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방송의 간판 앵커 피터 제닝스의 사망은 때 이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죽음이 가까운 친척만이 아니라 지인들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동안에는 1,500만 명의 시청자들을 ABC 뉴스로 이끌었던 그의 경우 1주 5일 동안 거의 매일 우리들의 거실 한구석의 손님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그가 담배만 안 피웠던들 더 오래 살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마저 있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일 것이다.
내 개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도 1938년 생으로 나와 동갑이라서 감회가 깊은 것 같다. 또 나와 내 아내가 미국에 온 1964년에 제닝스도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캐나다 라디오 방송의 선구자였는데 부전자전으로 그도 여덟 살 적부터 마이크 앞에 서본 경험이 있었다니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라디오조차 없었던 상황과는 딴판의 환경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잘생긴 얼굴, 권위 있는 목소리, 또렷한 발음, 그리고 아마도 부친의 후광 때문에 20세 전후해서 캐나다 TV 방송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1964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지명)전당대회에 취재하러 왔다가 ABC 뉴스 사장 눈에 들어 약관 27세에 ABC 앵커로 발탁됨에 따라 ABC도, 또 제닝스도 언론계의 손가락질을 받게되는 일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CBS는 중후한 월터 크롱카이트가, 그리고 NBC는 역시 언론관록이 있는 쳇 헌틀리와 데이비드 브링클리가 공동 앵커로 있었을 때니까 ABC의 파격적 인사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제닝스 자신이 미국 정치, 역사,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무식쟁이였기 때문에 ‘앵커 보이’ 등으로 불리는 등 많은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압력이 심하게 느껴졌던지 그는 2년 후 앵커 직을 내놓고 레바논의 베이루트 ABC 지국장으로 간다.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철저히 노력했던지 중동문제의 전문가가 되어 점차로 시청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런던 특파원으로 옮겨서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에 대한 세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ABC에서는 워싱턴, 시카고, 그리고 런던 세 곳에서의 3자 앵커 시스템에 제닝스를 넣었다가 워싱턴 쪽 앵커가 병사하자 제닝스를 단독 앵커로 재임명한다.
그의 선천적인 호기심, 그리고 다독을 통한 국내외 정세 연구, 그리고 과감한 이슈 선정 및 보도 등으로 여러 해에 걸쳐 ABC를 넘버 원 뉴스로 꼽히게 했다. 그의 연구열의 한 예로는 1989년 미국 연방헌법 발효 200주년 기념식이 있은 이후 그는 항상 미국 헌법집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는 일화가 있다. 미국에 관한 저서를 두엇 공저하는 가운데서 생겼다는 미국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그는 2003년 미국 시민이 되었다. 방송 언론인으로서 정상을 달리던 제닝스는 그의 관록에 걸맞게 연봉이 900만 달러 내지 1,000만 달러라서 경제적으로도 성공했지만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결혼은 네 번이나 했었다. 좌우간 30년 이상 피웠다가 끊은 담배를 9.11 사태 이후 다시 피운 것이 화근이 되어 4월5일 고별방송을 한 후 일절 얼굴을 보이지 않다가 이번 주 월요일에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셋째 부인에게서 딸과 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이 5월달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는 장소에도 가지 못한 것이 여한일 것이다.
동갑내기의 죽음이라서 그런지 담배는 피우지 않았고 또 영생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 자신도 현 세상에 이대로 계속되는 한 죽을 날이 가까웠지나 않은가라는 우려가 생긴다. 그리고 죽기가 싫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내 아내가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친구에게 얻어온 글을 하나 소개한다. 미리 사족을 달자면 나는 불교에서 나오는 이승, 저승, 그리고 저승사자가 있는 것으로 믿지는 않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죽기를 싫어한다는 진리를 잘 담고 있는 글인 듯하다.
<저승사자가 오거든 이말 전해주오>
還甲(환갑) : 六十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지금 부재중이라고 하소
古稀(고희) : 七十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이르다 하소
喜壽(희수) : 七十七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지금부터 餘生을 즐긴다 하소
傘壽(산수) : 八十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이래도 아직 쓸모가 있다고 하소
米壽(미수) : 八十八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쌀을 좀 더 축내고 간다 하소
卒壽(졸수) : 九十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그렇게 조급하게 굴지마라 하소
白壽(백수) : 九十九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때를 보아 내발로 간다고 하소
元善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