아츠 분야(이하 에미상)도 마찬가지. 2005년 에미상 장편애니메이션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스타워즈: 복제전쟁’(Star Wars: Clone Wars) 제작팀에는 정유문 총감독과 이동수 감독, 김종호 감독이 미 현지 스튜디오 제작팀과 공동으로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러프 드레프트 코리아에 소속된 정유문씨는 지난해에도 ‘사무라이 잭’(Samurai Jack)과 ‘스타워즈’(Star Wars)로 2004년 에미상 2관왕을 차지했었고, 같은 해 홍선아씨가 2004년 에미상 배경회화 개인수상자로 선정됐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 분야를 주름잡는 한인군단의 역사는 70년대 할리웃에 최초로 진출한 한인 넬슨 신(66·한국명 신능균)씨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여름 남북한 합작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Empress Chung)으로 주목을 받았던 신씨는 1985년 한국에 애이콤 스튜디오를 설립해 ‘심슨 가족’(The Simpsons) 등을 제작하고 있는 애니메이션계의 대부이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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