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계절이다. 때 아닌 더위가 물러가면서 가을은 아름답게 깊어가고 있고, 태풍과 지진과 전쟁이 계속된 한 해였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오늘 저녁 온가족과 함께 추수감사절 식탁에 둘러앉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연말시즌으로 접어든다. 수천수만의 인파가 나날이 화려해지는 샤핑몰을 가득 메우고,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정겹게 울리고, 쏟아지는 캐럴이 귀를 들뜨게 하고, 달콤한 쿠키냄새가 위장을 들뜨게 하면서 바쁜 일상에 묻혀 잠자던 ‘인간의 선의’도 고개를 들게 된다. 주는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한껏 너그러워지는 명절 분위기와 국세청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낫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행하도록 함께 부추기는 때가 바로 이 계절이다. 착한 일이 하고 싶어지는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다가오는데다 세금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연말이 되기 전 빨리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력은 서부를 일구어 낸 개척정신이라고도 하고 우주를 탐험하는 도전정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저력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깊이 뿌리내린 돕는 마음, 자선의식이다. 자선은 미국 소셜서비스의 최대 공급원이다. 노숙자를 먹이는 수프키친부터 각 지역의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다른 선진국에선 정부가 운영하는 서비스들이 미국에선 비영리기관으로 운영된다. 가난한 엄마와 아이들, 버려진 노인들을 돌보고 갱으로 변해가는 빈민가의 청소년들 선도에 나서며 약자를 위협하는 권력에 대신 맞서주기도 하고 못 듣는 사람들에겐 소리를,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겐 빛을 찾아주기도 한다. 매일 절망에서 희망을 되살려내며 커뮤니티를 단단한 끈으로 이어가는 일을 미국에선 바로 이 자선기관들이 맡아 왔다.
이같은 비영리 자선기관들이 요즘 시험대에 올라있다. 천문학인 기부금으로 기관들은 점점 부유해지는데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에게 돌아가는 도움의 손길은 계속 줄어들고 있어서다. 기부금 중 가난한 사람 돕기에 쓰이는 액수는 10%도 채 안된다. 연방하원 세입위도 청문회에서 따졌다. “은행에 수십억달러를 가진 기관에 면세 혜택을 주어야 하는가” 세금내는 병원의 무료진료율도 4.5%나 되는데 면세 비영리 병원의 무료진료가 4.4%에 불과하고 대학의 자산은 수십억달러씩 늘어가는데 학비인상율은 인플레를 능가하고 학비보조금 지출은 기부금 수입의 1%도 안된다는 지적이다. 바짝 긴장한 비영리기관들이 보다 본질적인 ‘자선’에 충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미국 자선행위의 특징은 개인이다. 미국인은 평균 연수입의 2%를 기부한다. 영국인보다 6배나 많다. 세금공제 혜택 때문이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이 작년 한해동안 80만개 자선기관에 기부한 돈은 약 2,500억 달러에 달했다. 76%는 대기업이나 재단이 아닌 개인들이 낸 돈이다. 누가, 왜, 얼마를 주는가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주는 마음’은 연령과는 비례하지만 수입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연수입 5만달러 이하의 기부율이 10만달러 이상보다 높다. 세법이 빈자의 성금에는 별 혜택을 못주고 부자의 기부금엔 상당한 혜택을 주는데도 그렇다.
미국의 자선 사업은 어떤 대기업의 벼락 선심이 아니라 수천만 개인이 작은 한 몫씩을 담당해 이룬 거대한 물결인 셈이다. 아주 오래전, 지금은 한국 국민들이 다 잊어버린 듯한 시절, 6.25전쟁의 고아들에게 한 달에 10달러씩 보내주던 손길도 많은 경우 이런 ‘빈자의 한 등불’이었다.
누군가가 개인의 불행지수 측정법을 알려주었다. 아직 직장이 있는가. 집 페이먼트를 하고 있는가. 식탁에 먹을 것이 있는가. 가족들이 모두 건강한가. 이 네가지 질문에 모두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불행지수는 일단 제로라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집을 잃고 굶주리며 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고 대부분의 카트리나 이재민들은 부서진 집을 되세우지 못했으며 지금 현재도 미 전국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3,800만명에 이르고 있다.
누구나 힘들겠지만 그래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넘어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금 혹은 많이, 줄 수 있는 만큼만 주면 된다. 넉넉하지 않은 나의 것을 나누어 줌으로서 타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또 자기 스스로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USA투데이에 실린 한 독자의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금년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언젠가 내게 어려움이 닥치면 분명히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 돕는 정신은 미국인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이지요”
‘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즐거운 계절이다.
해피 땡스기빙!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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