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天道)란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사마천의 독백이다.
중국 전한(前漢)시대 인물이다. 그가 알던 인간역사는 그러므로 500~600년이 고작이다. 그 역사란 게 그런데 그렇다. 온통 인간의 어리석음과 광란으로 점철돼 있다. 정의는 도무지 실현되지 않은 채…. 그래서 나온 탄식이다.
천도란 있는 것인가. 아무리 보아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있다. 요즘 사마천이 살았다면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중동지역의 패권을 꿈꾸며 인간말살을 서슴지 않던 희대의 독재자다. 그 독재자가 마침내 인류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게 돼 하는 말이다.
사담 후세인이 다시 스폿 라이트를 받게 됐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21세기 최대 재판의 하나가 될 것 같다. 죄목이 너무 많아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가장 대표적 죄목은 반(反)인류범죄(Crime against Humanity)로, 재판결과는 인류 학살에 앞장서온 독재자 처벌에 전례가 될 수 있어서다.
얼마나 많은 이라크 국민이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살해됐을까. 재판에 앞서 던져지는 질문이다. 미국측 계산으로는 최소한 30만~100만 정도가 학살된 것으로 본다. 다른 말로 하면 전체 이라크 국민의 10% 정도가 후세인 폭정의 피해자란 이야기다.
거기다가 ‘강간실’이니, ‘고문방’이니, 말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기구를 동원해 저항세력을 탄압했다. 그뿐이 아니다. 화학무기로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인종청소도 획책했다. 그 결과 400여만의 쿠르드족이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모든 걸 합치면 기소할 죄목은 500항이 넘는다는 거다.
이 사담 후세인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스탈린, 모택동, 히틀러 등 인류 학살범의 계열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인권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무시무시한 논고다.
당연히 악마의 화신 같이 보여야 할 그다. 그런데 어쩐지 작아 보인다.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독기였나, 위엄이었나. 잔뜩 힘이 들어간 듯했던 표정이 사라진 탓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홈리스 피플을 연상시킬 정도로 초췌해졌으니.
그 탓만은 아니다. 그 보다는 ‘경애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어른거려서다. ‘김정일이 웃고 있다’- 언제 나온 타임지 커버 제목이었던가. 한반도의 남반부를 향해, 또 멀리 사담을 바라보며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이 사담의 모습에 투영돼서다.
가히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핵뿐이 아니다. 광폭정치라고 했나. 말 그대로 ‘광폭’(廣幅)이란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치하에서 학살된 인명도 그렇다.
최소한 300여만으로 집계된다. 정치적 고문, 숙청 등으로 100만을 학살했다. 거기다가 식량을 통치무기로 사용해 200여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대학살에 관한 한 사실상 전 세계 1위는 김정일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다.
제임스 베커 같은 전문가의 주장으로 북한의 사이즈를 감안할 때 자국민 학살 부문에서 김정일은 스탈린, 모택동도 능가하는 ‘세계적인, 엄청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체제는 그러면 본질에 있어 어떤 체제일까. 병영국가다. 노예국가(slave state)다. 여러 정의가 나온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권존중이라는 시대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수령절대주의의 특권적 왕조체제다.
전체 인민이 한 통치자를 섬기기 위해 창조된 체제다. 수령에 대한 절대충성만 요구되는 체제라는 것이다. 이 체제에서 인민대중은 항상 공포에 시달린다. 조울증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를 선정하면 김정일이 항상 1위를 차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마디로 ‘악몽의 체제’다. 굶어 죽는 게 가혹한 정치적 압제보다 차라리 낫다. 들려오는 탄식이다. 또한 공개처형에, 유아살해가 자행되고, 생체실험이 저질러진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악몽의 체제’가 아닌 ‘악령(惡靈)의 체제’다. 또 다른 정의다. 그 죽음의 땅에서 탈출해 그 체제 전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한 인사의 말이다. 보다 정확한 정의 같다. 마치 유령에라도 홀려 자체의 존재 근거까지 흔들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날 위기상황을 예언한 것으로 들려서다.
그 유령은 망상(妄想)의 유령이고, 거짓의 유령이다. 민족공조란 말로 위장된 이 유령의 근원지는 다름 아니다. 수령절대주의란 우상으로 덧입혀진 김정일이다. 그 우상 숭배자들이 날뛰면서 한국은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 우상이 깨어질 날은 언제일까. 사담 후세인의 재판을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다. 도대체 언제인가.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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