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내분을 겪은 남가주의 한 교회는 목사가 설교 중 이야기한 내용이 교인들 사이에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대강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전에 사역하던 교회에서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여러명 있었는데, 한 사람은 교통사고 나서 비참하게 죽었고, 한사람은 병이 났고, 한사람은 감옥 갔고, 한사람은 재물을 모두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 온 교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설교를 하는 목사가 있다는 사실도 놀랍고, 이런 이야기를 믿는 교인들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20~30년전 한국 교계에서 한창 유행하던 이런 설교는 목회자의 절대 권위와 교인들의 절대 순종을 강조하기 위해 종종 사용됐는데 이 때문에 한국 기독교가 성숙하지 못하고 서구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목회자 우상화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본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첫 계명에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지만, 오늘날 한국의 교회에는 분명히 우상이 있다. 돈과 목사가 그것으로, 돈이 주로 교회를 크게 짓고 싶은 사역자들의 우상이라면, 목사는 누군가를 하나님처럼 떠받들고 싶어하는 교인들의 우상이다.
특히 담임목사에 대한 교인들의 충성은 맹목적이어서 교회 내에도 ‘오빠부대’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미국으로 집회하러 나올 때면 경호 팀을 비롯한 수십 명의 장로 권사들이 따라나오는 것만 보아도 목사들이 얼마나 우상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목사를 ‘기름부음 받은 주의 종’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부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주의 종을 잘 대접해야 축복 받는다’ ‘주의 종을 대적하면 벌을 받는다’ ‘주의 종은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신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도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과연 그런가?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는 말은 구약시대에 제사장과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던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 이후에는 왕도 없고 제사장도 없으며, 오히려 성경은 모든 크리스천이 ‘왕 같은 제사장’(베드로전서 2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름부음 대신 현 시대에는 교회가 직분자를 세우면서 안수하는 의례가 있다. 그러나 안수는 목사뿐 아니라 장로와 집사들에게도 동일하게 행하는 의례이므로 목사 안수 받은 것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는 것이라 주장하려면 장로와 집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음의 성경구절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요한일서 2장) 목사, 장로, 집사뿐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이 똑같이 기름부음 받았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주의 종을 잘 대접해야 복 받는다’는 주장에는 선지자 엘리야에게 마지막 음식을 대접하고 평생 마르지 않는 기름통과 밀가루통을 갖게된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또 ‘주의 종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로는 모세가 이방여인을 취했을 때 누이 미리엄이 비난하다가 문둥병에 걸린 사건이 종종 인용된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변화산상에 함께 나타났을 만큼 신구약 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이다. 이 모세와 엘리야를, 신학교만 졸업하면 매년 쏟아져 나오는 수천명의 목사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같은 예를 적용하는 일이 상식적인가?
‘주의 종을 대적하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크고 작은 사고나 어려움을 당한다.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가족이 갑자기 병에 걸리거나, 자녀가 말썽을 피우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과거 목사에게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말을 했던 사람이 이런 일을 겪으면 사람들은 ‘주의 종을 대적해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목사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앙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목사나, 목사의 인도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나 똑같이 주의 종이고 똑같은 인간이란 것이다. 사랑과 존경으로 서로를 섬기는 목사와 교인, 건강한 공동체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숙희 부국장·특집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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