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글렌데일에서 열린 한 청소년 축구경기는 여느 때와 좀 달랐다. 공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조용했다. 평소 귀따갑게 고함치던 코치는 입을 다문채 마치 무언극을 하는 배우처럼 손짓, 발짓, 온몸을 동원한 바디 랭귀지로 혼란스런 표정의 어린 선수들에게 사인을 보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응원석의 부모들도 터져나오려는 환성과 탄식을 두손으로 가까스로 막고 있었다. 미청소년축구협회의 ‘침묵의 축구’ 경기였다. 절대로 일을 열어 말해서는 안되며 박수는 칠 수 있지만 환호의 함성은 안된다는 것이 침묵 경기의 룰이었다. 다혈질 부모와 코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아이들이 어른들의 방해없이 최선의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축구협회가 요즘 행하고 있는 일종의 ‘매너 실험’인 셈이다. 어색하고 이상한 경기였지만 그만큼 어른들의 거친 매너가 아이들 경기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극성부모들의 야유와 폭언, 말다툼과 몸싸움은 방치하기 힘든 정도까지 왔다. 몇 년전 샌디에고 인근에선 양 팀 응원가족 간의 시비가 커지면서 30여명의 부모와 코치들이 뒤엉겨 싸운 끝에 3명이 체포되었으며, 노스리지 리틀리그 야구팀의 한 부모는 자기 아들을 벤치에 앉혀 놓은 코치에게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가 45일 징역형에 처해졌다. 매서추세츠주에선 학키경기중 한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살인 사건까지 발생했다. 스포츠맨십은 뒷전으로 밀려 아예 실종되고 승부에 대한 필사적인 집착만이 살벌하게 드러나고 있다.
침묵의 축구보다 하루 앞 선 지난 7일이 영국에선 ‘예절의 날’이었다. 한 때 전세계에 예의범절의 롤모델로 통했던 이른바 신사의 나라 영국이 이젠 예절의 날을 따로 정해 캠페인을 벌여야 할 만큼 사회전반에 확산된 무례함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블레어 수상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의 자랑인 ‘존중의 문화’를 되찾자고 호소중이고 의회가 경찰에게 특별단속권을 부여한 지도 벌써 6년이 되었다. 행인들을 괴롭히는 틴에이저부터 앞마당 손질을 게을리한 주택소유주까지 수천명을 반사회적 행동 특별법을 적용해 적발했으나 별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남가주 각급 법정에서 자주 내려지는 경범 판결중 하나는 ‘분노관리’ 상담이다.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진 불평 고객과 불친절 종업원, 한밤중 자동차 알람소리가 시끄럽다고 남의 차에 총격을 가한 회사원등 법정이 상담을 받으라고 명령한 이런 다혈질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지난 1년간 한 분노관리 클리닉은 이들의 상담료로 1백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예방교육 상담으로 워낙 수강자가 많은 가정폭력 다음으로 현재 한창 뜨고 있는 게 바로 이 분노관리다. “남편이 집에 들어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고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아내를 때리면 가정폭력 상담을 받아야 하고 다른 남자를 때리면 분노관리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요즘 돈을 잘 벌어 기분이 좋은 클리닉에서 들려주는 우스개 비유다.
침묵의 축구경기, 영국의 예절의 날, 남가주에서 한창 뜨는 분노관리 상담 비즈니스 - 이 세가지 에피소드가 하나의 현상을 이야기 해준다. 매너를 던져버린 무례한 사회다. 고약한 몇몇 사람이 아니라 이젠 너나없이 대다수가 무례를 당당히 행하고 있다. 무례한 행동이 우리 일상 모든 부분에 별 저항도 받지 않고 스며들어 자리잡은 것이다.
점점 무례해지는 사회에 대한 각성이나 원인분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능력은 부족한데 주위의 화려한 소비주의가 기대치를 한껏 높여주니 1인다역으로 최선을 다해도 상대적인 빈곤감은 극단의 스트레스로 쌓이게 된다. 왜 나는 안되나, 나라고 못할 것 없다, 왜 나를 방해하나, 너 때문에 왜 내가 불편을 겪어야 하나. 분노가 폭발한다. 아이의 코치에게 주먹질하는 분노, 난폭하게 운전하는 거리의 분노, 하늘에서 폭발하는 기내의 분노, 왜 나를 푸대접 하냐며 무차별 사격을 가하는 직장의 분노… 무례는 분노를 사고 분노가 폭발하면 무례를 저지른다. 심하면 폭력으로 치닫는다.
익명뒤에 숨어서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인터넷의 세상은 거친 용어의 인신공격을 예사롭게 하고 권위에 대한 존경을 죽여버렸다. 경륜에 앞서 부를 먼저 손에 쥔 닷컴 기업가들은 예의보다는 경쟁을, 전통보다는 혁신을 높이 사고 눈부신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때와 장소에 대한 규범을 풀어버렸다. 무엇이든 내가 필요하면 내가 하고 싶을 때 나혼자 충분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젊음만이 미덕인 시대가 이들의 이기주의가 빚는 무례를 관대하게 허용하고 있다.
이 과도기의 와중에서 매너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무모한 선동이 용기있는 개혁처럼 보이고 안하무인의 공격이 당당한 솔직함으로 추켜세워지는 시대다. 매너가 미덕이 아닌 시대다. 무자비한 독선이 소신있는 박력으로 통하고 배려와 예의는 약자의 소심함으로 경시되는 사회다. 품격이 낮은 사회다. 이런 시대, 이런 사회에 대한 우려와 대책은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가져야할 주제라고 생각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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