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서 ‘종횡무진’ 중견여배우들
휘황한 젊음도, 찬연한 아름다움도 없다. 언니나 이모 역할을 할 시기도 넘겨 이젠 까마득한 옛날 자신들이 맡았던 청춘스타의 엄마나 시어머니 역이 보통이다.
그러나 중년 여배우들은 힘이 세다. 드라마와 영엔옥안악玖?세월과 더불어 농익은 연기력으로 보는 이들을 쥐락펴락한다. 연륜에 비례해 배역의 크기는 줄었어도 화면에서의 중량감은 더 커졌다. 그래서 뜨는 드라마와 영화에는 반드시 이들이 있다.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BS 2TV ‘장밋빛 인생’. 시청자들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맹순이(최진실)에게 눈물 짓다가도 맹순의 시어머니인 끝순이(나문희)와 미스 봉(김지영)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시앗을 향해 “내는 문어고, 니는 쭈꾸민기라”고 일갈하는 경상도 아지매 나문희와 “형님 그래도 맛은 쭈꾸미가 더 있다니께요”라고 지지않는 전라도 아줌씨 김지영의 사투리 연기 대결은 즐겁다.
특히 앞서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 ‘부모님전상서’ ‘내 이름은 김삼순’ 등에서도 매번 호평을 받았던 나문희는 최근 영화 ‘너는 내 운명’으로 제6회 부산영화평론가상 조연상을, 영화 ‘주먹이 운다’로 제42회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드라마 ‘가을동화’ ‘오!필승 봉순영’ ‘부모님전상서’와 영화 ‘우리형’ 등에 출연한 김해숙은 서민적이고 현실적인 어머니 연기가 장기. ‘장미빛 인생’에서도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가출한, 가난하고 힘없는 맹순이 어머니 역으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울렸다.
물론 영화와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까지 종횡무진하고 있는 ‘영원한 일용엄니’ 김수미도 있다.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부터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 영화 ‘가문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을 넘나들어온 그는 요즘에는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카사노바에게 정기를 빨린 이사벨 역으로 웃음을 끌어내고 있다.
“카사노바 이 노무 시키” “젠틀멘이다~”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키며 시트콤 제목을 ‘안녕, 이사벨’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원성을 사고 있을 정도.
국민드라마 ‘대장금’과 ‘내 이름은 김삼순’ 등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을 맡아 한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기를 보여준 여운계도 흥행 보증수표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김수미와 함께 카사노바에게 정기를 빨린 ‘불쌍한 운계’ 역을 맡아 전에 없이 파격적으로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왕성한 활동과 관련, 올 초 김을동 김수미 여운계 김형자 등이 총출동?영화 ‘마파도’의 흥행 성공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랫동안 대중문화의 수동적 소비자 위치에만 머물러온 중년 여성들이 이제 적극적인 문화 생산주체로도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 나문희 30대 초반부터 老役 내면의 연기 하고싶어
30대 초반에 동갑인 이대근씨 엄마 역할을 할 정도로 노역을 많이 해 속상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젊어서 좋은 역할 많이 했더라면 지금 고마움을 모를 것이다.
억세거나 고약한 시어머니 역할을 많이 해 며느리 눈치도 보였을 텐데 딸만 셋이어서 다행이다. 실제로는 상처도 잘 받는 편이다. 감정을 직접 노출하는 역을 많이 해왔는데 앞으론 내면으로 침잠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설경구씨가 주연한 영화 ‘열혈남아’ 촬영을 앞두고 매일 등산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 김수미 새 캐릭터 창조에 희열, 내가 애드리브 좀 하지
작가나 감독이 원하는 이상을 창조하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 영화 ‘마파도’에서 갯벌에서 소주 마시면서 ‘인생 뭐 있냐, 고무신 바닥에 붙은 껌처럼 끈적끈적한 거지’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영화 ‘가문의 위기’에서 등에 용 문신한 걸 보여주며 ‘내가 40년 전부터 공중 목욕탕 가보는 게 소원이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내 머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이사벨이 부르고 있는 ‘젠틀멘이다~’는 가사의 노래는 원래 우리 아버지 세대 때 유행하던 노래를 살짝 바꾼 담당 PD의 아이디어다.
▲ 김지영 내가 좀 망가지더라도 세상이 웃을 수 있다면…
이번에 맡은 미스 봉 역은 푼수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망가지는 캐릭터다. 그래도 요즘같이 살기 힘든 때 나 하나 망가져서 괴롭고 아픈 사람들이 웃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
어떤 역할이라도 소화해야 하는 것이 연기자다. 영화계에 있을 때는 슬프고 감정 세게 잡는 역 을 했다. 그런데 방송국 오니 부잣집 마나님 자리는 다 차지하고 없더라. 그래서 틈새를 공략했다. 원래 성격은 말이 없고 내성적인 편이다. 푼수 연기를 보는 친구들은 ‘괴물’이라고 부른다. 조연이지만 늘 혼신의 힘을 다한다.
▲ 여운계 대본 정확히 외우는 게 작가·동료에 대한 예의
대본은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다 외우고 정확하게 재현한다. 그게 힘들게 작품을 쓴 작가와 동료 연기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는 건 아닌데 ‘대장금’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 등 인기 있는 드라마에 많이 출연했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영화 ‘마파도’를 같이 한 김수미씨의 권유로 출연하게 됐는데 ‘LA 아리랑’ 이후 간만의 시트콤 출연이다. 정극은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 해야 하는데, 망가진 역할도 재미있다. 자기를 버려야 작품 속 인물로의 변신이 가능하다.
▲ 김해숙 맹순이 엄마역에 열정, 대본 밤새도록 읽었죠
큰 선배님들과 한데 묶이는 게 좀 부담스럽다. KBS 주말드라마 ‘진주목걸이’ 이후 연기에 목 말라 있었다. 가슴으로 우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장밋빛 인생’에서 맹순이 엄마 배역은 정말 하고 싶었다. 대본 한자 한자를 밤새도록 읽었다. 입양아 상봉을 다룬 프로그램도 녹화해 봤다.
KBS 드라마 ‘별난여자 별난남자’에서 가난한 집 장남에게 시집와 시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정작 자식들에겐 해준 게 없는 큰며느리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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