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김창규씨의 투병기
“신장, 췌장, 십이지장, 비장... 다 떼어냈지만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삶이 결코 고통스럽지는 않습니다.”
올해로 30년째 미국 이민생활을 맞이하는 김창규(69)씨는 의사들도 놀라워하는 암과 당뇨를 8년째 이겨내고 있는 환자다. 문단에 등단한 일도 없고, 컴퓨터조차 익숙하지 못해 타자 연습 반, 1.5세의 세 자녀들에게 자신의 삶을 읽어주고 싶은 생각 반으로 써 내려간 투병기이자 신앙고백서인 ‘자다깨다’(문무사)를 이달 초 펴내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매사에 감사하면
약·식사·운동
100배 효과 있죠
“내년엔 운전해서 미국 한바퀴 돌겁니다”
책도 책이지만 책 표지에 소개된 신장, 췌장, 십이지장, 비장 등 4가지 장기를 떼어냈다는 그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 추수감사절을 코앞에 앞둔 지난 월요일 LA 한인타운 갤러리아 안에 있는 커피샵에서 그를 만났다. 흔한 당뇨환자처럼 뚱뚱한 모습이 아닌 데다가 마른 체격에 난생 처음 인터뷰라며 떨린다는 말과는 달리 수다스러울(?) 정도로 속사포로 쏟아낸 그의 생생한 투병기는 그야말로 솔직 담백했다.
“1.5세로 미국에 정착한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고 친지나 친구들에게 그냥 ‘내 이야기야’하고 나눠주려고 했는데 책으로까지 나오게 됐다”며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며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말했다.
그는 현재 제한된 장기의 기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호르몬제, 항생제 등 하루 18알의 처방약을 복용한다. 또한 당뇨 조절을 위한 혈당 주사도 본인 스스로 아침저녁으로 주사하고 있다.
하루 4번 혈당 검사를 혼자 한다는 그는 “좁은 길이지요. 혈당이 조금이라도 낮아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혈당이 정상치보다 조금이라도 높아서도 안 된다”라며 손바닥을 평행으로 맞춰 좁은 길을 만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그에게는 암세포가 자리했던 췌장을 제거했기 때문에 인슐린을 분비하는 기능이 없다. 췌장이 없어 평생 제1형 당뇨 환자로 살아야만 한다.
김씨가 처음 병마와 싸우게 된 것은 지난 1997년. 환갑의 나이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엔지니어로서 미국에서 20여 년 간 익혀온 실무경험을 LG엔지니어링에서 젊은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전수하던 중이었다. 회사에서의 정기적인 건강 검진 덕에 신장암을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른쪽 콩팥 하나를 떼어 냈지만 다행이었다. 신장은 2개 였으니까... 신장은 하나로 살게 됐지만 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다. 과중한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고, 동료나 후배와의 소주잔도 기울이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었다.
하지만 이듬해 그는 사망률은 거의 100%, 3년 생존율은 3% 이내라는 최악의 암으로 꼽히는 췌장암에 걸리고 만다. 그야말로 죽음을 코앞에 둔 것이다.
“담당의사도 수술을 꺼려 했지요”라 담담하게 그 때를 회상했다. 당시 의과대학 수련생이었던 아들 탐이 포기하려 했던 의료진을 설득해 췌장과 십이지장, 비장까지 떼어내는 수술을 감당해 냈다. 숨어있듯 간장 뒤에 있는 췌장은 여러 장기와 동맥이 얽혀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단순한 제거가 매우 어렵다. 특히 김씨의 경우 암세포 위치 때문에 췌장만 기술적으로 제거할 수 없었다. 때문에 십이지장, 비장을 함께 제거하고 인근 동맥도 수술, 일대의 내장 교통정리를 해 4개의 장기 없는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조기 발견으로 암은 완치됐으나 다시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며 당뇨와 힘겨운 혈당싸움을 해야만 했다. 김씨는 “평생 시간 맞춰 주사 맞고 처방약도 먹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식사량도 칼로리에 맞게 먹으며 졸려도 깨어 있어 움직여야 하고 눕고 싶어도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혈당 조절에는 도사가 다 됐다. 하루 2,000 칼로리를 계산기 없이도 매 끼니마다 계산해 음식을 섭취하며 한 서브당 칼로리는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머리로 간단히 칼로리와 영양 밸런스를 맞춰 음식 양을 조절한다고 한다.
