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
▶ 조화유 <리스버그, VA/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로버트 김(김채곤·65세)씨가 11월초 모국 방문을 한다고 한다. 미국 해군 정보국 문관으로 근무 중 한국과 관계되는 “군사기밀, 정치적 기밀”을 한국대사관 무관(백 모 대령)을 통해 한국 정보기관에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9년여 동안 감옥에 들어가 있다가 최근에 석방된 사람이다.
한국 언론 보도들을 종합해 보면, 김씨는 이번 모국 방문 기간동안 영웅 대접을 받을 것 같다. 인터뷰와 강연 요청이 쇄도하여 언론인들도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아주 “귀하신 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로버트 김 재단’이라는 것까지 만들 계획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로버트 김씨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싶다. 김씨를 그렇게 영웅대접해서 한국에 득 될게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한국에 큰 손실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김씨가 한국에 넘겨주었다는 정보는 한국의 국가 안보를 좌우할 정도의 정보가 아니었다. 필자는 그가 넘긴 정보 내용을 소상히는 모르지만, 몇몇 정보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정보였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 정보요원으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제랄드 리(이용수)씨는 그의 저서에서 “김씨가 열심히, 어리숙하게 공들여 빼낸 정보는 한미연합사령부의 체계를 통하면 한국 국방부가 언제든지 입수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다. 그 기밀 자료의 대부분은 한국에 나가있는 CIA가 안기부(현 국정원)에 수시로 제공하는 자료들이었고, 그 이상의 군사 정보도 한미연합사를 통해 수시로 제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미국은 중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빼돌린 김씨에게 9년이나 징역을 살렸느냐는 질문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것은 비밀 정보의 중요성 여부에 관계없이 일단 ‘비밀’로 분류된 정보를 외국에 넘겨주면 엄한 벌을 받는다는 강한 메시지를 정보 취급자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 법원이 정보의 가치가 대단하지 않다고 해서 김씨를 가볍게 처벌했다면, 비밀을 취급하는 수많은 정부 관리들이 “이 정도 정보는 유출해도 괜찮겠지”하고 스스로 정보 가치를 판단하여 많은 국가 기밀을 유출시킬 것이고, 그러다 잡히면 ‘나는 그 정보가 별 것 아닌 줄 알았다’고 변명할 것 아닌가?
로버트 김씨가 빼낸 정보가 별것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 정보의 가치에 관계없이 그가 모국을 사랑하는 마음씨는 높이 사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김씨가 미국에 충성을 맹세한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생김새나 마음은 한국 사람이지만 공식적으로 김씨는 미국인이다. 미국 시민이 미국 배반한 것을 영웅적인 것으로 칭송하는 것은 한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 한국을 배반하는 것도 괜찮다는 얘기가 되지 않는가. 본인에게는 대단히 실례가 되는 비유겠지만, 한국 방송 출연으로 유명해진 미국인 변호사 로버트 할리(1997년 한국에 귀화)씨가 만일 한국의 중요한 기밀을 미국으로 빼돌렸다고 가정할 때, 지금 로버트 김을 칭송하는 사람들은 로버트 할리도 칭송해야하는 것 아닐까? 물론 그런 경우 그들은 ‘할리를 칭송하는 것은 미국 사람들 몫이지 우리는 알 바 아니다’라고 말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할리를 비난할 도덕적 권리는 없어지게 된다.
로버트 김씨를 영웅시하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김씨가 제공한 정보가 약간의 가치가 있었다 치더라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잃는 것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다. 김씨의 어설픈 간첩행위가 우리 동포 2세들의 미국 주류 사회 진출에 엄청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동포 2세의 미 주류사회 진출은 동포들 개인 출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우리 동포 2세들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상층부로 들어가야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계속 지지하는 것은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할 것 없이 미국 사회 전반의 중요한 정책 결정 자리에 유태인 2, 3, 4세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유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2%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2%가 미국을 쥐고 흔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 살고있는 한국인은 비공식적 추산으로 2백여 만 명으로 아직은 미국 전체 인구의 1%도 안 된다. 그러나 우수한 두뇌와 능력을 가진 우리 2세들은 미국 요소 요소에 많이 진출해 있다. 머지 않아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는 자리에 오를 한인 2세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한국에서 로버트 김씨를 애국자, 영웅처럼 요란하게 떠받들면 우리 동포 2세들의 진로가 어떻게 되겠는가.
필자를 포함해서 우리 한국사람들은 작은 일에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쉽게 감격한다. 그러나, 로버트 김씨가 한국의 애국자라며 흥분하고 감격할 일은 결코 아니다. 적국의 기밀을 훔쳐온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전쟁 중에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대단한 정보를 빼온 것도 아닌 사람을 영웅화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김씨의 이번 모국 방문을 요란하게 환영하기로 기획하고 계시는 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이득 때문에 큰 것을 잃는 일은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김씨가 이번에 조용히 고국을 다녀가게 해주는 것이 김씨 본인에게도 좋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http://blog.chosun.com/wyj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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