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태어나 처음 배우는 말은 ‘엄마’이지만 자라면서 처음으로 아프게 실감하는 개념은 “It`s not fair”라고 한다. 내 탓이든 아니든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부터 생의 곳곳에서 깨닫게 될 때마다 사람들은 부딪쳐 극복하기도 하고, 체념하며 살맛 안나는 세상을 한탄하기도 한다. 지난주 막 내린 월트디즈니사의 소송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후자 쪽이 아닐까 싶다.
상상해 보라. 14개월 동안 근무하며 보스와 사사건건 충돌하다 해고되면서 쫓겨나는 조건으로 1억3천만달러의 퇴직금을 받는다.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보스에게 충성하며 수십년 근무하다 빈손으로 정리해고 당하는 보통 사람들에겐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이 꿈같은 스토리는 정확히 10년전 시작되었다. 95년 8월 ‘디즈니사의 제왕’ 마이클 아이즈너회장이 ‘할리웃 영화업계의 제왕’ 마이클 오비츠를 사장으로 영입하면서 부터다. 오비츠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시 할리웃의 대부였다. 소니의 컬럼비아 매입등 굵직한 거래들을 성공시켰고 최대 연예에이전시를 경영하며 탐 크루즈,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등 톱스타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오비츠 영입 소식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던 당시의 디즈니사엔 장마끝 소나기같은 낭보였다. 미디어의 각광 속에 결정이 발표됐고 디즈니의 주가가 폭등했다.
그러나 한 왕국내 두 제왕의 공존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함께 가족여행을 다니고 밤새워 병상을 지킬 정도로 ‘베스트 프렌드’였던 두 명의 마이클도 곧 이 사실을 깨달았다. 둘 다 자신의 유능함을 120% 믿는 만큼 똑같이 독선적이고 질세라 오만했다. 사사건건 부딪쳤다. 화가 난 아이즈너가 오비츠를 전격해고한 것이 96년 12월이었다. 고분고분 물러날 오비츠가 아니었다. 스카웃되어 올 때 받아 둔 안전망을 내밀었다. 계약기간 5년 이전에 해고할 경우 현금과 스탁옵션을 합해 1억3천만달러의 퇴직금을 약속한 계약서였다. 체면은 구겼지만 엄청난 보상금은 챙긴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디즈니 주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사회가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충실히 해야 할 의무이행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97년 1월 접수된 이 소송은 8년을 끌어오며 갖가지 화제를 뿌렸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두 거물이 진흙밭의 개처럼 서로에게 으르렁대는 싸움을 미디어들은 신나게 중계했고 사람들은 영화보듯 흥미롭게 구경했다. 아이즈너는 오비츠를 ‘정신병자’로 매도했고 오비츠는 ‘배신자 아이즈너’가 자신을 ‘암 종양처럼 잘라내 버렸다’고 분개했다. 사무실 새단장에 회사돈 2백만달러를 써버린 오비츠의 낭비벽도 드러났고 자기 개인변호사와 아이들 학교 교장까지 이사로 들여앉혀 이사회를 거수기로 만들어버린 아이즈너의 권한 남용도 샅샅이 공개되었다.
‘아름다운 마법의 왕국’ 디즈니의 이미지는 ‘추한 권력싸움 흥청망청 돈잔치’로 추락해 버렸지만 결국 재판은 지난주 이사회 측의 승소로 막을 내렸다. 디즈니사의 그릇된 경영행태가 엄청난 낭비를 초래했다는 질책은 받았으나 법적 처벌대상은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하긴 최근 몇 년 실적부진으로 사임하면서도 엄청난 보상을 챙긴 최고 경영진은 하나둘이 아니다. 지난 6월 모건스탠리에서 쫓겨난 필립 퍼설도 1억1천3백만달러를 챙겼고 뉴욕증권거래소의 딕 그라소도 재작년 축출되기 직전 1억4천만달러를 받았다.
최고 경영자(CEO)와 일반 종업원의 임금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도 새삼스런 사실은 아니다. 문제는 이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91년엔 일반직원 평균봉급의 140배였던 CEO의 보수가 작년엔 500배로 늘어났다. CEO의 연평균보수는 1,030만달러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이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류층이 너무 까마득하게 앞서가는 바람에 뒤처진 다수에게는 보이지조차 않는 것이다’라는 뉴욕타임스의 지난 봄 특집 내용은 과장이 아니다.
디즈니 주주들의 반란이 아주 실패한 것은 아니다. 엔론사태 이후 기업의 회계부정이 철저히 파헤쳐지듯 디즈니 소송을 계기로 과도한 퇴직금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주주총회는 엄청난 손실의 ‘주범’인 아이즈너회장을 다음달 반강제로 은퇴시키는데도 성공했다. 그런데, 아이즈너의 퇴직금은 얼마나 될까. 3억7천만달러 - 불공평을 운운하며 비교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도 없는 동화속 ‘마법의 왕국’에서나 가능할 돈벼락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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