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를 수장시킨 제방 붕괴의 위험성은 그동안 여러 차례 경고되어왔다. 그런데도 지난주 부시 대통령은 “제방이 무너질 줄 누군들 예상했겠느냐”고 가볍게 말하는 바람에 계속 말꼬리를 잡히고 있다. 정작 부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지금 자신에게 정면으로 불어닥치고 있는 ‘카트리나 후폭풍’일 것이다. 국가적 위기 때마다 정부에 대한 비난도, 이념이나 정치도 일단 접어두고 사태수습을 위해 한 목소리로 단결을 촉구하던 미국의 여론이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 ‘예고된 재난’에 대한 정부의 늑장 부실대응이 거센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주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전 미국인의 눈길을 잡아 끈 뉴올리언스 인근 한 지방 관리의 울부짖음은 쉽게 잊혀질 수 있는게 아니었다. 비상관리를 담당한 한 요원의 노모가 고립된 양로병원에서 죽어간 상황을 전하며 이 중년의 남성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구조 업무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들에게 전화를 했어요. ‘얘야, 너 나 데리러 올 수 있니? 누가 올 거니?’ ‘네, 어머니, 누가 모시러 갈 거예요. 화요일에 가서 구해드릴 거예요’ ‘수요일에 갈 거예요’ ‘목요일에 꼭 갑니다’ ‘금요일에 간데요’ 그 어머니는 금요일 밤에 익사했습니다…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제발 그놈의 기자회견들은 집어치우고 구조대 좀 보내주세요”
연방정부의 구조는 허리케인이 몰아닥친지 사흘이 지나서야 현장에 투입되었다. 여론의 분노는 사소하고 감정적인데서 출발했다. 참사발생 며칠이 지났는데도 대통령과 각료들은 ‘휴가중’이었다. 연방재해관리청(FEMA)의 책임자는 사태발생 사흘이 지나도록 이재민을 수용한 컨벤션센터에 식수공급도 안된 절박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전국의 국민들이 카트리나의 살인적 위력에 경악하고 있는데도 행정부는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부유층 백인지역이 아닌 가난한 흑인지역의 참사여서 이렇게 무관심하냐는 항의가 안나올 수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못한 대통령은 참혹한 현장 부근에서 이재민의 고통을 공감하는 대신 뉴올리언스와 얽힌 자신의 옛 파티 추억을 웃으며 털어놓았다. 전혀 제 구실을 못해 원성이 자자한 FEMA 청장에게 “정말 잘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치하했다. 대통령의 경솔한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방정부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즉각 책임을 인정하는 대신 “재난시에는 연방과 지역정부간의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변명했다. 국민의 생명과 정부권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대통령이 사태파악을 정확히 못한채 비틀거리는 동안 전국의 미디어는 아프리카 제3세계보다 한층 참혹한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수천명이 초만원상태인 수용소엔 식수조차 공급되지 않았고 거리는 무법천지, 고립된 양로원에서는 휠체어에 앉은 노인들이 방치된채 죽어갔다. 관료주의는 걸프연안에 정박중이던 훌륭한 시설의 의료군함도 활용하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식수를 가득싣고 달려온 민간기업의 트럭도 외면했다. 뉴올리언스만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정부의 대처능력에 좌절하며 미국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모로 분석된 원인은 하나로 귀착된다 - 이라크전에 재원과 인력을 올인하는 바람에 국내의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 정부가 테러위협에 몰두한 나머지 자연재난 대비를 소홀히 해 안 죽어도 될 주민들이 너무 많이 죽은 것이다. 9.11이후 부시 정책의 기저는 테러대비였다. 국토안보부가 신설되고 미국민들은 일상의 불편을 감수하며 적극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 효율성은 첫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만약 이번 카트리나가 또 다른 테러공격등 국가안보위기에 대한 리허설이었다면 부시행정부는 테스트에 실패한 것이다. 가뜩이나 이라크전으로 하락한 부시의 지지도가 곤두박질하면서 재임2기의 리더십이 과연 제 힘을 발휘할 것인지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훗날 부시 대통령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고 당장 내년 중간선거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
총체적 실패로 비판받고 있는 카트리나 초기의 대응이 물론 부시만의 책임은 아니다. 연방정부 못지않게 주나 시등 지역정부의 실책도 크다. 그러나 위기에서 국민이 바라보는 것은 대통령이다. 시련을 딛고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지도자다.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한편으로 강력하게 재기를 리드해나가는 총사령관의 이미지다. 실물보다 더 크게 더 위대한 모습으로 국민을 감싸 안아줄 수 있는 리더십을 목말라한다.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실무형 리더인 부시는 착실히 복구를 진행시키면서 악화된 여론을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리더가 필요했을 때 따뜻하지도, 강력하지도 못했던 대통령의 실망스런 모습은 참혹한 뉴올리언스의 잔해와 함께 당분간 미국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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