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대통령은 끝내 신디 시핸과의 면담을 거부했다.
부시가 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 앞에 텐트를 치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신디는 지난해 이라크에서 전사한 병사의 어머니다. 벌써 3주째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자신의 아들이 희생된 전쟁에 대해 대통령의 좀더 솔직하고 책임있는, 진지한 대답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너무나 사랑했던 아들을 잃은후 반전론자가 된 신디의 주장이나 방법에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미군 즉각 철수나 대통령 탄핵등 과격주장에는 반대쪽이 오히려 많다. 그러나 반대자들도 왜 대통령이 처음부터 신디를 만나주지 않았는지는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3주전 신디는 그저 상처입은 한 어머니였다. 반전운동가로 외면하기 전에 목장밖으로 걸어나와 나라에 아들 바친 한 어머니를 대통령으로서 따뜻하게 위로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이제는 늦었다. 일이 너무 커져 버린 것이다. 부시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균형잡힌 내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3천달러짜리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즐기는 동안 신디는 반전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라 버린 것이다. 뉴스가 고갈되는 8월이어서 미디어의 각광이 좀 과했을 수도 있지만 부시 자신의 결정인지, 백악관 참모들의 판단인지는 몰라도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호소를 너무 과소평가한 탓도 클 것이다.
이라크전 지지율은 38%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62%가 신디처럼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전 논란이 재연된 정가에서도 명쾌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부시의 ‘철군 불가’ 입장도 여전히 강경하지만 신디를 내세운 반전운동 역시 인기 연예인들이 가세하며 확산되어가고 있다. 1965년 존슨대통령의 텍사스 목장 앞에 모인 월남전 반대 시위자는 20여명 남짓이었으나 불과 몇 년 안돼 그들이 불씨가 된 반전불길은 미 전국을 휩쓸었었다.
그동안 이라크전은 대다수 미국인에겐 잊혀진 전쟁이었다. 대통령도 5주간의 휴가를 즐길 정도로 한가로운 미국 땅에선 일반인의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아온 ‘군인, 그들만의 전쟁’이었다. 지난 2년반동안 1,860여명이 전사했지만 이들의 말없는 귀환조차 엄격한 뉴스통제로 일반인의 관심반경엔 별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한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성준, 이범록, 최민수, 김인철, 데니스 김, 브래드 셔, 이범열, 김정진, 그리고 제임스 서…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벌써 9명에 달하는 이라크-아프간전 한인 전몰장병들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가슴에 묻힌 하나하나 아픈 이름들이다. 신디의 시위는 이런 이라크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아, 우린 지금 전시 중이지”라는 깨달음이다.
신디를 크로퍼드로 달려가게 한 직접적인 동기는 8월초 이라크에서 14명의 미 해병들이 전사했을 때 나온 부시의 발언이었다. “장병들은 숭고한 목적 때문에 숨졌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기릴 것이다”라고 대통령은 말했었다. ‘내 아들의 죽음을, 또다른 젊은이들의 죽음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게 할 수는 없다’고 신디는 생각했다.
두 달전 아프간에서 전사한 제임스 서 하사의 아버지 서능수씨도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난 그 어머니의 심정을 압니다. 아니, 안다기보다 똑같이 느낍니다. 이라크전 개전때 대부분 미국인들이 지지를 표했지만 9.11 테러 희생자의 많은 유가족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들의 심정을 이제는 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야 난 그 가족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까요? 반전주의라든지 그런 말은 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의 질서도 좋지만 이런 아픔을 또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사자 가족들이 왜 평화를 외치겠습니까. 이런 고통을 겪으며 얻는 게 무엇입니까. 시위하는 그 어머니도 견디기 힘든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아픔도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왜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지 이젠 알 듯 합니다. 아직도 밖에 나가 아들 비슷한 젊은이가 지나가면 내 자식이 아닌줄 알면서도 ‘혹시나’하여 앞에 가서 그 얼굴을 보고 싶어집니다. 그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 아이의 옷걸이만 보아도 웃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 상실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담담하게 시작되었던 전화 인터뷰는 그의 목이 메어 오면서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만 끊자고 그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가 전화선 저쪽에 있어 못본다는 사실도 잊은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목이 메어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멀리 하와이에서 흘리는 한 아버지의 눈물이 전화선을 타고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아프게 느껴졌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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