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무랄 데가 별로 없다. 하버드법대 출신으로 최고의 지성을 갖춘 엘리트중의 엘리트다. 겸손하고 포용력도 있어 누구에게나 호감을 준다. 외모도 단정하고 경력도 화려한 백만장자다. 흔치않은 연방대법원 전담 변호사로 활약했으며 2년 전 연방항소법원의 판사로 인준받은 유능한 법관이다. 존 로버츠에 대해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러므로 이번주초 시작된 연방상원의 대법원장 인준 청문회는 그의 법관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에 대한 자격 심사가 아니다. 관심사는 법을 해석하는 그의 철학이다. ‘존 로버츠는 누구인가’라는 과제를 풀어가며 이미 입증된 그의 두뇌가 아닌, 우리가 아직 알 지 못하는 그의 가슴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그의 인준은 거의 확실하다. 200년만에 최연소인 이 50세 대법원장의 손에 앞으로 30여년, 다음 세대까지 우리의 기본 인권이 좌우될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적다. 청문회 첫날 민주당의 찰스 슈머 상원의원도 이점을 우려했다. “우리는 당신의 10%밖에는 아직 못보았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배를 침몰시키는 것은 수면아래 잠겨 보이지 않는 빙산이다…”
‘존 로버츠의 모든 것’을 찾아내려는 이번 청문회의 질문은 “대법원장으로서의 당신은 미국인으로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것인가, 확대할 것인가”로 집약할 수 있다. 낙태합법화를 뒤집는 판결을 내릴 것인가, 사생활보호권에 제한을 줄 것인가, 환경과 소수민 우대·민권을 보호하려는 의회의 권한에 제동을 걸 것인가 등에 대한 의문이다. 명백한 사회정의로 여겨지는 이슈들인데도 확실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 공개된 그의 법정 기록 때문이다.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학생시절부터 보수기질이 철저했던 로버츠는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시절 행정부 변호사로 활동하며 낙태 합법화 반대등 상당히 보수적 입장을 여러차례 표명했다.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며 보수주의 새 시대의 새벽이 열리는 것을 목격한 26세의 젊은 법관 존 로버츠는 자신이 다룬 케이스마다 민권, 낙태, 성차별, 정교분리등에 관한 현행법을 재고해야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낙태, 동성애, 피임등을 범죄시했고, 미자격자를 채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어퍼머티브 액션에 반대했으며 여성의 사생활보호에 대해 ‘소위 그 권리라는 것’이라는 비하 발언도 서슴치 않 았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를 지켜보며 그가 보수주의 사회운동가가 아닌가하는 우려는 일단 접어도 될 것 같다. 26세의 젊은 변호사 로버츠와 달리 50세의 판사 로버츠는 법정의 겸허와 법체제의 안정을 강조한다. 지난 기록을 추궁하는 질문에 당시엔 너무 젊었었고 변호사로 공화당 행정부의 의견을 대변한 것이지 자신의 신념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특히 여성 평등권을 경시하는게 아니냐는 의혹에는 “내 아내가 변호사고 나의 세 누이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내 딸이 어떤 경우에든 차별당하는 것을 참지않을 것”이라며 강력히 부인했다.
청문회는 진보와 보수의 ‘낙태전쟁’으로 예고되어 왔었다. 그러나 로버츠의 답변은 개전 자체를 막아버렸다. 그는 판례를 존중한다는 말로 진보 쪽을 안심시켰고 판례란 또 한편 뒤집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덧붙여 보수 쪽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낙태 합법화 판례를 인정하여 보수를 실망시킨 것 못지않게 낙태 자체에 대한 견해 표명은 거부해 진보 쪽을 불안하게 했다. 낙태권을 지지한다는 답변은 안한채 합법화 판결은 쉽게 뒤집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만 남긴 것이다. 민권이나 의회 권한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구체적 답변은 거부하고 원론을 강조하며 말을 아꼈다.
예감이 나쁘지 않다. 아무 것도 구체적으로 약속한 것은 없지만 그의 신중한 답변들은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한 분열의 시대에서 화합을 이끌어내겠다는 암시로 들리기 때문 이다.
그의 보수사상이나 법철학은 오랜 세월 깊게 생각하며 다져왔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들 한다. 대법원 입성이후 보수에서 진보 쪽으로 기운 데이빗 수터나 샌드라 오코너판사와는 달리 그는 진보로 기울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차츰 조금쯤은 바뀌기를 바란다. 뿌리는 보수이지만 그가 ‘이 사회의 마이너리티, 불우한 소외계층,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대법원장’이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약자들의 분노가 표출된 카트리나 이후의 미국사회를 보며 그런 기대가 더욱 커져 간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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