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회가 달라졌다
학연, 지연에 연연하는 것은 분명 우리가 버려야 할 구습 가운데 하나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왜 태평양 건너 와서까지 동문회냐고. 하지만 우리가 그 시절에 연연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까르르 웃어재치던 시절, 그 소나기처럼 순수하던 시간의 추억을 어찌 다른 인연들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등 푸른 시절의 추억을 함께 나눈 동문들과의 정겨움으로 인해 메마른 세상은 또 얼마나 살만한 곳이 되던가. 최근 남가주 각급 학교의 동문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됐다. 그리고 그 모임의 형태 역시 획일화를 벗어나 상당히 다양해졌다. 연말 어두컴컴한 식당에서 만나 식사나 한 끼 같이 하고 술판으로 이어지던 천편일률적인 모임이 푸르른 공원으로, 별빛 쏟아지는 할리웃 보울로 옮겨진 것이다. 지난 7월 31일, 남가주 청주 중·고등학교 동문회(회장, 김재종)는 프랭크 보넬리 카운티 공원에서 하계 동창 야유회를 가졌다. 이날 야유회는 미국을 방문한 모교의 우수학생 2명이 함께 해 더욱 뜻 깊은 자리였다.
9월 초 열리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야유회 겸 정기 축구전에서 열띤 응원전을 벌이고 있는 연세대 동문들.
술로 지새던 ‘먹자판’사라져
가족동반·건설적 행사 다양
시원스레 펼쳐진 잔디 위의 야유회에서 동문과 동문 가족들은 폐부 깊숙이 싱그러운 자연을 호흡하고 맛있는 점심도 함께 나누며 선후배간의 정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식사 후에 펼쳐진 게임 시간, 동문들은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 소풍에라도 온 것처럼 일상의 걱정을 내려놓고 즐겁게 웃으며 하루를 보냈다.
남가주 신일고등학교 총 동문회(회장 장규열)는 지난 3일 모교 은사인 최일영, 이호욱 교사를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보은 행사를 가졌다. 50여명의 동문회 회원들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 이제 어엿한 사업가가 된 동문들은 까까머리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사제간의 훈훈한 정을 나누었다.
용산 남가주 동문회(회장, 서현수, 54·의류업)는 지난 주말 할리웃 보울로 피크닉을 떠났다. 200여 동문과 동문 가족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미주 총 동문회 정기 총회와 때를 같이 한 관계로 미 전국과 모교에서까지 수많은 동문들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콘서트가 열리기 전 오후 5시부터 할리웃 보울 언덕에 오른 동문들은 동문회 측에서 준비한 김밥과 샌드위치, 와인을 펼쳐 놓고 피크닉을 즐겼다. 누군가 “10대 우유 마시며 만난 우리, 50대에 와인 마시며 다시 만나네요.”라며 건배를 제의하자 의기투합한 동문들은 일제히 붉은 와인 잔을 높이 들어올리며 “위하여!”를 외쳤다.
“이번 할리웃 보울 피크닉을 위해 저희 동문회 임원들은 올해 초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 회의를 계속하며 철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용산 남가주 동문회에서 기획과 출판 부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이영돈(37·방송인)씨는 오늘의 이 아름답고 뜻 깊은 만남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게 아님을 강조한다.
어디 이 동문회뿐이랴. 도시락 주문하랴, 공원 예약하랴 생업까지 팽개칠 정도로 동분서주하는 동문들의 희생적인 봉사와 참여가 없었다면 모두가 이토록 행복한 이 여름날의 행사가 어디 어림 반 푼어치라도 있었을까.
“작년부터 하계 동문회를 할리웃 보울에서의 피크닉과 콘서트 참가로 준비해 왔는데요. 동문들 보다 사모님들이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정겨운 동문과 동문 가족들이 한데 모여 맛있는 도시락도 함께 나누며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할리웃 보울 피크닉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 개최할 예정입니다.” 서현수 용산 남가주 동문 회장의 말이다.
동문 가족들은 남편이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금방 십년지기가 되기도 한다. 고석규(15회·58)씨의 아내 고은희씨와 박정도(15회·58)씨의 아내 박연애씨는 마치 오랜만에 해후한 여고 동창생들처럼 시종일관 옆에 앉아 지지배배 이야기꽃을 피운다.
같은 시기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인연은 그녀들 남편의 추억과 사용하는 언어마저도 비슷한 것으로 빚어냈기 때문이다.
김준씨(40·운송업)는 이번 할리웃 보울 피크닉에 아내 김윤진씨(39·주부)와 영아(11), 진아(8), 경제(5) 세 남매 모두를 함께 대동했다. 또래의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인지 자녀들은 아빠를 따라 피크닉 오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매년 9월이면 서울운동장과 잠실경기장을 메아리치게 하는 연고전의 함성. 고려대와 연세대 동문들이 많이 살고 있는 LA에서는 한국의 연고전이 열릴 이 무렵, 동문들의 야유회와 더불어 연고전을 개최한다.
올해도 9월 10일 위티어 내로우 공원(Whittier Narrows Recreation Area)에서 열릴 연고전에는 양교의 500여 동문 가족들이 자리를 함께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축구 경기지만 예년의 경우를 보면 양교의 열띤 응원전이 훨씬 더 눈길을 끈다. 올해 연고전을 위해 양 팀의 응원단들은 지난 4개월 동안 축구 연습장에 함께 나와 열띤 응원 연습을 계속 했다니 기대가 크다.
동문회 모임 형태에 일고 있는 새로운 바람은 그 내용마저도 새롭게 하고 있다. 정겨운 옛 벗들을 만나 지나온 날들을 회고하는 것에 더해 열린 공간에서의 만남은 더욱 건설적인 대화들을 오고가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동문회에서는 동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 사업, 모교 발전을 위한 기금 모금, 커뮤니티 봉사 등 나와 우리로만 향하던 사랑과 관심을 더 멀리, 더 넓게 퍼붓는 것에 관심이 많다. 또한 좋은 인연을 나눈 동문들의 네트웍 작업은 동문들의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문 남편을 둔 이유로 여고 동창생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된 고은희씨와 박연애씨.
앞으로 열릴 동문 야유회들
■동국대 가족야유회
동국대 남가주 동문회(회장 김봉환)는 오는 14일 오전 11시 파운틴밸리에 있는 마일 스퀘어 팍 Lot #15에서 2005년도 하계 동문가족 야유회를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북미주 총동창회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중인 모교 우수학생 20여명이 참석, 선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818)535-9849, (714)757-9771
■울산향우회 야유회
재미 울산향우회(회장 유영철)는 오는 13일 오전 11시 부에나팍에 있는 클라크 B. 리저널 팍(8800 Rosecrans Ave.)에서 여름 야유회를 갖는다.
(951)738-9523
■연세대와 고려대 동문 야유회 겸 연고전
연세대 남가주 동문회(회장 최상봉)와 고려대 남가주 동문회(회장 김재준)는 오는 9월 10일(일) 정오부터 위티어 내로우 공원(Whittier Narrows Recreation Area)에서 동문 가족 야유회를 겸한 정기 연고전을 갖는다.
문의는 (213)387-9300, (714)510-4989 김진성 총무 또는 (714)667-8077.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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