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2월28일 새벽4시경 위티어의 한 7-일레븐에 마약에 취한 갱단원들이 들이닥쳤다. 샷건을 휘두르는 그들에게 26세의 종업원 앨버트 오웬스는 원하는 건 다 가져가라며 순순히 응했다. 그러나 오웬스를 스탁룸으로 밀어넣은 거구의 갱두목은 무릎 꿇고 엎드린 오웬스의 뒤통수에 두발의 총격을 가했다. 주근깨 얼굴에 아직 소년티가 채 가시지 않은 젊은 아버지 오웬스가 죽어가며 고통하는 모습을 보며 범인은 잔인하게 낄낄거렸다. 공범들의 증언이었다.
2주가 채 안된 3월11일 다시 LA의 한 모텔을 턴 이 흑인 강도는 대만계 이민인 주인 노부부와 딸을 한꺼번에 살해했다. 이날 양씨 일가의 살인을 그는 “내가 3개의 부처 대가리를 쏴 죽였지”라고 신나는 무용담으로 떠벌렸다고 패거리들은 후에 법정에서 증언했다.
체포된 범인은 26세의 흑인 스탠리 ‘투키’ 윌리엄스였다. 그저 단순한 불량배가 아니었다. 악명높은 갱단 ‘크립스’의 공동 창설자였다. 뉴올리언스 빈민가 17세 소녀에게서 태어난 투키는 6살 때 엄마와 LA로 와 사우스센트럴 지역에서 자라면서 줄곧 소년원을 드나들었다. 걸핏하면 때리고 강탈하고 총질해대는 포악한 성격의 투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한인상인들에게도 악몽같았던 갱단 ‘크립스’를 조직한 것이 불과 16살 때였다.
4건의 살인혐의로 법정에 선 그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으나 81년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24년이 흐른 지금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뉴스의 중심에 서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면서 뉘우치고 거듭났다고 말하는 그가 감형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형집행 예정일은 다음 주 13일이다. 주 대법원에서 지난 주 마지막 항소가 기각되었기 때문에 이제 살 길은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감형 수락뿐이다.
현재 미 전국의 3,400명 사형수 중 투키는 가장 유명하다. 그의 감형을 위해 배우 제이미 폭스, 랩가수 스눕 독을 비롯해 해리 벨라폰테, 러셀 크로, 마리오 쿠오모에서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에 이르기까지 각계 명사들이 줄을 늘어섰고 투키 자신도 노벨평화상과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가 하면 그의 일생이 TV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명사’가 되었다.
그가 ‘변화’한 것은 수감 6년이 넘었을 무렵이었다. ‘사회의 독’이었던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처음으로 ‘양심’이란 것을 생각했다. 독학으로 문학과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려 애썼다. “내가 만든 갱단 때문에 희생된 무고한 생명들, 아무 의미없이 사회의 쓰레기처럼 사라진 흑인 젊은이들에 대한 죄책감에 고통스러웠읍니다”
이무렵 그는 갱관련 리서치를 하던 여류 작가 바바라 벡넬을 만났다. 그의 권유로 갱의 위험성을 알리는 아동서적 10권을 저술했고 녹음과 전화 스피치를 통해 수천수만 청소년들에게 선도메시지를 전했으며 뉴저지주 라이벌 갱단간의 화해를 중재하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스위스의 국회의원과 문학상 후보로 추천해준 브라운대학 교수도 모두 벡넬을 통해 알게되었다.(노벨상 후보가 되면서 투키는 ‘명사’로 떴지만 사실 후보추천은 누구든 국회의원이나 교수, 판사면 할 수 있는 것으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낙태와 함께 미국사회 이념투쟁의 핫이슈인 사형제도는 이미 미국의 12개주와 전세계 120개국에서 폐지되었지만 범죄에 시달리는 미국민들에겐 아직도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75%가 찬성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사형제의 공개반대를 꺼려하고 주지사에게 올려진 사형수의 감형청원은 번번히 거부된다. 게다가 투키의 케이스는 아주 고전적이다. 감형의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재판과정의 오류나 DNA같은 드라마틱한 새 증거가 발견된 게 아니라 ‘새사람’이 되었으니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청원하는 지지자들은 그에게 감동받아 갱에서 등돌린 청소년들이 수없이 많은데 이런 사람을 죽이는 것이 ‘기독교 국가’인 우리사회의 기본 가치관이냐고 반문한다.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의견도 강경하다. 어이없이 희생당한 오웬스와 양씨일가의 인권은 누가 지켜줄 것이냐고 이들은 항변한다. 투키의 ‘변화’는 끈질기게 추구해온 사형 모면의 방편일 뿐, 그는 감방에 앉아서도 갱단을 조종하고있는 위험한 존재라고 교도소 관계자들은 단언한다.
4건의 살인범행은 아직도 강경 부인하고 있는 그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새 사람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우리는 알 수 없다. 강도에게 희생된 한인 상인들의 비극을 수없이 지켜본 우리에겐 용서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가 교도소에서 죽을 것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죽음의 시간을 신이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결정할 것인가 뿐이다”라는 한 변호사의 말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희끗한 머리에 인상마저 순하게 변한 51세의 투키는 “나는 살고싶다”고 호소한다.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 그의 감형청원 청문회가 오늘 열린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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