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와 개구리’라는 제목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소련의 과학자가 우주선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보고
“신은 없다. 절대로 없더라”고 말했다 합니다.
미국의 과학자가 우주선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본 소감을
“하나님의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더라”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소련의 과학자를 더 좋아할 수도 있고 미국의 과학자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맞았다,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양쪽의 소감이 다 - 과학이 아닌, 종교나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 증명할 수 없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종교는 반대가 아니다. 우주와 인류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함께 도전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서로에게서 정신적 세계와 실험적 경험를 배워갈 수 있다”고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서양의 극단적 종교관을 바라보는 동양종교의 명상적 시각일 수도 있겠다.
요즘 미국에서 종교와 과학이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공립학교의 과학교육 개편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법정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보수와 진보, 이념론자들이 끼어들면서 선거에 회부되는 정치적 공방으로 까지 치닫고 있다.
논쟁의 주제는 Intelligent Design, 지적 설계론이다. 많은 사람들에겐 아직도 생소한 어휘다. 쉽게 설명하면 “생명체란 너무 복잡하고 정교해 자연적 진화의 산물로만 볼 수 없다”는 전제아래 “어떤 ‘지적’인 능력을 가진 초월자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주장이다. 지지자들은 진화론에 대안이 될 수 있는 과학이론이라고 주장하지만 진화론을 인정하는 과학계에선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 종교개념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그럴듯하게 재포장한 창조론이라는 것이다.
지적설계론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이지만 극성스럽게 홍보를 시작한 것은 2000년 들어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시의 집권과 맞아 떨어진다. 지난 몇 달새 논쟁이 확 뜨거워진 것도 지적설계론을 지지하고 나선 부시의 8월초 인터뷰 때문이다. 극우 보수정치인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이 사실상의 ‘창조론 교육’을 안락사와 낙태에 이은 또 하나의 사회 이슈로 부각시켰고 진보주의자들은 법정소송으로 맞대응에 나섰다.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해결 기미를 안보이자 정치가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주 8일 실시된 중간선거에선 펜실배니아 주의 한 작은 마을이 전국적인 뉴스의 각광을 받았다. 공화당 출신 8명의 현직이 모두 낙선한 도버의 교육위원 선거였다. 도버는 미 전국에서 지적설계론을 과학시간에 가르치도록 한 첫 번째 교육구다. 교육위가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며 지적설계론도 생명의 기원에 관한 또다른 관점의 학설’이라는 내용을 9학년 생물시간에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결정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소도시 도버가 진화론 대 창조론의 전국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진보파의 지원을 받으며 일부 학부모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공립학교에서 지적설계론을 가르치는 것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헌법에 반한다는 위헌소송이다. 판결 결과는 1월초에나 나올 전망인데 성난 주민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엄청난 소송비용, 자녀들이 겪을 교육혼란 등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지적설계론 소동을 일으킨 8명의 장본인들을 모두 퇴출시켜버린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날 캔사스주 교육위는 지적설계론을 포함하는 새 과학교육기준을 채택했다. 시행은 2007년부터. 내년 선거에서 교육위원들을 갈아치우겠다는 다짐들이 벌써부터 공공연하게 선언되고 있다. 과학적 논쟁을 해결하는데 선거는 결코 합리적 해결책이 아니지만 논쟁이 정치화되어버린 이상 다른 방법으로는 풀 길이 없어진 것이다.
부시의 재집권이후 과학교육계까지 확산된 거센 보수바람이 이번 중간선거로 조금 주춤해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도버의 선거 결과도 종교와 과학의 소모적 논쟁엔 바람직한 결말이 되었다. 정치를 통한 창조론의 마케팅은 그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서 답답한 것은 미국의 교육이다. 지난달 발표된 미국학생들의 과학실력은 아시아국가에 비해 훨씬 뒤처지고 있다. 그런데 비생산적인 지적설계론 논쟁에는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도 보고서의 이 초라한 결과에는 아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라고 한다. 경제와 삶의 질을 좌우할 생명공학, 유전학, 의학의 연구에 전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할 이 시간에 미국의 과학교실에선 창조론을 가르치고 있을 것인가. 종교와 과학, 그리고 정치가 성숙하게 제 영역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본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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