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화에 따르면 천지를 창조한 것은 반고다. 알에서 태어난 그는 골짜기와 산을 깎고 해와 달과 별을 하늘에 박아 넣은 후 죽었다. 그의 시체는 세상의 재료가 됐다. 그의 두개골은 하늘이 되고 살은 흙이 됐으며 뼈는 바위, 피는 강과 바다가 됐다. 그의 머리털은 식물이, 거기 붙어 있던 벼룩은 인간의 시조가 됐다. 아이슬랜드 신화에 따르면 용암처럼 뜨거운 무스펠과 얼음처럼 찬 니플하임 두 세계 중간의 빈 공간에서 생겼다. 용암이 얼음을 녹인 물이 이 공간에 떨어지면서 이미르라는 거인이 태어났고 이것이 천지창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전세계 수천개 민족 가운데 천지창조 신화를 갖고 있지 않은 민족은 거의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신화의 내용이 민족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이중 어느 하나가 옳다면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 된다. 전통과 권위가 아닌 증거와 논리에 근거해 세계의 기원을 따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기원전 6세기경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다. 이들은 해와 별이 신이 아니라 불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세웠다. 21세기 인류가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진실을 밝혀낸 것도 이들이 닦아낸 과학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태양을 불덩어리라 불렀다는 이유로 불경죄로 고발된 그리스 자연 철학자부터 종교 재판에 회부돼 고문당할 뻔한 갈릴레오에 이르기까지 서양 과학의 발전사는 종교와의 전쟁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태양이 불덩어리가 아니고 신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인은 없다. 태양이 불덩어리임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이 마지막 논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가 생명의 기원이다. 압도적인 수의 과학자들은 생명은 진화하는 것이며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과 같은 정도의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종교계에서는 생명은 창조주에 의해 ‘지적으로 설계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한 때 ‘창조론’으로 불리던 이 주장은 1987년 연방 대법원에 의해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유로 학교 교육이 금지 당하자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지적 설계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려던 펜실베니아 도버 교육위원회의 시도가 좌절됐다. 공화당원으로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존 존스 연방 지법 판사가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유로 이를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재판에서 진 교육위원들이 항소를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 ‘지적 설계론’을 가르치려 했던 교육위원 8명을 지난달 모두 낙선시켰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공화당 성향의 도버에서도 ‘지적 설계론’이 찬밥신세인 걸 보면 1925년 진화론을 가르치던 교사 해임을 놓고 벌어진 ‘스코프스 재판’ 이후 미국 사회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지적 설계론’도 모든 가설처럼 토론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를 학생에게 먼저 가르치려고 시도할 것이 아니라 증거와 논리로 동료 과학자들의 인정을 먼저 받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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