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묘지가 흥겨운 잔치마당?
음력 8월 15일인 이번 주 일요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가운데 하나인 추석이다. 추석날은 차례를 올리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송편을 먹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조상의 묘 자리를 돌보는 성묘에 있다. 우리들에게 있어 묘지는 곧 두려움이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복을 한 원한 맺힌 처녀귀신이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머리 쭈뼛 서는 공포. 그래서 묘지를 들먹거리는 것 자체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금기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죽음을 삶과 딱 부러지게 분리하며 살지 않으셨다. 제주 지방 살림집 앞마당에, 돌아가신 부모의 묘를 버젓이 둔 걸 보며 죽음이 삶의 또 다른 과정일 뿐임을 가슴으로 이해하셨던 조상들의 예지를 엿보았다.
사람은 떠나도 이름은 남는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조필제 박사의 묘비명.
“한인가족 많이 오세요”
올외국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공포 영화에서는 온갖 기괴한 모습의 귀신들이 거하는 곳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여행 중 지나쳤던 유럽의 묘지는 항상 향기롭고 화려한 꽃들이 만발하며 고풍스런 십자가 석조 장식이 멋스러움을 더하는 장소였다.
슈베르트와 베토벤이 나란히 묻혀있는 비엔나의 중앙묘지,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르가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 에밀 졸라와 헥터 베를리오즈가 묻혀 있는 몽마르트르 묘지, 짐 모리슨, 프레데리크 쇼팽이 쉬고 있는 페르 라셰르 묘지는 유럽 여행 시 꼭 들려야 할 명소들이다.
한인들에게도 익숙한 로즈힐스 메모리얼 팍(Rose Hills Memorial Park) 역시 남가주 전체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뭍은 기억이 있는 이들에게조차도 로즈힐은 지는 해를 바라보기에도, 산책을 하기에도 아주 좋은 장소.
이름에 걸맞게 이곳의 로즈 가든은 LA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정원 가운데 하나다. 입구의 장미 정원에서는 색색의 장미꽃 사이를 산책하며 진한 향기에 취한 듯 행복한 표정을 짓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망우리 공동묘지 근처의 집값은 다른 지역에 비해 쌌지만 미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항상 깨끗하게 관리돼 있고 공기가 좋은 묘지 근처는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택지 가운데 하나. 주택 가격도 같은 동네의 그 어느 곳보다 높다. 우리들의 인식 체계로는 이해가 쉽지 않지만 로즈힐스 공원의 아름다운 스카이로즈 채플에서는 결혼식도 자주 열린다.
120년의 역사를 지닌 로즈힐스 메모리얼 공원은 1,550에이커의 드넓은 대지에 들어선, 세계에서 가장 큰 묘지, 알링턴 국립묘지보다 그 규모가 크다. 로즈힐스에는 천국으로 향하는 문처럼 아름답고 찬란한 스카이로즈 채플 외 5개의 채플이 들어서 있다.
출입문 역시 게이트 1부터 시작해 20개나 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60-70년 정도 더 망자가 누울 자리가 있다는 로즈힐스 메모리얼 공원에는 아직도 매일 35-40명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함께 누군가는 또 본래 우리가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곳에 들어오는 망자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은 50세를 채 채우지 못한 젊은 나이지요. 한 13년 정도 근무를 하다 보니 저에게 묘 자리를 구입하셨던 분들의 장례식을 대하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가는 길이지만 때로는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한인 고객을 담당하고 있는 박철홍씨의 말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순간도 삶의 또 다른 일부분이라는 예지를 그는 일상처럼 대하는 장례를 통해 깨달았다.
