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미국인의 애국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아마도 9.11테러 직후였을 것이다.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있는 ‘애국법(Patriot Act)’은 사상 최악의 테러에 대한 분노로 불 지펴진 애국심이 미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바로 이 무렵 제정되었었다. 테러 45일만에 연방의회를 전격적으로 통과했다. 법안도 서둘러 만들었겠지만 표결도 급하게 부쳐져 본문조차 안읽고 투표한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압도적 찬성이었다. 정치적 자살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표를 던진 상원의원은 단 한명 뿐이었다.
부시행정부의 최우선 정책이 ‘조국 안보’라면 애국법은 이를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라 할 수 있다. 미국민의 안전을 위한 반테러작전의 가장 효과적 도구가 바로 애국법이기 때문이다.
총 21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애국법의 근간은 FBI 수사권의 대폭 강화다. 테러용의자로 의심되면 본인도 모르게 가택수색을 할 수 있고 법원승인없이 셀폰에서 이메일, 인터넷 서치등 개인 통신을 도·감청할 수 있으며 재정상태에서 도서대출, 카렌트, 호텔숙박등 모든 기록을 임의대로 조회할 수 있다.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수사권이었지만 제정 당시엔 아무도 지나치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뜨거운 감정이 식고 차가운 이성이 회복되면서 개인의 사생활과 기본 자유를 침해하는 이 무제한 파워의 부작용도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도서관에 가서 무슨 책을 빌려 보았는지, 인터넷에서 어떤 사이트에 주로 들어가는지, 누구와 e메일을 언제 무슨 용건으로 주고 받았는지, 병원에서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크레딧 카드 빚이 얼마나 밀렸는지…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사생활이 정부의 자료로 낱낱이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더 고약한 것은 이런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들이다. 일반 직장은 물론 전화회사, 도서관, 크레딧 조사회사, 병원, 은행, 호텔들까지 자칫 종업원과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밀고’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록을 내주고서도 그런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밝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애국법에 의하면 FBI는 법원의 사전승인 없이 자체에서 발행하는 일종의 행정 소환영장인 ‘국가안보서한(National Security Letter)만으로 이 모든 개인 정보를 소유할 수 있다.
2004년 워싱턴주 한 도서관에도 이 서한이 발송되었다. 2001년이후 오사마 빈라덴의 전기를 빌려간 대출자 명단을 모두 달라는 내용이었다. 도서관 변호사가 이유를 물었다. 그 책의 어느 페이지에 누군가가 ‘내가 하는 일이 범죄라면 역사가 증인이 되게 하라. 미국에 대한 증오는 종교적 의무이며 신에게서 보상받을 것이다’라고 써놓은 것을 발견한 한 대출자의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 구절은 빈라덴이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도서관 이사회는 명단제출을 거부했고 15일간 승강이 끝에 결국 FBI는 요구를 철회했다.
이같은 안보서한은 애국법이후 매년 3만건이 발송되고 있는데 9.11이전보다 1백배나 증가한 숫자다. 국제테러와 전혀 관련없는 개인기록도 상당수에 달한다. 지금까지 행해진 가택 및 사무실 수색 중 88%도 테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수사권 남용뿐 아니라 주류의 텃세로 악용되기 쉬운 ‘애국법’은 또 소수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최대 피해자는 중동계이지만 입국심사부터 영주권 취득까지 모든 외국계의 입지는 반테러를 빌미로 앞으로도 계속 좁아질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애국법 제정시 논란 가능 16개 조항에 대해 4년후 시효만료를 명기한 것이다. 그 만료일이 바로 이번 연말이다. 물론 백악관은 그동안 연장을 위한 압력을 계속 행사해왔고 연장안은 지난여름 각각 상하원에서 승인됐다. 지난주엔 상하원안의 절충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어제(14일)오후 하원은 절충한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개인기록 조회권등 2개의 논란조항에 수정을 가해 4년 더 연장하고 나머지는 영구화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내일로 예상되는 상원표결은 하원에서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4년전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던 러셀 파인골드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위협하고 있고 민주, 공화 각 3명씩 6명의 의원들도 면밀한 검토를 위해 3개월간 표결을 미루자는 안을 공동으로 마련, 이틀전 상정하는등 난항 기류가 역력하다. 민권보호를 위한 보다 확실한 제동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테러는 물론 안보의 중요 부분이다. 안보가 애국의 기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안보’ 앞에 개인의 기본권을 저당잡혔던 암울한 시기에 대한 기억이 아직 생생한 우리에겐 이같은 상원의 난항기류가 본능적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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