김씨는 “콩을 좋아해 주로 검은 콩과 현미 찹쌀, 현미, 흑미, 보리 등을 6대4로 만들어 콩떡 같은 밥을 지어 부식으로 먹고 찐 감자, 고구마, 옥수수, 둥근 호박과 살짝 데친 당근, 양배추 등 매일 입맛대로 골라먹고 있습니다”라고 당뇨 조절을 위한 식단을 밝혔다.
또한 적어도 하루 다섯 가지 이상의 과일(사과, 오렌지, 포도, 딸기, 복숭아 등), 각종 채소(토마토, 브라컬리, 샐러리, 상추, 양파 등)를 수북이 그릇에 담아 식초로 드레싱을 만들어 샐러드를 끼니마다
섭취하며 혈당을 올리지 않는 김이나 미역 등 해조류, 호두·볶은 콩·아몬드·호박씨, 알로에, 하루 한번씩 푸룬(말린 자두)을 두 개씩 먹는 것이 모두 김씨가 직접 만들어 먹는 식단이다.
김씨는 걷기 운동을 적극 추천했다. 매일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하는 그는 현재 살고 있는 LA 다운타운 벙커힐 근처의 모든 길을 우체부보다 더 잘 안다. 김씨는 “걷기 운동은 다리와 발바닥 근육의 일종의 펌핑(Pumping)작용 운동으로 근육 사이로 이어진 혈관의 수축이 이뤄져 발과 다리 부분의 혈액이 위로 올라가게 되고 혈액순환이 잘 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음식을 먹을 때나 운동을 할 때 모두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을 추가한 것이 그의 건강 유지 비결이다. 그에게는 ‘기쁨+음식물+걷기 운동=건강’이라는 그만의 특별 공식이 생겼다. 또한 간증서이기도 한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에게는 종교가 병을 이기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특별한 무기가 됐다.
그는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면 음식물 섭취, 처방약 복용, 운동 등의 효과가 100배로 돌아옵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반인이 보기에 살얼음을 걷는 듯한 인생길을 걷고 있는 김창규씨. 한국나이로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활력이 넘치는 소년 같은 김씨의 또다른 소망은 미국을 건강한 몸으로 직접 운전해 한 바퀴 돌아보는 일이다.
“그동안 아프지 않았을 때까지 합해보면 LA에서 캔터키, 시카고, 아이오와, 옐로스톤 등은 가보았으니 나머지 3분의2가 남았어요”라 말하는 그의 소망이 내년에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 암·당뇨 극복 김창규씨의 조언
-의사의 지시대로 충성하고 병을 이기는데 최선을 다한다.
-병에 굴복하지 않는다. 음식물, 약, 운동효과는‘살 수 있다’‘이길수 있다’는 믿음에서 온다.
-부지런해야 한다.
-음식물 섭취는 건강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음식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Food your Miracle Medicine’(지은이 Jean Carper)을 참고하고 각종 질병과 음식 관계를 파일 해 식탁 옆에 손쉽게 볼 수 있도록 두고 수시로 확인하며 내가 먹는 것이 지금 맞는지 재확인한다.
-하루 섭취하는 모든 음식을 매일 기록한다.
-음식물을 섭취할 때에는 천천히 먹는다.
-걷기 운동을 한다.
-종교에 의지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
-긍정적으로 생활한다.
-인내를 갖고 자신을 이긴다.
# 김창규씨는
1936년 충남 출생으로 서울대 공대 화공과를 졸업(13회),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현 LG) 부산 연지 공장의 플래스틱 제품 연구개발 주임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유공(현재의 SK) 창립사원으로 울산 정유·석유화학 공장 시설확장 설계, 시공, 시운전 부분에 참여했다.
40세인 75년 미국에 이민와 플루어(Fluor), 브라운 앤드 루트, 브론(Brown & Root, Braun) 등 엔지니어링 회사를 거쳤으며 세탁소, 조경 등 자영업을 하기도 했다. 96~98년 한국의 LG 엔지니어링, SK 건설 등에서 기술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나성한인교회 집사인 그는 현재 건강관리가 그의 일이며 투병기 ‘자다깨다’를 펴냈다. 가족은 부인 김소자 권사와 두 명의 딸과 아들, 손자손녀가 셋 있다.
글 정이온 객원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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