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치마 두르고“어서오십쇼”
▶ 식당 웨이터하며 모금 동참 호소하는 장기남 건추회장
뎀스터길에 위치한 전주식당에는 최근 낯익고 나이도 즈긋한 웨이터가 새로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웨이터를 보고 손님들 중 십중팔구는“아니 이게 누구십니까”는 놀라움 섞인 인사말을 건넨다.
남청색 앞치마를 두른 중년의 웨이터는 바로 장기남 문화회관 건립추진회 회장. 얼굴을 확인하자 손님은 이어 “회장님이 여기서 왜 앞치마는 두르고 계십니까, 한국 TV프로그램‘체험 삶의 현장’을 찍는 것도 아니고”라고 묻곤 한다. 지난 1일부터 장 회장은 전주식당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 시간동안 무급으로 웨이터로 봉사하고 있다. 자원한 일이기에 시간당 페이도 없고 팁도 없다. 손님을 테이블로 안내하고는 이내 메뉴를 건네주며 슬그머니 자신이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이유를 꺼낸다. 테이블에는 문화회관 건립기금 모금함과 호소문이 준비돼 있다.
“문화회관 건축이 이번엔 꼭 이뤄져야 할텐데 말입니다. 발로 뛰며 직접 한인들을 1대 1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의견을 듣고 싶어 이렇게 나오게 됐습니다.”손님들은 놀라기도 하고 한편 직접 한인 커뮤니티내 유명인사를 웨이터로 두게 된 것을 반가워(?)하기도 한다.
“좋지요. 처음에 들어와선 나이드신 남자분이 서빙하는 것을 보고는 신기하다 싶었어요. 주인이 바뀌어서 특별 서비스하는 건가 싶기도 했죠. 자세히 보니 언론에 자주 나오는 사람이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하면서 문화회관 건립을 위해 힘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거니에 거주하는 한 노인 한인 부부는 소감을 전한다. 우연히 밥을 먹으러 왔다가 장 회장이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맞이를 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는 황해도민회장 김주진 장로는“차마 말을 못 잇겠다”며 목이 메었다.
“저분은 이렇게까지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시는데 어찌 돕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시는 일이 너무 용감하고 훌륭하셔서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김 장로는 즉석에서 1천달러 수표를 써 전달해 장 회장을 감동케 했다. 1일 점심을 먹으러 왔던 홍세흠 한미시민연합 회장도“장 회장의 뜻을 이루시는 모습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도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를 봐서 크게 돕겠다”고 밝혔다.
조용히 장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노신사는 혼자 와 점심을 먹고 나더니 나가면서 장씨에게 현금 100달러를 쥐어주고 갔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한인을 보고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윤영식 이북도민회연합 회장도 “나도 조그만 일이라도 돕겠다”면서“우선 장 회장께 ‘문화회관 벽돌쌓기에 동참합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앞치마를 사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좋은 대학까지 나오신 분이 이게 웬일이냐. 송구스러워 밥도 못 먹겠다”며 “점심은 드시면서 일하는 것이냐, 밥을 사겠으니 앉아 같이 먹자”고 말했지만 장 회장은 “웨이터가 밥은 무슨 밥이냐”며 한사코 고사했다.
장 회장이 이 곳에서 첫 웨이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지 궁금했다. 전주식당 주윤철 사장은“평소 단골이신데다 신문에서 장 회장 하시는 일 보고 문화회관 건립기금으로 500달러짜리 체크를 써서 드린 적이 있다. 그 일을 인연으로 이렇게 찾아오신 것같다”고 전했다. 5년동안 식당을 운영해오며 이런 일을 겪기는 처음이라는 주 사장은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어렵고 부담스럽기도 해 거절했다. 하지만 위원장님의 진정한 뜻을 듣고는 승낙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주 사장은“바쁘신 분이 11시부터 와서 2시까지 안계셔도 좋다고 해도 일이 바쁠 때는 2시 넘어서까지 일하고 가시고, 손님이 빌 때는 앉아서 신문 좀 읽으시라고 해도 저랑 테이블에 앉아 깻잎도 다듬고 하신다”며 “이렇게 겸손하고 친절하게 서빙하는 웨이터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주 사장은 이어 “금요일 장 회장이 일을 끝마칠 때면 따로 주급을 드려 문화회관 건립에 보태도록 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장 회장이 능숙하게 웨이터 일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77년 미국에 유학와 접시닦이부터 웨이터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는 것. 장 회장은 8월 둘째주에는 소공동 순두부집에서, 셋째주에는 녹원, 넷째주에는 우래옥, 그리고 8월의 마지막 주이자 9월 첫째주에는 우리마을에서 웨이터로 일할 계획이다. 근 한달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하려는 남편의 계획을 과연 장 회장의 부인은 알고 있을까? “아내는 아직 모릅니다. 신문 보고 놀랄텐데. 우리 집에 한국일보 오면은 내가 주워다 감춰버려요. 나중에 부인이 친구들로부터 듣게 되면 ‘거 뭐 조그만 거 있었어’라고 하곤 넘어가곤 했지요. 이번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라고 그는 말했다.
기자의 질문에 다 답할 새도 없이 한쪽 테이블에서“웨이터님 여기 감자 좀 더 주세요”라고 한 손님이 손을 들어 부탁하자 그는“네,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쏜살같이 주방으로 향한다. 궂은 일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문화회관 건립에 온 정성을 쏟는 그를 보면 문화회관은 곧 건립될 것 같다는 희망이 보인다. 송희정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