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외곽지역에서 LA로 출퇴근하는 우리는 여름이 되기를 기다린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방학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적한 여름잠에 빠져있는 프리웨이에 대한 기대다. 지난해까지는 8월에 접어들면 확실히 헐렁해진 프리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올해는 영 아니다. 아이들은 방학이라고 집에서 늦잠을 즐기고 있는데 출근길의 프리웨이는 여전히 범퍼 투 범퍼의 주차장이다.
글렌데일에서 LA로 오는 나의 출근길은 야후의 운행안내에 의하면 20분을 넘지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아침 정확히 40분이 걸렸다. 칼라바사스에서 내려온 논설위원은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고 남쪽 라미라다에서 7시10분에 출발한 편집국장은 8시40분도 지나서 도착했다. 이런 트래픽을 피해 하시엔다하이츠에서 매일 새벽 6시에 떠나는 한 선배는 어느날 7시넘어 출발했다가 꼬박 2시간을 차안에 갇혀있었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렇게 요즘 ‘트래픽’이 화제에 오르면 누구나 한두마디쯤은 거들게 된다. LA의 거의 모든 주민이 날로 심해지는 교통체증을 체감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젠 러시아워가 따로 없다. 언제부터인지 프리웨이건 로컬 길이건, 주중이건 주말이건 낮이건 밤이건 별 사고가 없는데도 모든 차들이 기어다니는 것이 예사가 되어 버렸다.
숫자로 풀어보자. 미전국의 출퇴근 운전자는 약1억3천만명, 각자가 매년 평균 1만4천마일씩 운전한다. 이들이 교통체증으로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매년 1인당 47시간인데 LA는 두배가 넘는 93시간에 달한다. LA시 교통량이 50% 증가하는 동안 도로수용능력은 고작 7%만 확대되었다. 체증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조사대상이 된 85개 도심지역에서만 631억달러를 넘었다.
지난 LA시장 선거 때도 교육이나 범죄 못지않게 주요 이슈로 부각되었던 것이 트래픽이었다. 낙선된 제임스 한 전시장은 현실주의자답게 좌회전 차선설치에서 길 웅덩이 메꾸기등 실행은 가능하지만 너무 소극적인 해결책에 치중했고 당선된 비아라이고사 새시장은 꿈꾸는 야망가답게 다운타운에서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이어지는 레드라인등 뉴욕이 부러워할 만한 지하철의 대대적 확장등 거창하지만 실현은 요원해보이는 대안을 역설했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그밖에도 여러가지다. 다운타운과 팜데일 운행을 1시간 이상 절약하도록 엔젤레스 국립공원에 지하 터널을 뚫자는 주장도 있고 LA와 롱비치항구에서 출발하는 화물트럭 전용차선 설치하자는 제안도 있다. 남가주처럼 넓게 퍼져있는 지역에선 대중교통 시스템이 큰 도움이 못된다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가 발”이라고 믿고 사는 엔젤리노들은 솔직히 버스나 지하철에 큰 관심이 없다. 카풀도 잘 하지 않는다. 현재 남가주의 차 한대당 평균 승객수는 1.12명이다. 1.3명만 되면 트래픽이 확 줄어든다는 설명도 별 효과가 없다.
그래서 일부에선 오히려 통행료 부과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카풀차선처럼 유료 차선을 설치하는 것이다. 싱가폴에서 성공한 대책으로 10년전부터 오렌지카운티등 일부에서도 성공적으로 실시중이다. 결코 싸지는 않다. 체증으로 악명높은 91번 프리웨이 출근길에서 30분쯤 빨리간다는 한 직장인이 지불하는 통행료는 매일 9달러다.
도무지 해답을 찾기 힘들어 당국자들도 외면하고 싶어한다는 미국사회의 난제중 난제가 이민에 이어 트래픽이다. 지난주말 연방의회가 여름휴회에 들어가기 직전 약3천억달러의 하이웨이 기금안을 통과시켰지만 그로인한 트래픽 해소의 기미를 일반 주민이 느끼려면 적어도 10~15년은 지나야 한다. 모두가 카풀이나 버스타기를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참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선택은 두가지중 하나다.
첫째, 계속 시간 빠듯하게 출발해 트래픽과 싸우면서 이기적인 난폭운전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자신을 난폭운전자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미국인의 대다수는 스스로 모범운전자라고 자부한다고 한다. 그러니 미국의 거리에는 3가지 타입의 운전자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미친 녀석들’, 나보다 늦게 가는 ‘멍청이들’, 그리고 모범운전자인 ‘나’. 이런 자만심이 평범한 운전자를 하이웨이의 무법자로 만들고 이들의 난폭운전이 사고라도 일으키면 그날의 출근길은 글자그대로 지옥이 되고 만다.
둘째 선택은 20분쯤 일찍 떠나 트래픽과 화해하고 차 속에 갇힌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뉴스를 듣다가 싫증나면 음악도 듣고 그것도 시들해지면 새 사업을 구상하거나 하루의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운전중에 커피를 마시고, 화장을 하며, 신문을 읽거나 노래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나쁘지 않고 평소에는 잊고 지냈던 하늘과 달, 구름과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차안에 갇힌 프리웨이 한복판에서다.
물론 나는 언제나 두 번째를 선택하고 있는 ‘모범운전자’라고 ‘자부’하고 있다.
박 록
주 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