장례를 치른 지 오래지 않은 묘지에는 항상 꽃들이 화사하게 꽂혀 있다.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도 멀어진다는 격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묘비 앞에 꽃다발이 꽂히는 횟수는 점차 줄어든다. “세상 떠난 아내를 10년째 가슴에 품고 사는 한 한국 남자 분을 봤어요. 매주말이면 이동용 의자와 파라솔을 가지고 와 아내의 무덤을 다듬으며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가시는 걸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한인 담당 직원 헬렌 문씨가 죽음을 넘어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만큼 묘지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납골당, 돌무덤, 가족 무덤, 바닥에 비 하나밖에 없는 소박한 묘도 있지만 그리스 식 기둥과 대리석 비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묘는 고대 왕릉을 방불케 할 정도. 묘지 가격도 2,000-100만달러까지 천차만별이다. 창문을 향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비싸다니 남으로 창을 내겠다는 시인의 시 구절은 저승에서 역시 적용되는 건지.
로즈힐스에는 특히 다양한 커뮤니티의 무덤들이 눈길을 끈다. 정교회 교도가 대부분인 그리스인들의 커뮤니티는 돔 양식의 정교회 성당을 중심으로 묘지들이 들어서 있고, 기와지붕이 처연히 내려앉은 명부전을 한 가운데 둔 중국인 커뮤니티의 무덤도 정겨워 보인다. 약 8년 전, 중국인 커뮤니티의 대표들이 2에이커의 부지를 구입해 마련했다는 그들의 커뮤니티 묘지를 보며 단청에 기와선이 아름다운 정자 하나 올리고 한국인 커뮤니티 묘지를 지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20년 간, 추석을 앞둔 이맘때쯤이면 나성영락교회의 교인을 비롯한 한인 300여명이 로즈힐스를 찾아 세상 떠난 가족들을 추모하며 예배를 드려왔다. 로즈힐스는 약 30년 전부터 수많은 한인들에게 있어 지상 최후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추석 날 성묘를 위해 로즈힐스 메모리얼 공원에서는 내일 오후 한인 가족들을 초청해 ‘추석맞이 가족 큰 잔치’를 마련한다. 행사에서는 송편과 함께 식사도 무료로 제공되고 각종 게임과 공연도 즐길 수 있으며 푸짐한 경품과 기념품 증정, 무료 진료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될 예정이다. 아름다운 경관을 눈에 한껏 들여놓으며 온 가족이 추석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행사에 많은 한인들이 참가했으면 좋겠다.
LA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정원 가운데 하나 인 로즈힐스 메모리얼 공원의 로즈 가든.
■행사 안내
▲일시와 장소: 9월 17일(토) 정오-오후 3시. 로즈힐스 공원 스카이로즈 채플 앞 잔디밭.
▲스케줄:
쪾오전 11시 30분: LA 한남 체인 앞과 가든 그로브 가주 마켓 앞, 두 곳에서 버스 무료 픽업. (1차 출발: 오전 11시 30분. 2차 출발: 오후 12시 30분)
쪾오후 12시 30분: 개회 인사말.
쪾오후 12시 30분-1시 30분: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추석 떡과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
쪾오후 1시 30분-3시: 휠 오브 포천(Wheel of Fortune) 경품 행사, 박광칠 한의원에서 협찬하는 무료 검진 및 침 시술.
쪾오후 1시 30분-2시: 할아버지들의 제기차기 대회.
쪾오후 2시-2시 30분: 판소리와 국악 한마당.
쪾오후 2시 30분-3시: 할머니들의 링 던지기 게임.
쪾오후 3시-3시 30분: 경품 추첨과 기념품 증정.
▲준비물: 개인 돗자리.
▲주의 사항: 공원 내에서는 시속 25마일 이하로 저속 운전한다. 애완동물의 출입은 금지돼 있다.
▲로즈힐스 메모리얼 공원 주소: 3888 S. Workman Mill Rd. Whittier, CA 90601.
▲가는 길: 60번 프리웨이를 타고 Pomona 방향으로 가다가 Peck Road에서 내리면 이 길이 자동적으로 Workman Mill Road가 된다. LA에서 약 25분 거리.
▲문의: 로즈힐스 한인 담당 (877) 767-8850. 또는 센스 기획 (213) 385-3303.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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