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미국은 이민자들이 살기에 나쁜 나라는 아닌 모양이다. 각종 여론 조사를 해 보면 한인들의 미국 생활 만족도는 의외로 높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50년대에 처음 미국에 온 사람들 눈으로 보면 형편없는 나라다. 그 당시 유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은 한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때야말로 미국은 황금기였다. 단순 노동자들도 넓은 마당이 딸린 집에서 차고 안에 2대씩 자가용을 넣어 두고 살았다. 해고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남편 혼자 받는 월급으로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길거리는 깨끗하고 범죄는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사람들은 친절하고 인심은 후했다.
물론 이런 회상은 “옛날은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처럼 과장일 수 있다. 그러나 각종 수치로도 당시 미국은 ‘지상 낙원’이었다. 당시 미국의 GDP는 세계 전체의 절반이었다. 국토가 가장 넓은 소련과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이 모두 공산 치하였고 그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지닌 인도는 사회주의적 경제체제 하에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동유럽은 공산화되고 일본과 서유럽은 제2차 대전의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도 형편은 비슷했다.
제2차 대전의 전화를 입지 않은 미국은 ‘세계의 공장과 채권자’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고 이에 따라 미국 노동자들도 독과점적인 임금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과 일본 경제가 회복되면서 이런 미국의 지위는 위협받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 미국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 상승 속도는 현저히 둔화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자유 시장 체제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 노동자들은 임금 상승은커녕 삭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미국의 1/10에도 못 미치는 중국과 인도 노동자와의 경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최근 GM의 최대 부품 제조 회사인 델파이사는 파산을 신청하고 노조에 가입돼 있는 직원들에게 67%의 봉급삭감을 요구해 승낙을 받아냈다. GM과포드, 다임러 크라이슬러사도 이와 유사한 혜택 축소와 감봉을 직원들에게 요구할 예정이다.
델파이 직원들의 시간 당 평균 임금은 27달러다. 여기 각종 베네핏을 합하면 실질 임금은 60달러가 넘는다. 같은 일을 중국에서 하면 시간당 3달러면 된다. 임금의 2/3를 깎아도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과거 제조업 분야에 국한됐던 소위 ‘아웃소싱’은 이제 회계, 법률, 소프트웨어, 의료 등 서비스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화가 계속되는 한 이런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근로자의 임금 하락을 막기 위한 해결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을 통한 노동의 질 향상이다.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높은 수준의 기술 인력을 확보해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드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노조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 노동자의 고임금과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길이다.
미국 노동자가 높은 보수를 받고 싶어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똑같은 노동을 하는 미국 인이 중국인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를 강요하는 것은 결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려 파산으로 가게 만들뿐 아니라 양질의 제품을 싼값에 사려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화와 함께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노조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노조원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노조회비를 정치 자금화 하는 것이다. 8일 주민 발의안의 하나로 올라와 있는 프로포지션 75는 이를 금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안에 반대하는 노조가 쓴 돈은 4,000만 달러로 찬성 쪽 1,000만 달러를 압도한다.
같은 발의안이 통과된 유타와 워싱턴 주의 경우 노조회원의 80~90%가 이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들의 동의 없이 회비를 정치 자금으로 쓰는 것은 그 자체로도 잘못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유권자들은 한 표를 던지기 전 무엇이 진정으로 가주와 미국의 앞날을 위하는 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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