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정체를 알기 힘든 ‘대통령의 비밀 후보’라고 불렀고 월스트릿저널은 ‘텍사스 미스터리’라고 표현했으며 USA투데이는 부시가 존 로버츠보다 ‘더 알수없는 후보’를 택한 이유를 궁금해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선이 아닌 선택’이라고, LA타임스는 ‘불가사의한 선택’이라고 꼬집었으며 ‘백지 후보’라고 비아냥댄 보스턴 글로브는 지난 역대 후보중 ‘가장 자격이 떨어진다’고 깎아 내렸다. 은퇴하는 샌드라 데이 오코너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며칠전 부시대통령이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을 지명했을 때의 첫 반응은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다.
가장 큰 이유는 그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연방대법원은 엊그제 신임 로버츠 대법원장을 맞은후 8명 대법관이 보수와 진보로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마지막 1명, 스윙보트를 행사할 새 대법관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법철학을 갖고 어떤 판결을 내릴 판사가 들어 올 것인가 - 오코너의 은퇴 발표이후 지난 석달동안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은 계속 부시에게 압력을 행사하며 별러왔었다. 그런데 판사출신이 아닌 마이어스가 지명된 것이다. 판결 기록이 없으니 그가 낙태를 지지하는지 소수계 우대정책을 반대하는지, 앞으로 어떤 판사가 될 지 예측할 근거가 없다.
당사자인 마이어스에 대해 모르는 것과 비례, 미스터리 후보를 내세운 부시의 전략에 대한 뒷얘기는 무성하다. 그동안 민주당은 강경보수 후보를 지명하면 필리버스터 작전으로 유혈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해왔다. 이라크전과 카트리나 후폭풍에 지지율 폭락으로 비틀거리는 부시가 대법관 인준을 둘러싸고 민주당과의 전면전을 치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이어스는 법정기록이 없으니 반대할 근거도 적어 인준이 무난할 것이고, 또 대법원에도 과격한 이념주의자보다는 믿을만한 측근을 심어두는게 더 낫겠다는 백악관의 계산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전략이 과히 빗나가지 않아 일단 상원에서는 대체로 호의적인 분위기다. 돌발변수가 없는한 인준도 확실해 보인다.
마이어스는 텍사스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공한, 뼈 속까지 텍산임을 자부하는 강인한 여성이다. 하이스쿨 땐 별로 나대지 않는 조용한 금발소녀였고 남부감리교대학 1학년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엔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아버지 사망시 재정관계등을 처리해주는 변호사를 지켜보며 수학교사의 꿈을 접고 법대로 진학했다.
무섭게 공부해 최우등으로 졸업했으나 차별에 부딪쳐 ‘여성 변호사’로 취직한 것은 2년이 넘어서였다. 달라스의 유서깊은 대형 로펌의 첫 여성 변호사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에겐 ‘첫번째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더해졌다. 30대중반에 이 로펌의 첫 여성대표가 되었으며 달라스 변호사협회의 첫 여성회장, 텍사스주 변호사협회의 첫 여성회장을 역임했다. 달라스 시의원으로 당선되어 지역정치도 경험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디즈니회사등의 소송을 맡아 유능한 변호사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부시가 마이어스를 처음 만난 것은 1993년 텍사스 주지사에 출마했을 때였다. 부시 자신의 과거검증까지 온갖 민감한 사안을 처리해 줄 개인변호사가 필요했다. 몇명을 인터뷰했으나 마땅치 않았을 때 누군가가 조용하면서 똑똑한 여성변호사를 추천했다.
‘깊은 신앙심’을 공유한 두사람의 코드는 딱 들어맞았고 이때부터 12년간 마이어스는 주정부와 백악관으로 옮겨가며 ‘숭배하는’ 보스의 충실한 참모로 자리를 굳혔다. ‘해리’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는 그는 크로포드목장에서 부시와 함께 잡목을 쳐내며 휴가를 보내는 최측근 중 한명이기도 하다.
판사의 경험이 없다는 지적이나 정실인사라는 비난은 전례가 있는 만큼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대 대법관 중 판사경험이 없거나 대통령의 참모였던 경우가 수십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온건보수로 알려진 마이어스에 대한 반발은 진보쪽보다는 보수쪽에서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확실한 강경보수 새 대법관을 들여보내 이번 기회에 연방대법원의 보수화를 정착시키려는게 그들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결단력도 없고 여성이나 부시 측근이 아니었으면 거론조차 못 될만큼 실력도 없다’는 정면 험담도 보수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해리’에 대한 부시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반발하는 극우파들에게 ‘20년 후에도 변치않을 확실한 보수’라고 장담한다. 그 장담이 소수계인 우리는 오히려 우려된다. 그보다는 ‘논쟁적 이슈에 균형을 잡는 중도 판사가 될 것’이라는 UC버클리 존 유교수의 예상에 희망을 건다. 그가 오코너 판사 못지않게 실용적이고 상식적인 대법관으로 정착해 대법원을 소수계에게도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이어스 법정’으로 만들어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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