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을 싫어하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안티 힐러리’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는 별로 뚜렷하지가 않다. 너무 잘난체 해보여서, 여자가 설치고 나대서…등이다. ‘어떻게?’라고 구체적으로 물으면 답이 없다. 그냥 싫은 것이다. 불편한 거부감이다. 합리적 이유가 궁색한 이들은 대부분 ‘편안한’ 바바라 부시를 좋아한다.
힐러리만큼 극단적인 애증의 대상이 되는 정치가도 많지는 않다. 안티 힐러리 1명당 열렬 힐러리팬 1명으로 치면 된다. “능력 있잖아요?”라고 그들은 당당하게 반문한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힐러리의 2008년 대선 캠페인은 이미 시작되었다. 3년이나 남았지만 그의 출마는 기정사실화 된지 오래며 워싱턴 정가에선 ‘힐러리 대통령’의 실현 확률이 흥미있는 토픽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힐러리만은 아니다. 지난해의 패자 존 케리를 비롯한 자천타천의 10여명이 백악관을 향한 물밑작업에 들어갔다.
선두주자는 단연 힐러리다. 8월 현재 지지율 40%로 민주·공화 통털어 넘버원이다. 공화당의 루돌프 줄리아니가 27%로 한참 처진 2위에 머물러있다. 68%가 힐러리를 ‘강력한 리더’로 꼽았고 ‘테러 대응도 잘할것’이라는 응답도 57%나 됐다. 그를 향한 애증의 반응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나와는 가치관이 다르다’가 51%에 달했고 힐러리 대통령은 ‘미전국을 이념적으로 분열시킬것’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53%나 됐다. ‘강력한 지도자‘로 비치기는 시작했지만 아직도 가장 큰 약점은 ‘극단적 리버럴‘이라는 이미지임을 말해준다.
백악관을 떠난 후 지난 5년동안 힐러리는 많이 변했다. 2000년 쉽지않은 장애를 딛고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에 선출되면서 부쩍 자세를 낮추었다. 전국적 뉴스의 각광을 되도록 피하고 지역구에 몰두해온 그의 뉴욕주내 지지율은 5년전 30%에서 지금은 70%에 다가서고 있다.
솔직히 퍼스트레이디 힐러리는 미 진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상원의원 힐러리는 달라졌다. 실용적 중도를 지향하고 있다. 여성낙태권의 완전 자유를 주창했던 그가 ‘낙태는 슬프고도 비극적 선택’이라는 미묘한 표현으로 한발 물러섰고, 급진적 의료개혁을 밀어붙였던 그가 헬스케어의 단계적 개선을 위해 공화당과도 친밀한 악수를 나누고 있으며, 반전시위에 앞장섰던 그가 지금은 상원 군사위에서 맹활약하며 군의 강한 옹호자로 변신했다.
힐러리의 이런 ‘새 얼굴’에도 정치야망을 위해 신념을 바꾸는 기회주의자라는 비난과 경험을 쌓으며 원숙해진 정치가의 면모라는 찬사어린 두둔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길게 보면 중도로의 변신은 백악관 가는 길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진보적 여성운동가를 대통령으로 뽑기엔 미국은 아직도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힐러리 본인은 대선 출마의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내년 상원재선에 전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보면 힐러리는 최선의 선택이다. 두차례 대선 패배이후 현재 민주당은 정체성 혼란의 진통을 겪고있다. 부시 지지도가 폭락했다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부시행정부 정책엔 맹렬히 반대하지만 확실한 비전을 담은 자신들의 대안 제시는 못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민주당과 달리 힐러리의 인기는 상승세가 완연하다. 군총사령관으로서도 부족함 없는 카리스마를 인정받은 강한 리더십, 회의든 파티든 어디서나 관중을 끌어모으는 스타성, 막강한 자금동원력과 지지기반 확보등 지금 당장 선거전에 돌입한다해도 괜찮을 ‘준비된 후보’다. 힐러리만한 대안은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에도 없다. 공화당의 ‘힐러리 흠집내기’가 이미 음으로 양으로 전개되고 있을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말썽 많은 남편을 가진 여성도 공직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 미세스 클린턴’이라고 표현했지만 힐러리의 백악관 가는 길에 남편이 도움이 될 지, 부담이 될 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현재 미국 민주당내 최고의 정치 전략가는 아직도 빌 클린턴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한 인사는 ‘힐러리는 미국에서 가장 스마트한 정치가를 자문으로 두고있다’고 말한다. 클린턴부부가 함께 뛰기 시작하면 공화당엔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어쨌든 요즘 미국에서 가장 능력있고 바쁜 ‘백수’인 빌 클린턴에겐 끊임없이 취업 오퍼가 쏟아져 들어온다. 상원이나 시장 출마에서 토크쇼 호스트, 대학교수에서 유엔사무총장, 그가 한때 프랑스령이었던 루이지애나 근방 태생임을 감안한 프랑스대통령 출마까지. 이 다양한 오퍼를 모두 물리치고 있는 클린턴은 아마도 미국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이 될 준비에 착수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2008년 대선은 아직도 먼 이야기다. 그러나 힐러리 대통령의 백악관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하다. 힐러리가 집무실에서 회의를 하는 동안 빌이 백악관의 커튼과 차이나세트를 어떤 것으로 바꿀지도 정말 궁금하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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